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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 자기를 허용하지 않는 새벽

고도원의 아침편지에 답장

by 나무둘

지난날 나의 20살 청춘이 고도원의 아침편지를 받았다면 뭐라고 답할까?'

이런 가정을 하고 그 청춘의 입장에서 답장을 써 봅니다.




2023.07.21 고도원의 아침편지


자기 존엄

옛 이집트 파라오들은

새벽이면, 신전에 들어가

의례를 갖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신으로부터 사명을 부여받고 힘을 얻었다.

군주들은 새벽에 자신을 혁명하였다. 한 인간으로서

존엄을 자각하고 살아가는 사명을 되새기며

힘을 얻고 새로운 혁명을 도모하는 시간을

새벽마다 오롯이 가졌다.


- 신영길의《기억의 숲을 거닐다》중에서 -


* 새벽을 맞았다는 것은

그날 하루도 새 생명을 얻었음을 뜻합니다.

새벽마다 혁명한다는 것은 매일매일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존엄을 날마다

자각하는 일에서 출발합니다. 자기 존엄을 잃으면

자기 혁명도 물거품이 되고, 하늘이 준 사명도

빛을 잃습니다. 자기 존엄은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지키는 것입니다.

(2020년 7월 13일자 앙코르메일)


오늘도 많이 웃으세요.




글을 읽고 뭔가 가슴이 웅장해지네요.

새벽에 기도를 해 본 적이 있어요.

신기하게 마음이 편안해지더라고요.

20살 시절이 기억나실라나요?

저의 20살 인생은 늘 뭔가 마음이 바쁘고 붕 떠 있는 거 같거든요.

할 수 있는 것도, 해야 할 것도 많은 것 같은데

막상 하려니 손발이 잘 안 움직여지고

마음만 쫑쫑쫑, 그래요.

이런 삶 중에도 우연히 새벽에 깨서 기도를 한 날이 있어요.

갑자기 사방이 고요해지고 생각이 다 멈춘 느낌이었어요.

아마도 이런 걸 이야기하시는 거 같아요.

자기의 존엄을 자각한다는 게요.

내 안의 시끄러운 생각이 조용해지면

뭔가 드러나는 것 같아요.

그때까지는 없었던 자기가 드러나는 것 같다고 할까요?

어떤 면에서는 피상적인 자기가 사라져야 진짜 자기가 드러나는 것 같아요.

거짓의 가면을 다 벗어버리는 거요.

열등하지 않은 척하려는, 젠체하려는, 있어 보이려 과장하는, 허세 부리는,

자기가 사라지는 것 같아요.

그 새벽 시간에는요.

새벽은 그런 사람을 허용하지 않는 것 같더라고요.

왠지 그 자체로 고요한 성스러움이 깃든 시간.

함부로 침범할 수 없고

함부로 발설할 수 없는 느낌.

똑똑 정화수에 물이 모이듯

정갈하고 신성한 느낌이 있어요, 새벽은요.

그래서 새벽에는 새 생명이 느껴지나 봐요.

껍데기는 가고

진짜 자기만 남아서요.

자기 혁명까지는 모르겠지만

자기 존엄이 뭔지 어렴풋이 알 거 같아요.

아마도 진짜 자기를 소중히 여기는 거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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