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원의 아침편지에 답장
지난날 나의 20살 청춘이 고도원의 아침편지를 받았다면 뭐라고 답할까?'
이런 가정을 하고 그 청춘의 입장에서 답장을 써 봅니다.
2023.07.25 고도원의 아침편지
청년들의 생존 경쟁
저마다 자기 세대가
어느 세대와도 비교할 수 없는
생존 경쟁을 했고 거기에서 살아남았다고
믿는다. 누구나 자신이 진 십자가를 가장 가혹하게
느끼는 법이다. 지금의 청년 세대 역시 그렇다.
성장이 정체된 한국 사회에서 취업과 생존을
위한 가혹한 경쟁을 해온 그들은 거기에서
승리하든 패배하든 어떤 보상 심리를
간직하게 된다.
- 김민섭의《경계인의 시선》중에서 -
* 살아가노라면
생존 경쟁은 피할 수 없습니다.
남보다 앞서야 이기고, 이겨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믿고 질주합니다. 무한대 가혹한 경쟁은
사람의 기본 인성을 흔들고 세상을 더욱 황폐하게
만듭니다. 그런 세상에 청년을 내모는 것은
모두에게 불행입니다. 함께 잘 되는 세상,
남이 잘 돼야 나도 잘 되는 세상의
주인공이 되게 해야 합니다.
(2020년 7월 16일자 앙코르메일)
오늘도 많이 웃으세요.
예전에 학교 담임 선생님이 그랬어요.
자기는 무한 경쟁이라는 말을 싫어한다고.
유한 경쟁도 충분한데
이제는 무한 경쟁의 시대라며 세상이 떠드는 게 몹시 탐탁지 않다고.
담임 선생님 자체를 좋아한 건 아니었지만
이 말만큼은 제 기억에 또렷이 남아 있어요.
그 말에 격하게 동의했었나 봐요.
무슨 무한 경쟁이에요.
인간은 유한한데.
우리 청년들은
누가 집어넣었는지도 모르는 무한 경쟁의 트랙에서
무한히 질주해야 칭송받는 시대를 살고 있어요.
이거 참 이상해요.
내가 참가 의사를 표하지도 않았는데
내가 왜 이 경기에 참여해야 하는지요.
이게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게임인가요.
혹시 모두가 패배하게 설계된 게임은 아닌지요?
경기에 참가할지 말지
참가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참여할지
저에게 선택권이 있으면 좋겠어요.
어차피 언젠가는 죽는 유한한 삶이잖아요.
무한히 살 수 없는 삶이니
유한한 선택권이라도 가지겠어요.
그것만큼은 제 것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