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야 한다는 이름의 감옥을 떠나며

꽃은 피어야 한다고 피지 않는다.

by 나무둘

바다 앞에 서면 그는 작아졌다.

파도는 모양도 크기도 늘 달랐고 방향도 마음대로였다.

누군가의 명령에 따르지 않고

스스로의 리듬을 따라 춤추는 그 모습을 보며

가슴 깊이 알 수 없는 해방감을 느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는 파도가 아니라 시멘트처럼 굳어가기 시작했다.

'해야 한다'는 문장이 어깨 위에 돌덩이처럼 쌓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잘해야 했다.

남을 배려해야 했다.

더 빨리, 더 많이, 더 정확하게 살아야 했다.

하루가 끝날 무렵이면 그 안의 작은 목소리들은 하나둘 조용해지고 오로지 타인의 기대에 부합했는지를 점검하는 회의만 남았다.


'살아 있다'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기쁨을 느끼는 것도

눈물짓는 것도

때로는 아무 이유 없이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도

살아 있는 존재의 자연스러운 반응일 텐데.

그는 그를 끊임없이 단속했다.

아프지 마라, 망설이지 마라, 흔들리지 마라.


그러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꽃은 피어야 한다고 피지 않고

바람은 불어야 한다고 불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들은 그저 그 순간에 충실할 뿐이었다.


그날 이후, 그는 조금씩 연습하기 시작했다.

화가 나면 화가 난다고 스스로에게 속삭이고

슬픔이 오면 참지 않고 울었다.

거절하고 싶은 일에는 조심스럽게 '아니요'라고 말했다.

물론 쉽지 않았다.

오랫동안 '해야 한다'는 굴레에 길들여진 마음은 여전히 겁을 먹고 작은 죄책감을 토해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한 번이라도 진심으로 웃은 날,

한 번이라도 서툴게 울었던 날,

그날들은 결코 죽은 삶이 아니었다는 것을.

그날들의 나만은 분명히 살아 있었다.


이제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한다.

'잘 살아야 한다'는 대신 '살아 있어야 한다'고.

남의 기대보다 내 마음의 리듬을 더 소중히 여기라고.


어쩌면 삶은 파도처럼 흘러가는 것이다.

크게 일렁이기도 하고 잔잔히 숨을 고르기도 하면서.

모양을 정해놓지 않고

방향을 미리 결정하지 않고

그냥 그 순간순간 진실한 마음으로.


오늘도 다짐한다.

해야 한다는 이름의 감옥을 떠나

살아 있다는 감각 속을 걷기로.

웃고, 울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는 모든 순간들을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그것이야말로 바다가 가르쳐 준 것,

파도를 더 힘껏 사랑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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