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상담 편지

견딤의 끝에서, 다시 삶을 붙들어봅니다.

당신이 다시 삶을 만지려는 그 순간을 함께합니다.

by 나무둘

[내담자가 상담자에게 보내는 편지]

견딤의 끝에서, 다시 삶을 붙들어봅니다.


안녕하세요.

한참을 망설이다가 이 글을 씁니다.


사실 저는 오랜 시간 동안 그냥 '견디는 법'만 배우며 살아온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또 어쩌면 저 자신을 위해, 그렇게 버텼습니다. 스스로를 다그치고 때로는 제 존재를 지워가면서까지 살아남으려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렇게 애써 붙잡은 삶이 요즘은 저를 가장 무겁게 짓누르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왜 이렇게까지 버텼는데도, 손에 쥔 것은 절망과 공허뿐인 걸까요.


가끔은 지금까지 해온 모든 노력이 헛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과가 저를 품어주지 않았기에 제 모든 애씀마저 부정하고 싶어질 때가 있습니다. 견딘다는 것은 이토록 외롭고 쓸쓸한 일이었구나, 뒤늦게 깨닫습니다.

하지만... 아주 작은 틈새가 생겼습니다. 요즘 저는, 스스로에게 조금 더 솔직해지려 애쓰고 있습니다. '존재하기'를 연습합니다. 단단히 무장한 채 버티는 대신 조심스럽게, 아주 조심스럽게 내 안의 감각을 다시 느껴보려 합니다. 숨 쉬는 공기의 온도, 창문 너머 빛의 떨림, 내 심장이 아직 두근거리고 있다는 사실까지. 작은 것들이지만 그 감각을 통해 저는 다시 살아있음을 배우려 합니다.


물론 쉽지는 않습니다. 여전히 무겁고, 자주 미끄러집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으려 합니다. 이 지난한 견딤이 결국은 살아가려는 발버둥이었음을 스스로 믿고 싶습니다. 너무나 오래 외면했던 내 안의 작은 생명을 다시 한번 안아주고 싶습니다.


저의 이 서툰 여정을 지켜봐 주세요. 조금씩이라도 다시 따뜻한 삶을 손에 쥘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편지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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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자가 내담자에게 보내는 답장]

당신이 다시 삶을 만지려는 그 순간을 함께합니다.


소중한 당신께.

이 편지를 읽으며 한참을 가만히 숨을 고르게 되었습니다.

당신이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말없이 그러나 끈질기게 삶을 붙들어왔는지를 느낍니다.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자리에서 때로는 절망을 안은 채 그러나 여전히 손을 놓지 않고 살아내셨던 당신. 그 존재의 무게를 저는 깊이 존경합니다.


살기 위해 애쓰는 일이 때로는 삶을 무겁게 만들기도 한다는 사실. 아이러니하지만 인간다운 아이러니입니다. 그 모순 속에서도 당신은 멈추지 않았고 그 자체로 이미 한 편의 숭고한 이야기입니다.


결과가 어땠든, '살려고 했다'는 진실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누구보다도 깊게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삶을 살아낸 당신의 발자국은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결과가 당신을 정의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과정 속에서 흔들리고 부서지면서도 다시 걸어보려는 당신의 의지가 당신이라는 사람을 만들어냅니다.


'감각으로 존재하기'를 연습한다는 당신의 고백에 마음이 아릿해졌습니다. 그 얼마나 용기 있는 첫 걸음인지요. 우리는 때때로 거창한 변화를 꿈꾸지만 진짜 생명은 아주 작고 여린 순간에서 움틉니다. 당신이 느끼는 공기의 온도, 가만히 흐르는 빛의 움직임, 심장의 떨림. 이 작은 것들이야말로, 다시 삶을 만지고, 사랑하게 만드는 씨앗입니다.


당신의 서툰 여정은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이 길 위에서 넘어지더라도 괜찮습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다시 손을 내밀고, 숨을 들이쉬고, 존재하기를. 그 자체로 충분합니다. 그 자체로 이미 충분히 아름답습니다.


살아있기 위해 애쓴 당신의 작은 생명을 저도 함께 믿겠습니다. 당신의 삶이 다시 온기를 품게 되기를. 부디 잊지 마세요. 당신이 삶을 다시 만지려 하는 그 순간순간마다 저는 조용히 당신 곁에 있겠습니다.


마음을 다해 당신을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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