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지 말고 품어 보아요.
[내담자가 상담자에게 보내는 편지]
저는 요즘 자주 멈춰 서게 됩니다. 아무 일도 없는 평범한 날에도 오래된 감정이 불쑥불쑥 올라오곤 해요. 마치 제가 모르는 시간 속에서 숨죽이며 기다리고 있다가 마침내 제 안의 조용한 순간을 틈타 제 존재 전체를 덮쳐오는 것 같아요.
그 감정들은 대체로 오래된 분노입니다. 억울함이고 수치심이에요. 누군가는 '지나간 일'이라고, '이미 끝난 과거'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제 안에서 그것들은 여전히 현재형으로 살아 있어요. 때때로 그것들이 저의 정체성처럼 느껴질 때도 있어요. 분노는 자존감이 되었고, 억울함은 살아남았다는 증거가 되었고, 수치심은 저를 무너뜨리지 않으려는 방패가 되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조금 벗어나고 싶어요. 내려놓고 싶고 편해지고 싶어요. 과거의 나를 끌어안는 것도 중요하다는 걸 알지만 자꾸만 그 감정들이 오늘의 저를 갉아먹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문제는 이 감정들을 놓는 순간 '내가 졌다'는 느낌이 들어 두렵다는 거예요. 마치 제가 싸워온 모든 날들을 부정하는 것 같아서요. 그게 두려워서 계속 붙잡고 있는 건 아닐까 싶어요. 참 모순이죠. 내려놓고 싶어서 붙잡고 있는 이 마음이.
누군가는 저에게 '이제 그만 잊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 말이 너무 가혹하게 느껴져요. 잊는다는 건, 그 시간 속의 저를 없던 사람으로 만드는 것처럼 느껴지니까요. 저는 오히려 그 시간을 껴안고 싶어요. 껴안은 채로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요. 그게 가능할까요? 저는 지금 제 안의 그림자와 싸우고 있는 것 같아요. 외부의 적이 아니라 내 안에 뿌리 깊게 박힌 어떤 고요한 절망과요.
그래도 제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어쩌면 정말로 따뜻한 봄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일 거예요. 아직은 손끝이 시리지만 마음 어딘가에는 미세하게나마 온기가 느껴지거든요. 제가 이 길 위에 있다는 것, 걸어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믿고 싶어요.
선생님, 제가 지금 가고 있는 이 길이 언젠가 진짜 저를 만날 수 있는 여정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 여정이 두렵지 않도록 누군가 제 곁에서 따뜻하게 손을 잡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편지를 씁니다.
[상담자가 내담자에게 보내는 답장]
조심스레 꺼내어준 이야기들을 읽으며 조용히 숨을 골랐습니다. 마음속에 오래도록 머물러 있던 말들, 오랜 시간 혼자 감당해야 했던 감정들이 얼마나 무겁고 깊었을지를 생각하니 그 말 한 줄 한 줄이 마치 손끝으로 건네는 떨림처럼 전해졌습니다.
당신이 붙들고 있는 분노, 억울함, 수치심. 그 모든 감정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당신을 지켜왔는지를 저는 믿습니다. 그 감정들은 결코 당신을 약하게 만든 게 아니라 오히려 당신을 버티게 해준 힘이었을 겁니다. 그것이 자존감이 되었고 살아 있음의 증거가 되었다는 당신의 고백은 그 자체로 얼마나 깊은 자각인지요.
우리는 자주 '놓아야 한다'는 말에 스스로를 몰아세우지만 사실 놓는다는 것은 버리는 것이 아니에요. 그것은 오히려 품는 일입니다. 놓는다는 것은 '그럴 수밖에 없었던 나'를 이해하고, 그 시간의 나를 보듬는 행위지요. 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어쩌면 더 이상 싸우지 않아도 되는 자신을 허락하는 용기일지도 모릅니다.
당신이 지금 느끼는 두려움은 약함의 표시가 아닙니다. 그것은 살아온 시간과 그 안에서 살아남은 자신에 대한 깊은 존중입니다. 그렇게 자신을 존중할 수 있는 사람은 분명히 앞으로도 삶을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림자를 마주보는 일은 무섭고 고된 여정이지만 당신은 이미 그 여정을 걷고 있어요. 괜찮다고 자신에게 말할 수 있는 순간은 어느 날 문득 찾아올 거예요. 그것은 언젠가 문틈으로 스며드는 햇살처럼 당신을 조금씩 따뜻하게 감쌀 겁니다.
당신이 걸어가는 이 여정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때때로 지치고 외로울 때 당신이 쉴 수 있는 작은 벤치라 생각하고 상담실에 오셔도 좋습니다. 말없이 곁에 있어주는 것, 그것이 때론 가장 큰 위로가 되기도 하니까요.
당신은 이미 충분히 잘 해내고 있어요.
당신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