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안의 봄을 믿습니다.
[내담자가 상담자에게 보내는 편지]
안녕하세요.
요즘 제 마음속에서 어떤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아 그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어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믿음’이라는 말, 그 단어만 들어도 뭔가 마음이 움찔합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오랫동안 그 말을 믿지 못했습니다. 누군가를 신뢰하는 일은 저에게 늘 불안과 경계심을 안겼고 그 감정들이 반복되다 보니 결국 저 자신조차도 믿지 못하게 되더라고요. 무언가 잘못됐을 때마다 “왜 또 속았을까?”, “왜 난 그걸 몰랐을까?” 하고 스스로를 탓했습니다. 그렇게 믿음은 저에게 상처의 다른 이름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에서는 여전히 누군가를 믿고 싶다는 갈망이 남아있어요. 아무에게나 마음을 열고 싶다는 건 아니에요. 그저 언젠가 누군가와 진심으로 마주 보며 마음을 나눌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조금씩 피어나고 있는 것 같아요. 어쩌면 이 마음이 ‘살아 있는 마음의 징표’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하지만 여전히 두려움도 큽니다. 다시 실망하게 될까 봐 다시 나 자신을 탓하게 될까 봐요. 그래서 요즘은 누군가를 믿는 것보다 ‘내가 나를 믿는 연습’을 해보려고 노력 중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무사히 하루를 시작한 나를 칭찬해 보고 불안한 감정을 느낄 때는 외면하지 않고 그 감정과 조금 더 오래 머물러 보기도 해요. 아직은 어색하지만 그래도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어요.
그래서 묻고 싶어요. 이렇게 천천히 조심스럽게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이 과정이 정말 의미 있는 걸까요? 나 자신을 믿는다는 건 도대체 어디까지가 가능한 일일까요?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와 다시 온전히 마음을 나누는 날이 올 수 있을까요?
이 모든 질문들이 언젠가 꽃 피우는 작은 봄이 되길 바라며 지금은 그저 이 씨앗을 품고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의 이 조심스러운 마음을 봐주세요.
내 마음의 작은 싹을 품은 사람으로부터
[상담자가 내담자에게 보내는 답장]
당신의 글을 읽으며 조용히 마음을 들여다보았습니다. ‘믿음’이라는 단어에 스스로를 너무 오래 가두었던 흔적들, 그리고 그 안에서도 여전히 누군가를 믿고 싶어 하는 간절한 마음이 저를 오래도록 머물게 했습니다.
그 마음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상처 위에 조심스레 내리는 눈처럼 아물지 않은 마음 한가운데에 피어난 당신의 의지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요. 상처받고도 다시 누군가를 믿고 싶다는 마음을 내어놓는다는 건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증거이고, 그것은 단지 용기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 자체가 품고 있는 생명의 증언입니다.
우리는 종종 ‘믿음’을 누군가에게서 받아야 하는 선물처럼 여깁니다. 하지만 당신이 스스로를 들여다보며 느끼셨듯 진짜 믿음은 바깥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자라나는 것입니다. 당신이 불안과 의심을 껴안는 연습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저는 기꺼이 고개를 숙이고 싶어 졌습니다. 그것은 쉽지 않은 길이고 결코 빨리 닿을 수 없는 길입니다. 그러나 그 길에서 당신은 이미 가장 중요한 씨앗을 품었습니다. 당신 자신을 아끼는 태도 말이지요.
내가 나에게 안전한 존재가 되어가는 것, 그건 참 묵묵하고 조용한 길입니다. 말 대신 눈빛으로, 판단 대신 기다림으로 하루하루를 쌓아가는 일이지요. 그 길 위에서 당신이 하고 있는 모든 작고 사소한 실천 -일어난 자신을 칭찬하는 일,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일- 그 모든 것들이 사실은 믿음의 봄을 준비하는 아름다운 몸짓들입니다.
당신은 이미 ‘믿음’을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꼭 누군가를 믿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당신이 당신에게 진실할 수 있다면 언젠가 당신의 진실을 품을 수 있는 누군가와의 만남은 자연스럽게 다가올 거예요. 그 사람은 아마도 당신이 애써 쌓아 온 그 조용한 성실함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겠지요.
혹시 그런 만남이 너무 늦어질지라도 괜찮습니다. 당신이 당신을 알아보고 있으니 그 자체로 이미 충분합니다.
오늘도 그 싹이 자라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 주세요. 언젠가는 잎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작은 봄이 되어 당신을 안아줄 거예요.
늘 당신의 삶을 응원하며 따뜻한 마음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