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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상담 편지

나를 투명하게 바라보는 건 외로운 일이에요.

외로워도 나 자신이 되는 유일한 길이에요.

by 나무둘

[내담자가 상담자에게 보내는 편지]


안녕하세요.
예전 상담에서 나눈 이야기들이 마음에 오래 남았습니다. 특히 '투명하게 바라보기'라는 말이 자꾸 떠오릅니다. 듣기엔 단순한 말인데 막상 그걸 삶 속에서 실천해보려 하니 마음 한구석이 자꾸 저항합니다. 내가 나를 투명하게 본다는 건, 나의 어설픔과 조급함, 때론 못난 이기심까지도 직시한다는 의미일 테니까요.


결혼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저는 늘 ‘기대’라는 그림자에 휘둘려 살았던 것 같아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저는 그 사람에게서 어떤 이상적인 모습을 기대했습니다. 서로 노력하자고 했던 말들이 사실은 변화시키고 통제하려는 의도였음을 인정하기까지 오래 걸렸습니다. 그 사람의 미숙함이 보일 때마다 실망하면서 동시에 ‘내가 너무 민감한 걸까’ 하고 자책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두 가지 감정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스스로도 지쳐갔고요.


하지만 요즘엔 이 고통이 단지 관계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걸 조금씩 알게 됩니다. 나를 투명하게 보려 할 때 왜 내가 그렇게 반응했는지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됩니다. 어쩌면 저는 상처받지 않기 위해 기대를 만들어 놓고 그 틀 안에서 안전함을 느끼려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상대는 늘 그 틀을 벗어나 있었고요.


이런 생각들이 들 때마다 묻게 됩니다. 나는 어떤 관계를 원하고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은 사람인가? 누구를 바꾸기보다 나 자신을 더 정직하게 마주할 수 있는 용기가 나에게 있을까? 그런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보려 노력은 하는데 여전히 어렵습니다. 투명하게 본다는 건 참 외로운 일이기도 하네요.


상담자님, 혹시 선생님은 그런 투명한 시선을 일상에서 어떻게 실천하고 계신가요?

그저 이렇게라도 질문을 던지며, 제 안의 작은 용기를 잃지 않으려 합니다.
답장을 기다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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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자가 내담자에게 보내는 편지]


안녕하세요.
편지에서 고요하게 울려오는 내면의 진실함이 참 인상 깊었습니다. 문장 속에서 얼마나 스스로를 깊이 들여다보고 있었는지가 잘 느껴졌어요. 그런 성찰은 결코 가볍게 시작되는 일이 아니기에 지금 당신이 걷고 있는 이 길이 얼마나 용기 있는 것인지를 먼저 전하고 싶습니다.


‘기대’라는 그림자. 참 적절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종종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기대를 포장하지만 그 안엔 어쩌면 스스로조차 인식하지 못한 두려움과 불안이 자리 잡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기대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무거워져서 결국 상대를 ‘변화시켜야 할 문제’로, 나 자신을 ‘더 참아야 할 사람’으로 만들어버리곤 하지요.


그런데요. 당신이 이야기한 ‘투명하게 바라보기’는 단지 자기반성이나 자책이 아닙니다. 그것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선함과 부족함 모두를 포함하는 존중이 담긴 시선이기도 합니다. 나의 불안도 실망도 사랑도 그 모든 감정은 애써 억누르기보다 부드럽게 들여다보아야 할 삶의 일부입니다. 우리는 완벽해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이해받고 싶고 연결되고 싶어 하는 존재니까요.


저는 일상 속에서 투명함을 잃지 않기 위해 아주 사소한 질문을 자주 던집니다.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은 어디에서 왔을까?"

"이 기대는 진짜 나의 바람일까, 아니면 두려움에서 비롯된 환상일까?"

이렇게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어느 순간 조금은 부드러워진 마음으로 나와 타인을 바라보게 되더라고요. 때론 답이 없을 수도 있지만 그 물음 자체가 이미 우리를 변화시키는 시작이라고 믿습니다.


지금 당신이 스스로에게 묻고 있는 질문들 그리고 그로 인해 피어나는 자각은 분명 앞으로의 삶을 더 깊고 단단하게 만들어줄 거예요. 외롭다는 그 느낌 또한 성장의 증거입니다. 투명하게 본다는 건 무너지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본래의 나로 서는 일일지도 몰라요. 나만이 갈 수 있는, 외로울 수밖에 없는 길이지요.


당신의 진심 어린 성찰에 저는 존경과 애정을 보냅니다. 자신을 다정히 안아주며 그 걸음을 계속 이어가시길 바랍니다. 당신의 삶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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