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우주의 진실이다.
가끔은 거울 앞에 선 그가 낯설다. 분명 어제의 그와 다르지 않은 얼굴인데도 오늘은 유독 초라해 보이고 무언가 크게 실패한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계획했던 일을 다 이루지 못한 날이면 더 그렇다. 침대에 몸을 던지고는 한숨과 함께 머릿속에서 자신을 향한 조용한 재판이 시작된다.
"넌 왜 이렇게 게으르니"
"또 시간을 날렸잖아"
"그렇게 살아서 뭐가 되겠어"…
하지만 그 모든 목소리를 지나 가만히 귀 기울이면 아주 작고 조용한 속삭임이 들려온다.
"괜찮아. 지금 이대로도 충분해."
처음엔 그 말이 너무 낯설고, 심지어 불편하다.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일까? 게으름을 정당화하는 위안일까? 그는 오랫동안 성취와 노력으로 자신을 증명해 왔기에 그 다정한 말이 왠지 이질적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그 말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고 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존중하는 일. 그것은 마치 겨울 끝자락의 햇살처럼 서툴고 희미하지만 분명 따뜻하다. 그의 무기력함도 불안도 심지어 의욕 없는 그 하루도 모두 '그'라는 존재의 일부라는 걸 조금씩 인정하게 된다.
상담자는 말했다. "무기력함도 감정입니다. 그 감정을 억누르지 말고 있는 그대로 체험해 보세요." 그 말은 처음엔 위로가 아니라 경고처럼 들렸다. 그가 멈춰도 괜찮다고 하면 영영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될까 봐.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다정한 허락을 받은 후에는 오히려 다시 움직이고 싶어졌다.
어쩌면 우리를 진짜 무기력하게 만드는 건 게으름 그 자체가 아니라 게으름을 혐오하는 마음일지도 모른다. 그 안엔 늘 누군가의 기대와 사회적 잣대가 둥지를 틀고 있고 그 틈에서 자라는 비교는 삶을 조용히 갉아먹는다. 그러나 그런 소음을 뚫고 스스로를 다정히 안아줄 수 있을 때 비로소 삶은 다시 그에게 말을 건넨다.
"지금 이대로도 잘 살고 있어요."
그 말이 정말 사실일까, 반신반의하면서도 문득 뒤를 돌아보면 참 많은 것을 버티고 견뎌낸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지나온 계절들 속에서 수없이 흔들렸지만 결국 무너지지 않고 여기까지 걸어왔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그는 꽤 단단한 사람이다.
'나답게 산다'는 말은 눈부신 성공이나 드라마 같은 반전의 삶이 아니라, 매일을 정직하게 견디는 마음에 더 가깝다. 화려하지 않아도 괜찮고, 뚜렷한 목표가 없어도 괜찮고, 때로는 멍하니 앉아 있는 날이 있어도 괜찮다. 지금 그가 느끼는 감정, 지금의 그 모습이 그라는 우주의 진실이라면, 그것을 부정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가장 인간다운 용기다.
오늘도 그는 묻는다.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까? 그리고 조심스럽게 대답해 본다. 괜찮다고, 그렇게 천천히 자신을 믿어가도 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