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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둘 Feb 25. 2022

나 자신과 담담하게 지내기

입맛은 담백하게, 시선은 담담하게

우리는 나 자신에게 감상적으로 되기 쉽습니다. 힘들고 괴로운 일을 겪으면 내 감정에 빠져서 쉽게 헤어 나오지 못합니다. 내가 경험하는 세상조차 온통 내 감정으로 물들인 채 바라보기 쉽습니다. 온통 내 감정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고 판단하게 되는 것. 고통 속에 있을 때 흔히 벌어지는 일이지요. 그리고 그것은 고통이 지속되는 원인이기도 합니다. 


심리상담에서는 여러 가지 작업을 합니다. 그 중에 하나는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는 것입니다. 심리상담을 찾아오는 분은 한 가지 암묵적인 전제를 마음에 깔고 있습니다. '나는 나를 객관적으로 볼 수 없다.'  심리 검사를 하고 싶고, 제3자인 전문가의 말을 듣고 싶어 하는 것에는 이런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좀 더 분명하고 명확하게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객관적으로 자기를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 그 마음에 응해서 심리상담은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담담하게 보도록 돕습니다. 


자기를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과 잠시 멀어져야 합니다. 특히 자주 빠져있던 자기 생각과 감정에서 멀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한 가지 있습니다. 내가 자주 빠져있던 생각과 감정은 거의 나 자신처럼 느껴지기에 내가 빠져있다는 것 자체를 알기가 어렵습니다. 혹은 빠져 있는 생각과 감정이 무엇인지 분간이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조금 분간이 되더라도 그 생각과 감정과 멀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나 자신과 동일시하는 그 생각, 그 감정과 헤어지는 것은 곧 나를 버리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자리에서는 정치나 종교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들 합니다. 그 이유는 정치와 종교에 대해서는 각자 자기만의 견해로 자기 생각을 고수하기 때문입니다. 사소한 생각의 차이로도 말다툼이 일어나기 쉽기 때문이지요. 각자 자기 생각에 대해 강하게 집착하니 타협의 여지가 거의 없습니다. 강렬한 생각과 감정의 덩어리, 신념에 가까운 나의 견해를 누군가 반대하는 것을 우리는 거의 참지 못합니다. 우리의 머릿속에서 그것은 단지 생각이 아니라 곧 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자주 머물러 있는 생각과 감정에서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반문의 여지없이 그냥 그것들이 곧 나라고 느끼고 살아가는 가운데 그것들과 멀리 떨어져 보는 것. 이건 굉장히 어렵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어려운 만큼, 내키지 않는 만큼 마음의 치유를 위해서는 필요한 일입니다. 심리적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 생각과 감정에서 벗어나서 사태를 다시 봐야 합니다. 우선은 그 생각과 감정 자체가 괴로운 것이기에 멀리 떨어져야 하는 것이고, 그 생각과 감정에 빠져서는 나 자신과 상황을 투명하게 바라볼 수 없기에 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사물이 너무 가까이 있을 때는 오히려 잘 보이지 않습니다. 초점이 맞지 않기 때문이지요. 어느 정도 적당한 거리가 있어야 선명하게 보입니다. 내 생각과 감정도 그렇습니다. 너무 가까이서 체험하고 있으면 그것이 당최 무엇인지도 모르고 체험하게 됩니다. 그 생각, 그 감정과 거리를 두고 멀리서 보기 시작하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가까이에서는 안 보이던 것도 멀리서 보면 더 잘 보입니다. 


아무리 괴롭고 힘들어도 내 고통이 세상의 중심은 아닙니다. 그때 내가 보는 세상은 내 관점으로 채색된 세상입니다. 내 고통이 세상의 전부는 아닙니다. 고통으로 질척거리는 세상에 살고 싶지 않다면 고통을 유발하는 내 생각과 감정에서 잠시 떨어져 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렇게 하려면 도통 어려운 게 아니기 때문에 평소에 나 자신과 담담하게 지내는 것이 좋습니다. 


요새 사람들은 자극적인 음식을 찾습니다. 간이 세야 맛있다고 느낍니다. 그 배경에는 스트레스가 있습니다. 스트레스가 많으니 그 스트레스 자극보다 강렬한 자극을 찾는 것이지요. 이는 악순환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강렬한 음식 맛은 스트레스가 풀리게 하기보다 스트레스를 감지하는 능력을 둔하게 만드는 작용을 합니다. 둔해진 스트레스 감지 능력은 다시 더 많은 스트레스를 껴안게 만듭니다. 스트레스가 쌓이는 줄도 모르게 되니 실상은 나도 모르게 스트레스가 더 많이 누적됩니다. 


입맛을 담백하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자극적이지 않은 음식도 훨씬 맛있게 먹을 수 있습니다. 고통스러울 정도의 강력한 맛을 찾지 않아도 더 풍부한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정말로 입맛이 순해지면 물도 맛이 다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실컷 땀 흘려 운동한 후에 마시는 물 한 잔이 그 어떤 음식보다 맛있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담백해지면 스트레스는 줄고 만족감을 훨씬 쉽게 느낄 수 있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나 자신과 담담하게 지내는 것이 좋습니다. 감정이 올라오면 담담하게 감정을 바라보는 것이 좋습니다. 감정 하나하나를 확대 해석하면서 덧나지 않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최초의 감정에 다른 감정을 덧씌우지 않고 딱 그만큼만 경험하고 털어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슬픈 감정이 올라오면 최초의 슬픔만큼 느끼고 흘려보내는 것입니다. 굳이 슬픈 사건에 대해 판단하고 확대 해석하고 미래에 대해 미리 절망하거나 유사한 과거를 복기하며 더 큰 슬픔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것입니다. 다른 모든 감정을 이런 식으로 서서히 담담하게 경험하고 떠나보내는 것입니다. 


일상을 담담하게 사는 것이 좋습니다. 자극적인 경험을 좇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사건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면서 부화뇌동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자극을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거나 행복을 추구하면 점점 더 큰 자극이 필요합니다. 둔해지는 입맛의 악순환처럼 스트레스에 둔감해져서 결국은 스트레스에 대한 저항력을 떨어뜨릴 테니까요. 반대로 일상을 담담하게 살면 작은 스트레스에 기민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됩니다. 작은 일에도 크게 행복감을 느끼게 됩니다. 일상의 마음이 서서히 평화로 물듭니다. 


담담하게 보고 경험하는 연습이 되어 마음이 어느 정도 평형을 꾸준히 유지하게 되면 전에는 몰랐던 '차분한 고요함'이 찾아옵니다. 그제야 깨닫습니다. 그동안 내가 나에게 어떤 해악을 저질러 왔는지 알게 됩니다. 차분한 고요함 덕분에 그동안 얼마나 혼란스럽게 살아온 것인지 그 차이를 실감하게 됩니다. 내 안에서 차분하고 고요한 영역을 발견하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처음 경험할 때는 '비범한 평화'라고도 부를 만하지요. 


나 자신과 담담하게 지내기. 

내가 마주하는 세상과 담담하게 지내기. 

내 안에서 올라오는 모든 것을 담담하게 경험하기. 


담담하게 살아가는 연습을 하다 보면 마음이 쉽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마음을 다루는 힘이 강해져 내 생각과 감정에 쉽게 길을 잃지 않습니다. 생각을 그냥 생각 그대로 바라보고, 감정을 그냥 감정 그대로 느끼는 힘이 강해집니다. 고통을 겪더라도 고통에 완전히 매몰되지 않습니다. 더 큰일이 생겼을 때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투명하게 볼 힘이 생깁니다. 보이지 않던 길이 보입니다. 고통을 비교적 쉬이 끝낼 수 있는 길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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