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펼쳐진 골목
숙소의 중정에서 아침을 먹었다.
빵과 계란, 과일주스, 민트차가 나왔다. 섬세한 모로코식 타일문양을 가진 그릇과 식탁은 좋았는데 음식은 그다지 우리 입맛에 맞지 않았다. 기름에 부친 기본빵은 느끼하고 다른 빵은 너무 달거나 아무 맛이 없었다. 그럼에도 친절한 직원과 좋은 숙소가 아침의 기분을 즐겁게 했다.
페스의 메디나를 돌아보기 위해 숙소를 나서는데 아브라함에게 연락이 왔다.
도시 간 이동 중에도 우리와 같이 식사를 하지 않고 스스로 식사를 해결하던 아브라함이 그날은 같이 점심을 먹자고 했다. 그런데 우리 일정이 여의치 않아 저녁을 같이 먹자고 하니 그러면 자신이 페스 여행의 가이드를 해 주겠다고 한다.
서로 간의 거리와 개인 일정에 대한 존중이 철저한 우리 사이였는데 아브라함의 이런 제안이 좀 낯설었다. 그래서 추론을 해봤다. 도시 간 이동에 대한 비용은 지불하지만 모로코에는 팁문화가 있다. 아브라함이 너무 잘해주고 고마워서 우리는 일반적인 팁보다 많은 팁을 주고 있었다. 팁은 하루 일정이 끝나고 헤어질 때 그날그날 지불했다.
아브라함은 많이 받은 팁에 대한 보상을 우리에게 해주고 싶었던 것 같았다. 속 깊은 아브라함에 감동하며 마지막 가죽염색 공방 가는 일정만 안내해 달라고 했다.
페스는 인구 백만명의 큰 도시이다. 전통과 현재가 공존하는 곳으로 페스의 메디나(원도심)는 1981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메디나에는 시장, 신학교와 모스크, 궁전, 분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 있다.
메디나로 들어가는 곳인 블루 게이트(Bab Bou Jeloud)는 페스를 상징하는 파란색 타일로 장식된 문이다. 우리는 문안으로 들어가서 뒤돌아보다 신기한 것을 발견했다. 아침 햇살이 환하게 비치는 문의 뒷면은 앞면과다른 초록색 타일로 장식되어 있었다. 초록색은 이슬람을 상징하고 종교, 학문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의미라고 한다.
블루 게이트를 지나면 자동차 소음으로 가득하던 도시가 중세의 도시로 바뀌는 것 같은 신비한 경험을 하게 된다. 문 하나를 지났을 뿐인데 오래된 좁은 골목과 상점의 풍경이 갑자기 펼쳐지기 때문이다.
문 안으로 들어가니 맨 먼저 네자린 목공예술관(Nejjarine Museum of Wooden Arts & Crafts)이 나온다. 목공예술관 앞 노천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카페는 아침 햇살이 서서히 비치는 목공예술관 건물을 천천히 보기에 좋은 곳이다.
모로코 생활문화 속에서 목재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보여주는 네자린 목공예술관은 17~18세기 상인들 숙소로 사용하면서 물건을 보관하고 거래하던 곳이다. 시대별로 목재를 가지고 만든 생활 도구들이 전시되어 있다. 중정을 두고 원처럼 사방에 펼쳐진 나무 발코니와 섬세한 건물 장식이 인상적이다.
메디나는 전체가 시장이었고 아름다운 미로였다. 궁전 같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이 있는 그대로 펼쳐져 그야말로 현장감이 넘치는 박물관이었다. 좁은 골목 양쪽을 가득 채운 작은 상점들에서는 모로코 전통빵부터 스카프, 전통의상, 색감이 조화를 이룬 양탄자, 그릇, 삼엽충 화석까지 안파는 게 없을 정도였다.
골목을 걸어가면 상인들은 "니하오"라고 말을 건다. 우리가 '사우스 코리아'라고 하면 손을 들어 최고라는 표시를 한다. 관광객에 대한 호의의 표시이기도 하겠지만 한국인에 대한 호감을 느낄 수 있었다.
시장골목은 사람들로 꽉 차 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 관광객들이 구경만 열심히 하지 물건을 사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게 마음에 걸렸다. 무언가 사겠지 하는 상인들의 맑고 순수한 눈길과 마주치면 더 미안했다.
걸어가다 베틀 같은 것을 놓고 직접 직물을 짜는 상점을 보았다. 신기해하며 그곳에서 선물할 스카프까지 여러 개를 샀다. 계산을 하고 보니 한 개에 만원이 채 되지 않았다. 질도 좋고 무늬도 세련된 스카프라 여행 내내 하고 다녔고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 그 스카프를 볼 때마다 여행의 기억이 기분 좋게 찾아온다.
메디나 골목을 걸어 신학교인 부 이나니아 메데르사(Bou Inania Madrasa)에 들렸다. 14세기 마린 왕조가 만든 이슬람 신학교이자, 동시에 금요 모스크 역할까지 했던 특별한 종교·교육 복합 건축물이다. 이곳은 거의 모든 벽 표면이 예술일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다.
이곳과 관련해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다. 술탄이 건축비가 너무 많이 들었다는 보고서를 받고서 장부를 찢어 강에 던지며 말했다고 한다. “아름다운 것은 비싸지 않다.”
공중파 여행 프로그램에서 모로코 여행을 가서 낙타버거를 먹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우리는 점심으로 낙타버거를 먹어보기로 했다. 10월 말인데도 모로코의 날씨는 한여름처럼 더웠다. 더위에 지친 우리는 시원한 음식점을 기대하고 들어갔는데 에어컨은 없고 루프탑은 햇살이 한가득이다.
할 수 없어서 실내에서 주문을 했다. 맥주를 시켰는데 미지근한 무알콜 맥주가 나왔다. 우리나라에서 예전에 먹던 맥콜 같은 맛이었는데 미지근한 맥콜이었다. 모로코는 이슬람 국가라 대부분의 식당에서 술을 팔지 않는다. 팔아도 무알콜 맥주 정도이다.
낙타버거는 걱정과 달리 먹을만했다. 우리가 늘 먹던 불고기 버거 맛 정도였다. 그리고 음식점이 상당히 가성비가 좋았다. 가격은 저렴했고 음식도 푸짐하고 맛있었다. 게다가 직원들이 2층에 있는 우리를 찾아와 음식이 어떤지 필요한 건 없는지 물어보았고 소소한 대화도 나눴다. 손님이 많았는데도 신경써 준 그들이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