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
셰프샤우엔에서 페스까지는 차로 4시간 걸리는 거리이다.
카사블랑카에서 셰프샤우엔으로 올 때의 강렬한 경험으로 우리는 아브라함이 부탁하기도 전에 점심을 먹고 바로 출발하자고 했다. 페스에 도착하기 전에 어두워지면 안 된다. 어둠이 내린 구불구불 외길의 공포를 잘 기억하고 있었다.
베르베르족 전통 음악을 들으며 출발했다. 처음에는 리프산맥을 보며 가는 길이었다. 산을 감아도는 좁고 구불구불한 도로였다. 올리브 나무와 야생 풀이 자라는 넓은 들판과 황토색 흙집들이 가끔씩 보이고 염소 떼가 마른풀을 먹기 위해 들판에 나와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처음으로 휴게소에 들렀다. 아브라함은 공중 화장실은 돈을 내야 하고 그다지 깨끗하지 않으니 햄버거 가게 안에 있는 화장실을 이용하라고 했다. 햄버거 가게 화장실은 꽤나 붐볐다. 긴 줄에도 다들 여유롭고 침착하게 기다렸다. 기다리면 순서가 온다.
리프산맥이 끝나가면서 산이 낮아지고 시야가 확 트이는 황토색의 텅 빈 들판이 계속된다. 넓은 들판 곳곳에 경작되지 않은 땅과 송전탑, 쓰레기들이 보인다. 종종 벽체가 무너진 채 방치된 건물도 있다. 황량한 풍경이다. 그러나 간간이 보이는 황토색 집에는 전깃줄이 연결되어 있고 빨래가 걸려있고 사람이 보이기도 해서 사람이 살고 있음에 이유 없이 안도하기도 했다.
한참을 달리다가 커피 파는 트럭이 길가에 있었다. 커피도 마시고 아브라함도 쉴 겸 차를 세웠다. 우리는 신나서 뛰어내렸고 트럭에서는 커피는 물론 석류주스, 민트차 등을 팔고 있었다.
주문을 하고 있는데 아브라함이 트럭 찻집 주인장인 젊은이에게 양해를 구하는 듯한 말을 하더니 차 짐칸에서 모포 같은 것을 꺼냈다. 우리는 추워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다음 순간 아브라함은 트럭 뒤 리프산맥이 정면으로 보이는 공간으로 가서 모포를 깔고 조용히 절을 하며 기도를 시작했다. 이십 대의 젊은이가 바쁜 시간을 쪼개 망망한 들판을 보며 그들의 신에게 기도를 드리는 장면은 감동적이었다.
우리는 석류주스를 마셨다. 아무것도 넣지 않고 석류를 착즙 해서 주었는데 달달하고 맛있었다. 모로코에서는 10월 말이 석류철인지 길가에 석류를 쌓아놓고 파는 노점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다 같이 사진을 찍으려 하자 트럭 찻집 주인장이 자신이 팔고 있는 방울 달린 밀짚모자를 빌려주며 쓰고 찍으라고 한다. 그가 찍어준 사진 속 아브라함과 우리는 리프 산맥을 배경으로 멕시코 사람 같은 귀여운 모자를 쓴 모습으로 활짝 웃고 있었다.
마을이 별로 없는 황야의 벌판을 달리다 만나는 커피 트럭은 굉장히 반가운 존재이다. 몇 걸음만 걸어도 있는 우리나라의 카페도 좋지만 드넓은 자연을 바라보며 바람과 함께 마시는 모로코의 차 한잔도 잊지 못할 기억이다.
가다 보면 중간중간 마을과 작은 시장이 나타난다. 올리브, 대추야자, 마늘, 양파, 사과, 감자, 당근과 같은 농산물이 푸짐하게 쌓여 있고 고기는 냉장고 없이 고리에 날것 그대로 걸려 있다. 히잡을 쓴 여성들은 가게 앞에서 물건을 고르고 주로 남성들은 물건을 팔고 있다. 광막한 벌판을 오랜 시간 달리다 만난 이 풍경, 지구 어디에나 있을 법한 이 평범한 풍경이 가슴속으로 따뜻하게 들어왔다.
해가 지기 전 페스에 도착했다. 패스는 미로 같은 골목의 도시이다. 작은 광장이 있는 학교 앞에서 내렸는데 숙소에서 리어카를 가지고 나와 주었다. 골목으로 차가 진입할 수 없었고 울퉁불퉁한 돌길이라 캐리어를 끌고 들어가기도 어려운 곳이었는데 숙소 측의 배려로 편하게 갈 수 있었다. 무료서비스는 아니고 도착해서 팁은 우리가 지불했다. 영어를 잘하는 직원도 함께 와서 안내해 주었는데 환대받는다고 느꼈다.
학교가 끝나는 시간이라 중학생, 고등학생 정도 되는 아이들이 골목으로 몰려 들어오면서 왁자지껄 생기가 넘쳤다. 아이들 대부분은 하얀 의사 가운처럼 생긴 겉옷을 입고 있었는데 교복인 것 같았다. 아이들은 우리를 보고 그냥 지나치거나 호기심 어린 눈길을 보내기도 했다. "싸~람(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건네자 같이 인사를 하는 아이들도 있고 쑥스러워하며 도망치는 아이들도 있었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저히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복잡한 골목을 지나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를 예약하면서 사진을 미리 보기는 했지만 실제 모습이 훨씬 더 고급스럽고 좋아서 놀랐다. 모로코식 타일로 장식한 아름다운 중정을 보며 감탄하고 있는데 그곳에서 아침식사를 한다는 말에 더 기분이 좋아졌다.
고급호텔처럼 직원들이 짐을 들어서 2층 방에 옮겨 주었고 방에 대한 설명도 자세히 해주었다. 방 역시 깔끔하고 침구를 비롯한 모든 물건들이 품격이 있었다.
그런데 이 숙소에서 가장 좋은 곳이 한 군데 더 있었다. 바로 패스 시내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옥상 테라스였다. 우리는 이틀 동안 이곳에 머물렀는데 저녁을 먹고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이곳에서 대화를 했고 잊지 못할 일몰과 일출을 보았다.
숙소 근처에 시장이 있다고 해서 짐을 풀고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골목이 워낙 복잡해서 구글지도는 물론 주요지점마다 사진을 찍으며 시장으로 갔다. 골목형 시장이었는데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그런데 식사를 할만한 식당은 없었고 포장 음식을 파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우리는 음식을 사가지고 가서 숙소에서 먹기로 하고 장을 보았다.
우유를 사려고 작은 마켓에 들어갔는데 갑자기 바로 옆 골목에서 심하게 싸우는 소리가 나더니 여성이 남성을 밀쳤고, 그녀의 남편인듯한 사람도 가세했다. 우리가 무서워하며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 물건을 팔던 젊은 여성이 안으로 들어와서 가게 문을 닫고 조용해질 때까지 함께 있어 주었다. 묘한 공감대가 형성되며 그녀와 우리는 눈짓을 주고받았고 싸움이 잦아들자 가게를 떠났는데 "슈크~란(감사합니다)"하고 인사를 했더니 미안한 듯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돌아오는 골목이 좁고 어두워서 두려운 마음으로 걷고 있는데 세발자전거를 탄 한 무리의 아이들이 골목에서 신나게 뛰어놀고 있었다. 기묘한 기분이 되었다. 이곳도 아이를 낳고 키우며 사람이 살아가고 있는 곳이었다.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니 갑자기 어두침침했던 골목이 고풍스러웠고 잡화를 파는 작고 초라한 가게가 정겨웠다.
헤매지 않고 숙소를 잘 찾았다. 근데 숙소 들어가는 방식이 특이했다. 대문이 성문처럼 크고 높았는데 번호키나 초인종은 없었다. 쇠로 된 문고리를 탁탁 두 번 치면 직원이 열어주었다. 신기한 것이 숙소가 들어가서 계단을 한층 더 올라가야 안내 데스크가 있는 구조라서 대문부터 꽤 거리가 있는데도 우리가 딱 두 번 두드렸는데 바로 직원이 나왔다는 것이다.
저녁을 먹고 옥상 테라스에서 일몰을 보고 있는데 모스크 여기저기서 맑고 또렷한 기도소리가 들려왔다. 해는 지고 선선한 바람은 불어 얼굴을 스치고 도시는 어둠과 함께 하나둘 불빛이 켜졌다. 언젠가 '모로코에 가보고 싶다'라는 소박한 마음 하나가 나를 이곳에 데려다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