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사람들
창문으로 들려오는 아침 기도소리를 들으며 일어났다.
창밖을 보니 온통 푸른색의 마을 골목이 보인다. 아침을 잘 챙겨 먹고 일찍 숙소를 나섰다. 세월이 지나면서 덧칠해진 푸른색이 주는 신비로움이 있었다. 푸른색의 세상에 들어온 느낌은 색다른 것이었다. 비슷하지만 모두 다른 그 푸른색은 사람은 물론 그 무엇과 있어도 잘 어울렸다.
셰프샤우엔은 언덕에 있는 마을이라서 오르내리는 계단이 많다. 그 계단도 모두 푸른색이다. 주민들은 계단 곳곳에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꽃이나 오렌지, 건물과 건물사이 줄을 메어 장식품 같은 것들을 걸어 놓았다. 가끔 스튜디오처럼 꾸며놓고 돈을 받는 곳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자유롭게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카메라 렌즈를 어디에 두어도 우리가 여행 프로그램에서 본 셰프샤우엔의 매력이 충분히 느껴지게 사진이 나온다. 유난히 고양이가 많았는데 푸른 벽 아래 웅크리고 앉아 있는 고양이 모습에 눈길이 맗이 갔다.
감탄사를 내뱉으며 사진을 찍고 있는데 한 젊은 남자가 자신이 예전에 포토그래퍼였다며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했다. 조금 망설이다 친절이 고마워 좋다고 했다. 그는 성심을 다해 사진을 찍었다. 바닥이 고양이 똥이나 개똥이 있어 그다지 깨끗하지 않았는데도 신발을 벗고 360도 회전하는 동영상까지 찍어 주었다.
근데 그는 술에 취한 듯했다. 술냄새가 났다. 우리는 좀 의아했다. 도통 술 파는 곳을 찾기 어려운 이곳에서 이른 아침 술 취한 청년이라니. 그 모습이 웃겨서 우리는 그를 "술 취한 포토그래퍼" 라고 별명을 붙였다. 사진을 다 찍고 나서 그는 돈을 달라고 했다. 찍어준 정성이 고마워 약간의 사례를 했는데 개인별로 달라고 해서 거절했더니 아쉬운 눈빛을 보내면서도 즐거운 시간 되라고 환하게 인사를 한다.
부자페르 모스크(Bouzafer Mosque)를 향해 가다가 갈림길이 나와 주변에 모여있던 남성들에게 길을 물으니 그들은 자신들이 하던 일을 작파하고 다 같이 와서 길을 알려준다. 우리가 못 알아들으면 같이 가주기도 할 태세로 몇 번이고 알려준다.
부자페르 모스크는 1920년대 스페인 식민 통치 시기에 건립되어 스페인 모스크(Spanish Mosque)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이 모스크는 아주 작은 폐모스크로 실제 예배를 보지는 않으며 모로코 전통 건축물도 아니다. 내부는 비어 있고 문도 닫혀 있다.
부자페르 모스크에 가는 이유는 가장 높은 언덕에 있어서 셰프샤우엔의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소 숨이 차게 언덕을 오르면 놀랄 만큼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또한, 주위에 높은 게 아무것도 없어 무심하게 앉아 바람을 실컷 맞을 수 있다. 무언가 마음에 쌓여 있는 것들이 있다면 이곳에서 모두 날리시라고 권하고 싶다.
모스크에서 내려와 중앙 광장((Plaza Uta el-hammam)에 있는 카스바(Kasbah)에 들어갔다. 유료관람이고 지역주민은 무료이다.
카스바(Kasbah, 정식명칭: Kasbah of Chefchaouen)는 1471년에 건립했는데 포르투갈의 북아프리카 진출이라는 위협에 맞서기 위해 지은 방어 요새이다. 셰프샤우엔의 가장 중심지에 자리 잡고 있으며 셰프샤우엔의 푸른색과 대비되는 두꺼운 황토색으로 만들어 오히려 눈에 띄는 사각형의 건물이다.
꼭대기에 있는 탑에 올라가면 파란 메디나와 산, 광장이 창문으로 보인다. 민속박물관은 셰프샤우엔과 리프 산맥 지역의 전통 의상, 악기, 무기, 생활 도구를 전시하고 있다.
오렌지 나무와 작은 분수가 있는 안뜰을 지나 화장실에 가서 잊지 못할 경험을 했다.
화장실은 아주 깨끗했다. 그런데 양변기가 아니라 쭈그려 앉는 구조로 배설물이 빠지는 구멍과 어딘가를 가리기 위해 살짝 올라온 부분이 다 뒤쪽에 있었고 앞쪽은 가리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게다가 바닥은 물이 흥건했다. 당황스러웠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일을 보고 나온 우리는 어느 방향으로 앉아야 하느냐로 갑론을박을 벌였다. 난상토론 후 우리는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소변은 벽을 보고, 대변은 문을 보고 앉는다.
돌아와서 자료를 찾아보니 카스바 내부 화장실은 현대식 변기 중심 설계가 아니라 바닥 배수와 벽체 안으로 숨겨진 물길, 간결한 개구부(구멍)를 중심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편안함보다는 위생과 유지를 우선한 설계이다. 종이보다 물 사용을 전제로 한 구조라서 손과 몸 세정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동선과 바닥 전체를 물로 씻어낼 수 있도록 만든 경사가 그 특징이라고 한다.
변기의 살짝 올라온 부분이 구멍과 같은 쪽에 있었던 것은 물청소를 쉽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카스바를 나오니 광장 주위 음식점에 사람들이 가득 차 활기가 넘쳤다. 식사할 식당을 고민하고 있는데 벙거지 모자를 깊게 눌러썼지만 쓸쓸한 눈빛이 인상적인, 게다가 브레드 피트를 닮은 한 청년이 다가와 메뉴판을 내밀며 식당을 안내했다. 우리는 포로처럼 그 식당으로 들어갔다. 근데 그는 서빙을 하지 않고 손님들을 불러 모으는 역할만 하는 사람이었다.
식당에서 안내해 준 자리에 앉았다가 담배 연기로 옆자리로 옮기려고 일어섰는데 방석에 누가 물을 쏟았는지 내 엉덩이가 축축하게 젖는 일이 발생했다. 주인에게 말하고 수건으로 닦고 있는데 옆에 앉아 있던 노부부 중 남자분이 재밌어 하며 지켜보다가 내가 그런 거 아니냐며 장난을 치고 박장대소를 한다. 꺽 소리가 날 정도로 웃어 제끼는 그분의 웃음이 너무도 천진해서 우리도 같이 엄청 웃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짐을 챙겨 골목을 나섰다. 몇 번 오고 갔다고 눈에 익어 캐리어를 끌고도 갈 수 있었다. 심한 돌바닥과 계단은 캐리어를 낑낑 거리며 들어야 했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어제 들어왔던 입구로 나갔다. 가다 보니 어제저녁 빵을 팔던 소년이 같은 자리에서 나무판자에 빵을 수북이 올려놓고 팔고 있었다.
고마운 아브라함을 만나 푸른 도시 셰프샤우엔을 떠나 페스로 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