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프샤우엔 가는 길

인샬라!(신의 뜻대로)

by 정안

셰프샤우엔은 카사블랑카에서 차로 5시간 이상 걸리는 먼 곳이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라는 시가 생각나는 여정이다. 오직 1차선밖에 없는 도로를 몇 시간씩 달리다 보면 망망한 들판이 세상의 전부인양 계속된다. 그러다 잊을만하면 크고 작은 마을이 나온다. 이 길을 가면서 인상적인 것 세 가지가 있었다.


지나가는 차가 태워주기를 기다리는 사람들

넓은 평야에 드문드문 위치한 마을로 인해 대중교통이 원활할 리 없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다. 그러나 길 곳곳에 아주 많은 사람들 즉 아이들을 포함한 몇 명의 가족단위, 갓난아이를 안고 있는 여성, 여성 혼자, 남성 혼자, 중학생쯤 돼 보이는 아이들 몇 명 등 모든 형태의 사람들이 지나가는 차가 태워주기를 기다리는 모습을 보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붉은 흙먼지만이 휘날리고 아르간 오일 나무가 빼곡히 심어진 농장 옆 황량한 길가에 그들은 그렇게 무심히 서 있었다. 그들은 차를 세워달라는 어떤 표시도 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서있을 뿐이었다. 우리가 차를 타고 달리는 동안 그들을 태워주는 어떤 차도 보지 못했다. 그들의 표정에서 기다린 지 많은 시간이 지났을 알 수 있었다. 마음이 먹먹해진 건 이런 풍경이 상당히 오래 지속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과연 오늘 중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겹쳐서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기다리다 지쳐 끝도 없어 보이는 황톳길을 터덜터덜 걸어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갑자기 기묘한 깨달음이 나를 찾아왔다. 이슬람의 언어로 "인샬라! (신의 뜻대로!)". 삶은 어디서든 지속된다. 그들의 삶도 어떤 형태로든 이곳에서 지속되어 왔고 나의 삶도 다른 곳에서 지속되어 왔다. 내 삶의 잣대로 그들을 보고 먹먹해하고 불편해했던 마음이 부끄러워졌다.


광활한 들판 위 쓰레기

지나가는 풍경의 99프로가 광활한 들판이었는데 그 들판을 점령한 쓰레기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쓰레기들은 길가 쪽에 집중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일부분이겠지 했지만 달리는 내내 온갖 쓰레기가 흩어져 있었다. 상대적으로 쓰레기가 적은 들판 안쪽에서는 염소나 양을 데리고 나와 풀을 먹이는 사람들도 볼 수 있었다. 괜찮을까? 쓰레기를 구분할 능력이 염소나 양에게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로코 들판 대부분에는 아르간 오일 나무가 심어져 있었는데 그 나무들 사이에도 쓰레기가 있었다. 어떤 농장은 주인이 쓰레기를 치웠는지 깨끗했지만 그렇지 않은 곳도 많았다. 놀라워서 아브라함에게 물어보니 바람이 불어와서 날아온 것이라고만 했다.


쓰레기 처리를 정부에서 하지 않는 것인가 하는 의문과 한다고 해도 넓은 땅에 사람이 사는 마을은 적으니 역부족이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그래도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리니까 바람에도 날아오는 것이 아닐까. 척박하지만 자연이 중요한 자원인 모로코의 땅이 쓰레기로 오염되어 가는 게 안타까웠다.


그러나 모로코 여행 일수가 점점 늘어나면서 들판의 쓰레기를 청소하는 공공인력을 드물게 목격할 수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니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정부가 역할을 하고 있구나 하는 오지랖 넓은 안심.


들판의 마을을 이어주는 송전탑

차를 타고 가다 보면 규모가 있는 도시들도 있지만 우리나라 농촌에 있는 외딴 몇 채의 집처럼 막막한 들판 한가운데 황토집만 덜렁 있는 경우가 많았다. 마을의 규모와 무관하게 도시가 아닌 모로코 들판에 있는 집들은 황토흙에 문과 창문만 있는 단순한 구조의 집이 대부분이다.


그런 집들을 보며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 의문을 품었는데 높은 건물 하나 없는 그 망망한 들판에 우뚝 서 있는 송전탑들과 그 전선줄들을 보며 최소한 전기가 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 전선줄이 외딴집들을 이어주는 생명선처럼 느껴졌다.


나는 살아가면서 느낀다. 부서지기 쉬운 개인의 삶, 한번 실패하면 회복하기 어려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쟁사회에서 정부의 존재는 얼마나 중요한가. 정부는 우리에게 말해야 한다. 당신들이 아프거나 실직하거나 가족을 잃는 슬픔을 겪는다고 해도 나락으로 떨어지거나 삶이 끝나지 않도록 정부가 지켜주겠다고 그렇게 당신의 뒤를 지키겠다고.


모로코의 순하고 친절한 사람들에게도 그들의 척박한 삶을 지켜주는 따뜻하고 든든한 정부가 있기를 소망한다.


날이 환할 때는 아브라함이 일찍 출발하자고 한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러나 점점 어두워지면서 우리는 아프게 깨달았다. 진짜로 우리의 안전을 위해 환할 때 도착하도록 일찍 출발했어야 한다는 것을.


산악지역이라 그런지 어둠이 일찍 찾아왔다. 오후 5시가 넘어서자 조금씩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아브라함의 말수가 부쩍 줄었고 우리도 조용해졌다. 외줄기 길, 앞차도 없고 뒤차도 없는 구불구불한 도로, 평지가 아닌 산으로 오르내리는 도로에 어둠이 내리면 그것은 모험 어드벤처 게임을 하는 중년의 굼뜬 사람들의 시선이 된다.


운전은 아브라함이 하고 있는데 우리 모두 순간순간 긴장해서 브레이크를 밟고 있고, 갑자기 상대편 차로에서 상향등을 켜고 모퉁이를 도는 차라도 나타나면 아찔했다. 차만 타면 잠을 자던 나도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게다가 가장 괴로웠던 건 아브라함에 대한 미안함이었다. 일찍 출발하자는 그의 말을 들었어야 했다. 우리가 정말 미안하다고 하자 아브라함은 "괜찮아 괜찮아"하며 더 경쾌한 음악을 틀어주었다. 이 음악이 은근 중독성이 있었다. 베르베르족 음악이었는데 타악기를 두드리며 맑고 높은 목소리로 노래를 했는데 악기와 목소리의 조합이 굉장히 좋았다. 오랫동안 들어도 지루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두워지는 1차선 굴곡진 외딴 도로가 주는 당황스러움은 극복되지 않았다.


음악도 우리를 위로하지 못하는 시간 동안 뼈아픈 후회를 하며 어둠 속에서 몇 시간을 견뎠다. 내일부터는 일찍 출발하자고 다짐하면서.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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