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웃는다

꽃은 위로다

by 유땡이

해가 서쪽으로 기울며 시원한 바람이 스친다. 해를 바라봐도 크게 눈부시지 않고 적당한 온기가 좋았다. 그래서 햇살 쬐는 고양이 마냥 꽃집 테라스에 엉덩이를 걸쳤다. 그때는 마음이 살짝 우울한 시기였다. 허리 디스크가 터져서 미루고 미루다 결국 수술을 했고 보조기를 차고 생활했다. 앉지도 못하고 밥 먹을 때도 서서 먹어야 했고 운전도 안 되어 살살 걸어 다녔다. 다니던 회사에서도 동료와의 불화로 등 떠밀려 사표를 내고 쉬고 있었다. 대학 졸업 후 일을 놓아 본 적이 없었는데 갑자기 소속이 없어지니 길을 잃은 것처럼 불안했다. 다시 뭘 해서 먹고살 수 있을까? 도대체 뭘로 주저앉은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을까? 허리가 아파서 한동안 발도 묶인 처지니 내 신세가 처량 맞았다. 나의 쓰임이 없어진 듯했다.

남편은 꽃집을 한다. 꽃과 식물을 좋아해 바람 쐴 겸 쉬이 동네 한 바퀴 돌다 이곳에 앉게 되었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싫었고 입도 잘 떨어지지 않고 말수도 줄었는데 이제 막 피어난 노오란 수선화가 말을 걸어왔다. 나에게 조용히 고개를 기울이고 부담스럽지 않게 따스한 미소를 보냈다. 신기한 일이다. 늘 무수히 많이 보아왔던 꽃들인데 오늘은 마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괜찮아! 어차피 아파서 일하기도 힘든데 이참에 쉬어가자. 비워야 다시 채워지지. 여태 앞만 보고 달리느라 주변을 보지 못했지? 하늘도 보고 땅도 보고 꽃도 보고 살자. 어쩌면 이 시간이 선물이 될 거야.’

그렇게 그 불안한 시간을 꽃에서 위로받으며 견뎌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와 비슷한 공허한 표정을 한 할머니가 나처럼 꽃집 테라스에 엉덩이를 걸치고 꽃을 바라본다. 햇볕을 오랫동안 보지 못한 듯 얼굴이 창백했다. 옆에 다가가 인사를 건네니

“나 꽃 좀 보다 갈게”

하신다.

“얼마든지요~ 편하게 계시다 가세요~”

할머니는 꽃을 쓰다듬기도 하고 향기를 맡기도 하시다 이네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셨다.

“우리 영감이 많이 아파. 뇌졸중으로 쓰러지셔서 온몸이 마비되어서 집에 누워만 있어. 내가 대소변 받으며 병간호를 하니 밖에 나올 수가 있어야지. 밖에 나오면 이렇게 예쁜 거 천지인데 말이야. 우리 영감도 얼마나 나오고 싶을까? 걷고 싶을까?”

하며 끙차! 일어나신다.

나는 얼른 수선화를 할머니 손에 들려주었다. 마다하셨지만 실랑이 끝에 할머니 손에 들려 보냈다.

“할머니 이 노란 수선화는 힘이 있어요. 온 집안이 환해질 거예요. 할아버지도 분명 기분 좋아지실 거예요.”

이 꽃이 나에게 그러했듯 분명 그들에게도 따뜻하게 말 걸어 주고 환하게 웃어주어 줄 것이다. 꽃의 힘을 믿는다.

며칠 뒤 할머니가 지나다 들리셨다. 찐빵 한 봉지 툭 던져주며

“우리 할아버지가 꽃 보고 웃었어. 그동안 웃는 걸 잊은 줄만 알았는데 할아비가 글쎄 웃더라고~.”

그 뒤 할머니는 가끔 꽃집에 들러 수다도 떨고 상추도 주고 고추도 주고 옥수수도 주신다.


할머니가 웃는다. 꽃이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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