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잎이 떨어지는 시간(16)

작은 바늘, 큰 마음

by 제이엘

생후 2개월 예방접종 날이었다. 전날 밤부터 마음이 무거웠다. 아직 목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작은 아이가 주사를 맞고 울 모습을 상상하니 잠이 오지 않았다. 엄마는 "괜찮다, 다른 아이들도 다 맞는 거야"라며 나를 달래주셨지만, 초보 엄마인 내게는 모든 것이 걱정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아이를 깨우지 않으려고 조심스럽게 준비를 마쳤다. 병원에 가기 전 아이에게 예쁜 옷을 입혔다. 흰 색 우주복에 작은 곰돌이가 수놓인 모자. 마치 특별한 외출을 준비하는 것처럼 정성스럽게 골랐다. 아이는 아직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 채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그 평온한 얼굴을 보니 더욱 미안해졌다.


"시간 맞춰서 가자."


엄마가 가방을 챙기며 말씀하셨다. 아기 용품, 젖병, 기저귀까지 빠짐없이 챙겨 넣었다. 평소보다 더 꼼꼼히 준비했다. 혹시 병원에서 아이가 울고 보채면 달랠 수 있도록.


병원까지 가는 길에 아이는 차 안에서 주변을 신기한 듯 바라봤다. 지나가는 사람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들, 햇살이 만들어내는 그림자들. 모든 것이 아이에게는 새로운 세상이었다. 그 순수한 호기심을 보며 잠시 걱정을 잊을 수 있었다.


엄마와 함께 병원에 도착했을 때, 소아과 대기실에는 여러 아이들이 있었다. 어떤 아이는 이미 울고 있었고, 어떤 엄마는 아이를 달래느라 분주했다. 예방접종을 마치고 나온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다. 나는 아이를 품에 꼭 안고 순서를 기다렸다.


대기하는 동안 다른 엄마들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몇 개월이에요?"

"우리 아이는 저번 접종 때 열이 좀 났어요."


같은 처지의 엄마들과 나누는 소소한 대화가 위안이 되었다. 모두들 같은 마음이구나.


"다음, 강○○ 어머니."


간호사가 이름을 부르자 심장이 쿵 떨어지는 것 같았다. 진료실로 들어가는 동안 아이는 여전히 평온했다. 의사 선생님이 아이를 진찰하고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네요. 몸무게도 적당하고요"라고 말씀해주실 때까지는 모든 게 순조로웠다.


"오늘 접종할 백신은 총 세 개입니다. 폐렴구균, DTaP, 그리고 로타바이러스예요."


의사 선생님이 설명해주는 동안 나는 긴장으로 손에 땀이 났다. 아이는 여전히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천장의 캐릭터 스티커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첫 번째 주사가 시작되자 모든 게 달라졌다. 바늘이 들어가는 순간, 아이가 세상에서 가장 슬픈 울음을 터뜨렸다. 그 울음소리가 내 심장을 찢어놓는 것 같았다. 두 번째, 세 번째 주사가 이어질 때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괜찮아, 괜찮아. 엄마 여기 있어."


나는 아이를 달래면서도 정작 내가 더 울고 싶었다. 엄마가 옆에서 "애가 아프면 엄마가 더 아픈 거야"라고 속삭여주셨다. 정말 그랬다. 아이의 아픔이 고스란히 내 아픔이 되었다.


의사 선생님이 "괜찮아요, 아기들은 금세 잊어버려요"라고 말씀하셨지만, 나는 한참 동안 진정이 안 되었다. 주사를 다 맞고 나서 아이는 정말 금세 울음을 그쳤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하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무거웠다.


간호사 선생님이 "30분 정도 대기실에서 기다려주세요. 이상반응 있나 지켜봐야 해서요"라고 안내해주었다. 대기실로 나와 아이를 안고 있는데, 아이는 오히려 나보다 더 담담해 보였다. 이게 엄마의 마음이구나. 아이보다 내가 더 힘들어하고 있었다


사르트르는 말했다. "타인은 지옥이다." 하지만 오늘 나는 그 반대를 느꼈다. 타인, 특히 내 아이는 나의 존재 이유였다. 아이의 아픔 앞에서 나는 완전히 무력했지만, 동시에 이전에 없던 강한 보호 본능을 느꼈다. 이것이 모성이라는 것일까.


30분이 지나고 별다른 이상이 없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아이는 카시트에 앉아서 다시 모든 것을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었다. 아까 전 일은 정말 잊어버린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보니 한편으로는 안도가 되면서도, 아이의 회복력에 놀라웠다.


집 근처에 다다랐을 때 휴대폰이 울렸다. 카카오톡 알림이었다. 시누이로부터 온 메시지였다.


"예방접종 수고했어."


그 아래로 15만원이 송금되었다는 알림이 보였다.


순간 기분이 이상해졌다.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돈을 보내는 게 마치 일용직 일을 마친 직원에게 품삯을 주는 것 같았다. 예방접종은 내 아이를 위한 일인데, 왜 나에게 수고했다고 하는 걸까. 아이의 건강을 챙기는 것이 내게는 당연한 일인데.


엄마에게 휴대폰 화면을 보여드렸다.


"이상하지 않아요? 무슨 아르바이트를 마친 것처럼 수고했다고 하네요."


엄마는 잠시 화면을 들여다보시더니 말씀하셨다.


"그분 나름대로는 고마움을 표현하는 거겠지. 근데 참... 말이 좀 그렇긴 하네."


한참을 고민했다. 받아야 할까, 거절해야 할까. 돈 자체가 문제는 아니었다. 아이를 위해 쓰라는 의미일 수도 있고, 실제로 병원비나 교통비도 들었으니까. 문제는 그 표현 방식이었다. '수고했다'는 말 속에는 마치 내가 남의 아이를 돌봐준 것 같은 뉘앙스가 있었다.


결국 나는 송금 거절을 눌렀다. 그리고 "괜찮습니다. 제 아이 일인데요"라고 답장을 보냈다. 내 아이인데 왜 수고했다고 하는지, 왜 돈을 주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집에 도착해서 아이를 침대에 눕히며 생각했다. 왜 이런 기분이 드는 걸까. 돈 자체가 문제는 아니었다. 아이를 위해 쓰라는 의미일 수도 있고, 실제로 병원비나 교통비도 들었으니까. 문제는 그 표현 방식이었다. '수고했다'는 말 속에는 마치 내가 남의 아이를 돌봐준 것 같은 뉘앙스가 있었다.


하지만 아이를 보니 그런 감정들이 사라졌다. 예방접종을 맞고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 잠들어 있는 아이. 건강하게 자라나는 이 아이가 있다면 다른 것들은 중요하지 않았다.


저녁이 되어 남편에게 전화했다.


"오늘 예방접종 잘 마쳤어. 우리 아기 울긴 했지만 금세 괜찮아졌어."

"고생했어. 많이 아팠을 텐데."


남편의 목소리에는 미약한 걱정이 담겨 있었다.


"그런데 언니가 15만원을 보내면서 수고했다고 하더라."


나는 시누이 이야기를 꺼냈다.


"그래서 거절했어. 내 아이 예방접종인데 왜 수고했다고 하는지 모르겠어."


이 시기에 시누이들의 행동이 이상했다. 아기가 없어서 그런지 내 아이를 마치 자기들 아이인 양 대했다. 이것저것 간섭하려 들고, 육아에 대해 이런저런 의견을 내기도 했다. 물론 조카를 예뻐하는 마음이겠지만, 때로는 선을 넘는 것 같았다. 이날의 송금 건도 그런 연장선이었다.


"에이, 누나 나름대로 고마워서 그런 거겠지. 왜 거절했어? 그냥 받지."


남편의 반응은 예상했던 대로였다.


"아니야, 그 말투가 이상했어. 마치 내가 남의 아이 돌봐준 것처럼."

"너무 예민하게 생각하는 거 아냐? 누나가 뭔 나쁜 뜻으로 그랬겠어."


남편은 내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같은 '고생했다'는 말인데도 느낌이 전혀 달랐는데, 남편에게는 그런 미묘한 차이가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밤에 아이를 재우면서 오늘 하루를 돌아봤다. 예방접종이라는 작은 일상 속에서 나는 많은 것을 느꼈다. 엄마가 된다는 것의 의미, 아이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는 마음, 그리고 가족이라는 관계 속에서 느끼는 미묘한 감정들까지.


사르트르가 말한 '타인'과는 다른 종류의 타인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내 아이는 나와 분리된 개체이지만, 동시에 나의 일부이기도 했다. 아이의 존재는 나를 더 강하게 만들기도 하고, 더 약하게 만들기도 했다. 아이의 작은 아픔 하나에도 온 마음이 흔들렸지만, 그 아이를 지키겠다는 의지는 그 어떤 것보다 강했다.


엄마가 방문을 살짝 열고 들여다보셨다. "잘 자고 있네. 오늘 정말 수고했어." 엄마의 그 말은 따뜻했다. 진심이 담겨 있었고, 내가 겪은 마음의 무게를 이해해주는 느낌이었다.


아이는 평온하게 잠들어 있었다. 하지만 나와 엄마는 밤새 돌아가며 열을 재야 했다. 예방접종 후 열이 날 수 있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 때문이었다. 엄마는 "38도 넘으면 해열제 먹이고, 그래도 안 내리면 병원 가야 한다"며 체온계를 손에 쥐고 계셨다.


두 시간마다 깨서 아이의 이마를 만져보고, 체온을 재고, 다시 잠들기를 반복했다. 다행히 열은 37도 중반에서 맴돌았다. "괜찮다, 이 정도는 정상이야"라고 엄마가 말씀하셨지만, 초보 엄마인 나는 체온이 조금만 올라가도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새벽 3시쯤, 아이가 칭얼거리며 깼다. 열 때문에 보채는 것 같았다. 엄마와 나는 번갈아가며 아이를 달래고, 미지근한 물수건으로 몸을 닦아주었다. "이렇게 해주면 열이 조금 내려가거든"하며 엄마가 아이의 손과 발을 부드럽게 닦아주셨다.


내일이면 아이는 오늘의 아픔 따위는 기억도 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날의 또 하나의 소중한 기억이 될 것이다. 처음으로 아이와 함께 견뎌낸 작은 시련. 그리고 그 과정에서 더 깊어진 모성애. 무엇보다 친정 엄마와 함께 밤을 새우며 아이를 돌본 이 시간이 특별했다.


예방접종 한 번이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할 줄 몰랐다. 앞으로도 이런 일들이 계속 있을 것이다. 아이가 아플 때, 다칠 때, 힘들어할 때. 그때마다 나는 아이와 함께 아파하고, 함께 이겨낼 것이다. 그것이 엄마가 된다는 것의 의미일 테니까.


창밖으로 달이 보였다. 오늘과 같은 달이 앞으로도 수많은 밤을 비춰줄 것이다. 아이가 자라나는 모든 순간들을. 그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평온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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