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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의 나무 Jul 14. 2023

나를 보호하는 방법

먼저 주어진 환경을 파악하기 & 선인장의 가시처럼 살아남기

선인장 마그넷으로 만든 화원


한때 에피톤 프로젝트의 노래를 즐겨 들었다. 앨범에 수록된 모든 노래의 가사와 멜로디를 차세정, 한 사람이 직접 만드는 1인 프로젝트 그룹이다. 전 국민이 모두 따라 부를 만큼 엄청나게 알려진 노래는 아니지만, 한 번 들으면 좋아할 수밖에 없는 곡이 많았다. 속 깊은 이야기를 담담하게 들려주는 것 같은 가사를 차분한 멜로디에 얹어 부르는 노래를 듣다 보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강렬한 감정을 담아 외치는 웅변보다 가만히 속삭이는 목소리를 더욱 귀 기울여 듣게 되는 것 같달까, 에피톤 프로젝트의 음악이 그랬다. 처음 알게 된 것은 우연히 컴필레이션 앨범에 실린 곡 때문이었는데, 타루가 피처링한 ‘그 사람이 아프다’라는 노래였다. 오리지널을 찾아보니 1집 음반에 실려 있는 곡이었고, 그 이후 지금까지 에피톤 프로젝트의 노래를 즐겨 듣게 되었다. 


특히 2집 앨범은 얼마나 많이 들었던지 한동안 나의 BGM 같은 음악이었다. 그중에서도 심규선이 피처링한 ‘선인장’을 참 좋아했다. 사막에서도 살아가는 식물이라 그런지 ‘선인장’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사막의 이미지와 겹치는 면이 많았다. 거칠고 건조하고 한편으론 강인한 느낌 같은 것들. 실제 노래 가사에도 내가 가지고 있던 선인장의 이미지와 같은 모습이 묘사되는 부분이 있다.      


‘차가운 모습에 무심해 보이고

가시가 돋아서 어둡게 보여도’     


어쩌면 전형적인 선인장의 이미지일 것이다.      


그런데 정작 노래를 들으면 선인장에 대한 이미지가 새롭게 각인된다. 물론 그 이유는 밝은 느낌의 멜로디와 사랑스러운 편곡의 영향이 크지만 무엇보다 솜사탕처럼 부드럽고 보송보송한 느낌이 물씬 풍기는 매력적인 심규선의 목소리의 역할이 크다. 바로 다음에 이어지는 가사가      


‘걱정하지 마, 이내 예쁜 꽃을 피울 테니까’     


하는 반전으로 이어지는 것이 전혀 낯설지 않고 신선하게 들린다. 


싱그러움을 담은 초록 이파리도 아니고 가시가 많아 손을 뻗어 쓰다듬어 볼 엄두조차 나지 않아 거리감이 느껴지는 식물이었다. 눈에 띄게 줄기를 뻗어 새 잎을 돋우는 것도 아니고 잊어버릴 때쯤 한 번씩 물을 주어도 꿋꿋이 살아남으니 무심할 수밖에 없기도 하고. 그런데 가사에서 꽃을 피운다는 내용을 듣고 나니 


‘아! 선인장도 꽃이 피는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들었다. 외부로부터 손을 타지 않으려는 고집스러운 가시에 압도되어 선인장도 꽃이 피는 식물이라는 것을 잊고 있었던 것 같다. 


선인장의 가시는 원래 잎이었는데 사막에서 살아남기 위해 수분의 증발을 최대한 막기 위한 방식으로 적응한 결과라고 배웠다. 선인장도 식물이니 사막에서 목마른 동물들이 수분을 섭취하려 접근할 때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가시는 더욱 뾰족하게, 촘촘하게 변화했을 것이다. 자신이 살아가는 환경이 척박한 것을 탓하지 않고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최적의 모습으로 스스로를 바꾸고 적응한 것이 용감하다. 


그러고 보니 어쩌면 사람들 중에도 연약하고 보드라운 진짜 모습을 감추기 위해서 겉으로는 강하고 거칠게 자신을 적응시키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선인장의 가시처럼 다른 사람들로부터 상처받지 않으려,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게 보호해 온 것을 ‘용감하다’가 아닌 ‘비겁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 작품을 만들 때 나의 심신은 오아이스 없는 사막을 끝없이 걷고 있어서 갈증과 피로가 극에 달해 있었다. 학교에서 사업계획서를 쓰는 팀의 일원이 되어 필수적으로 주어진 업무 외에 TF 일을 하느라 출퇴근 시간은 커녕 주말도 없이 일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주중에 저녁 두 시간은 회의를 하거나 다음 회의를 위한 준비에 치여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을 보내는 건 사치같이 느껴졌었다. 


하지만 일주일에 한 번, 두 시간의 여유조차 갖지 못한 채 한 달이 지나니 마음은 거칠대로 거칠어져 바스러질 것 같았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응급실에 가는 심정으로 카페 화실에 갔다. 직전에 만들던 마그넷을 마무리하고 내친김에 선인장 모양의 피스를 몇 개 더 만들었다. 


얼마 전에 이미 선인장 모양으로 작품을 만든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조금 더 풍성하게 붙여보았다. 완성하고 나니 선인장 정원 같기도 하고, 이전 작품과 함께 시리즈가 된 것 같아 만족스러웠다. 피스가 하나만 있을 때는 크기가 작아서인지 초라해 보였는데, 여러 개를 모아 놓고 보니 든든했다. 이번에는 선인장 패널도 하얗게 채색하니 말끔하고 산뜻하게 느껴져서 더 마음에 들었다.      


에피톤 프로젝트의 ‘선인장’에는 이런 가사가 반복된다.       


‘언젠가 마음이 다치는 날 있다거나

이유 없는 눈물이 흐를 때면 나를 기억해

그대에게 작은 위로가 되어줄게.’     


사막 같던 날들 중에 나를 위해 허락한 두 시간. 그 시간 동안 만들었던 선인장처럼 나를 보호하기 위한 시간. 그 시간은 그렇게 나에게 작은 위로가 되어 주었다. 




아무리 피곤하고 지쳐도 나만을 위한 시간을 잠시나마 가질 수 있다면 어떨까. 때로는 특정한 방법이나 시간, 묘책이 있어서 누구나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아무리 자신 있게 내놓은 방법이라고 해도 그것이 거센 파도치는 바다나 깊은 산속을 헤매다 깨달은 것이라면, 내가 서 있는 사막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을 해법일지도 모른다. 나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온전히 나를 위해 내 마음에 집중한다면 어쩌면 그 자체로 다시 힘을 낼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진짜 나에게 집중하는 순간이 비로소 나를 보호하는 시간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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