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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의 나무 Mar 25. 2024

좋은 소식 VS. 나쁜 소식

혼돈의 사건이 꼬리물기하는 날들 속에 단상 

- 날씨가 풀렸다 VS. 황사와 미세먼지가 찾아왔다

- 겨울이 끝났다 VS. 꽃샘추위에 감기 기운이 돈다

- 새 학기가 시작되어 캠퍼스에 활기가 돈다 VS. 갑자기 보직을 두 개나 맡게 됐다

- 우여곡절 끝에 보직에서 벗어났다 VS. 가족들의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

- 오빠가 5년 만에 귀국했다 VS. 예상치 못한 건강 검진 결과에 출국을 못하고 있다

- 건강 검진에서 문제를 발견했다 VS. 의료 대란으로 진료와 치료 일정이 지연되고 있다

- 혼란 중에 상급 병원에 초진 일정을 잡았다 VS. 의료 대란 상황이 점점 꼬여간다

- 엄마가 정기 검사 일정은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VS. 엄마의 병이 전이되었다 

- 엄마의 재발 소식을 혼자 감당하지 않을 수 있다 VS. 중환자가 가족 중에 두 명이 되었다  

- 의료 대란에도 엄마의 항암치료가 곧바로 시작되었다 VS. 항암주사제가 전보다 훨씬 더 독해졌다     




브런치를 처음 시작하게 된 배경 중 하나에 엄마의 암투병이 있었다. 나의 삶은 엄마의 암 투병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일상과 생각, 감정에 변화가 컸다. 매일, 매 순간, 한 번도 겪지 않았던,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을 겪으며 깊이 생각하고 판단할 겨를 없이 닥치는 대로 무언가를 해야만 했다. 감정을 느끼는 것은 사치에 가까웠다고 해야 하나. 조금 더 정확히 하자면, 온전히 감정을 느끼면서는 그 어떤 일도 해내기가 어려웠다. 일의 속도는 차치하고, 무감각하게, 덤덤하게 때로는 기계적으로 하지 않으면 좀처럼 일의 진행이 힘들었다.      


한참 그렇게 지내다 보니 동굴 속으로 깊이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어둡고 긴 터널을 빠져나오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조금씩 빛이 보이고 공기가 달라졌다고 느꼈을 때 그제야 기록이라는 것을 해보고 싶어졌다. 나에게 쓰는 편지 같기도 하고, 스스로를 독려하는 응원 같기도 했다. 그렇게 조금씩 썼던 것들이 모이자 비슷한 상황에 있는 누군가와 나누고 싶기도 했다. 그게 이 공간의 시작이라면 시작이었다.      

이 공간의 시작은 분명 거친 파도와 한바탕 사투를 벌이고 잔잔한 바람과 물결을 만난 시점이었다. 마음도 물결처럼 차분해지고 조금씩 부드러운 바람을 느끼고 있었다. 계속 그렇게 앞으로 나아가 안전한 항구에 닿을 줄 알았다.      


하지만, 삶이란 것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불과 한 달여 전, 2월 중순에 해외에 사는 오빠가 잠시 귀국했다. 2주간 출장을 겸한 짧은 방문이었다. 여러 사정 때문에 한동안 귀국을 못해서 내심 스트레스가 컸었고, 연초라 회사 일도 한창 바쁜 시기인 것을 잘 알기에 짧은 방문이라도 반갑기만 했다. 귀국 첫 주는 출장 업무에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 이제 겨우 시차 적응이 되었을까, 출국 전 가까운 곳에 가족여행이라도 가는 것이 어떻겠냐는 주위의 기대를 뒤로하고, 가족들은 오빠의 건강 검진을 권했다. 국내에선 2년에 한 번씩 이루어지는 정기 검진도 있고, 의료보험이 훨씬 잘 보장되어 있는데 비해 해외에서는 자주 확인하지 못하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받게 된 건강 검진은 처음부터 순조롭지 못했다. 혈압이 높아서 내시경 검사가 불가능했다. 혈압을 조절하는 약을 복용하고 위 내시경은 시행했지만, 대장 내시경은 검진 후 2주 이상 지나야 장거리 비행이 가능하다는 이유로 시행할 수 없었다. 출국 일정을 고려하여 대장 내시경 검사는 받지 않기로 했지만, 복부 초음파, 심장 초음파 등의 다른 검사가 이어지자, 예상하지 못한 결과들이 하나둘씩 쏟아지기 시작했다. 결국 출국 일정을 일주일 미루고, 결과를 기다렸다. 결과를 보고 또 다른 검사를 받고 미루던 대장 내시경 검사까지 받았지만 검사와 진료는 끝나지 않았다. 그렇게 출국 일정은 미루고 미루다 비행기 표는 오픈티켓으로 바뀌었다. 야속하게도 이 기간 중에 전공의 파업이 시작되더니 급기야 대학병원 교수들의 사직서가 제출되기에 이르는 혼돈의 시간. 가벼운 수술도 아니고 숙련도가 높은 곳에서 고도의 집중력을 가진 의료진이 맡아야 하는 수술인데, 일정조차 확정하지 못하는 현실에 애가 탔고, 답답함은 여전하다. 수술 이후 조직검사 결과까지 기다려야 하는 초조함은 무력감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진 엄마의 정기 검진. 3년 전 수술과 항암치료가 끝난 후로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셨고, 별다른 이상 소견이 없어 정기 검사 주기는 3개월에서 6개월로 늘어났었다. 사이사이 골다공증으로 인한 골절과 약해진 치아의 문제가 있었지만, 내가 직장으로 다시 복귀한 이후에 혼자 가벼운 일상생활을 누리실 만큼 컨디션이 나아지셨었다. 이번 정기 검진에서 좋은 결과를 듣고 다음 6개월 후에 보자는 말을 기대하며 그 사이에 손주들을 보시러 미국에 가고 싶다는 소망도 품으셨더랬다. 하지만, 그 기대에 찬 바람은 가득 차 부풀기도 전에 새 버리고 말았다. 암이 재발한 것이다.      


어느 암이건 증상을 느끼기 시작할 때쯤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상태인 경우가 많지만 그중에서도 췌장암이 고약하기로 악명 높은 이유는 발견이 늦을 뿐만 아니라 재발 빈도나 부위가 훨씬 더 치료에 까다롭기 때문이다. 건강 검진을 통해 암을 발견하는 것은 운이 좋다고 할 만큼 수술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기도 하고. 발견 당시에도 수술이 불가능한 단계로 넘어가기 직전이라 불행 중 다행을 떠올렸고, 이어지는 고통스러운 항암을 힘겹게 견뎌 내셔서 감사했다. 그러나 불행 중 다행으로 끝나길 바라는 것은 욕심이었던가. 너무도 당연히 6개월 이후의 정기 검진 일정을 바랐건만... 당연한 일은 없었다.     

 

며칠 전 갑작스레 시작된 항암치료는 이전보다 훨씬 강력한 약을 추가로 사용한다고 했다. 주사제의 치료 효과가 좋다는 말은 반가운 소식이었으나 말초 신경까지 자극되어 치료가 거듭될수록 손발 끝의 감각이 둔해지고 통증이 더 심한 것이 부작용이라는 것은 두려운 소식이었다. 주 1회 3주를 연속으로 치료를 받아야 하는 일정을 앞으로 얼마나 잘 이겨내실지... 잊고 있던 고통의 시간이 다시 재연되고 있다.  

    




왼쪽) 이 기도를 보내주신 따뜻한 마음을 기억하며/ 오른쪽) 병원 근처 성균관에서 본 매화, 마음에도 꽃이 피길 바라며


지난 한 달 여 동안의 시간은 폭풍 같은 날들이었다. 흐리고 어둡고 점점 더 어두워졌다. 바람 불고 빗방울이 떨어지고 거센 파도에 속절없이 흔들렸다. 짙은 어둠 속에 있을 때는 흐리고 어두워질 무렵이 밝은 날이었다. 거센 폭풍우와 파도에 정신 못 차리고 흔들릴 때는 바람만 불거나 빗방울만 떨어지는 날이 평온한 날이었다. 높은 파도에 놀란 마음을 진정하기도 전에 더 높은 파도가 여기저기서 밀려왔다.      


좋은 소식이란 무엇일까? 나쁜 소식이란 무엇일까?     


- 가족이 아프지 않은 것이 좋은 소식일까? 

- 가족이 한 명만 아픈 것이 좋은 소식일까? 

- 수술 일정을 잡지 못하더라도 검사라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좋은 소식일까? 

- 의료 대란 속에서라도 항암치료를 바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 좋은 소식일까?      


잘 모르겠다. 수시로 오락가락하니까...      


다만 내가 아는 것은 어느 쪽이든 그 결과를 바꿀 수는 없다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일 뿐이라는 것. 어떤 소식을 나쁘게만 받아들이지 않기를, 듣고 싶지 않은 소식 중에 작은 희망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감정을 달래는 일이 쉽지 않지만, 닥친 일을 해나가기 위해서는 이성에 기대는 수밖에... 

하루하루 그렇게 헤쳐나가 어딘가에 닿아 있기를... 


거친 바다 위 거센 폭풍우에 흔들릴지언정 부서지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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