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챕터의 끝, 아마도 또 다른 챕터의 시작
지난 11월 28일이었다.
첫눈이 겁 없이 내리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연이틀 폭설이 이어졌다. 한 겨울도 아닌데 이렇게 눈이 쏟아지면 어쩌자는 건지...
병원 진료는 늘 오전이었고, 예정된 진료 시간보다 늦어도 2시간은 일찍 가서 채혈을 해야 하는 데다 집에서 병원까지는 택시를 타고도 한 시간가량 걸리는 거리이니 새벽부터 서둘러야 한다. 봄여름에는 조금 낫지만, 늦가을과 겨울로 이어지는 시기는 해가 짧아서 새벽어둠 속을 뚫고 이동하는 일은 수년째 임에도 좀처럼 잘 적응되지 않는다. 특히 그날처럼 눈이 펑펑 쏟아진 날은 택시를 잡기도 어려워서 전날 밤부터 마음의 준비를 해도 신경이 곤두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밤엔 눈이 조금 녹는가 싶었는데 눈을 뜨니 또 골목이 새하얗다. 어젯밤 기도해 준 선배 덕분인지 한 번 만에 택시가 콜을 받았다. 9분을 기다리긴 했지만 이 날씨에 와주는 게 어딘지 그저 감사했다. 기사분은 회사 택시를 운전하는 분이었는데, 개인택시라면 오늘 같은 날 새벽은 안 나왔을 테지만 어제도 눈 때문에 운전을 못해서 어쩔 수 없이 나왔다고 하셨다. 그런 뒷 사정이 있었지만 엉금엉금 기어서라도 안전하게만 도착하길 바란다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가는 동안 내내 눈이 쏟아졌지만 교통량은 적어서 예상보다 일찍 병원에 도착했다. 검사 예약 시간보다 1시간을 서두른 보람이 있었다.
채혈도 일찌감치 마치고 진료 시간까지 두 시간을 기다렸다. 대기 의자에 앉아 기다리는 건 10분 남짓, 기력이 없는 것은 둘째치고 근육도 살도 없는 꼬리뼈로 장시간 앉아 있는 것은 불가능했다. 대부분의 대기용 의자는 3인용이었지만, 의사 사이에 팔걸이가 있어서 한 사람이 몸을 눕힐 수는 없었다. 마침 화장실 옆에 등받이 없는 3인용 의자를 하나 발견했는데, 입고 오신 외투를 이불처럼 덮고 몸을 누일 수 있었다. 오가는 사람은 많아도 힘들면 체면이고 뭐고 그저 몸을 누일 공간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게 된다.
그렇게 대기 중인데 그날따라 엄마는 검사 결과를 듣기도 전에 더 이상 치료를 안 하고 싶다는 말씀을 꺼내셨다. 너무 힘이 드신 것이다. 체력을 보충하려고 영양제를 맞아도, 혼자서 걷기에도 점점 힘이 달리는 이 상황을 견디기 힘들어하셨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를 하듯 식사를 해도 양껏 드시기가 힘들고 기껏 소분한 음식을 일정 분량으로 나눠서 채운다 해도 몸에 남는 것은, 흡수되는 것은 없어 보였다. 영양제를 맞아도 잠깐 부스팅 하는 효과만 있을 뿐 하루만 지나도 언제 그랬냐는 듯 힘이 빠지는 것을 몸소 느끼셨기 때문이겠지. 예정일에 맞춰 진행되는 치료도 아니고, 예정일이 무색하게 연락오기를 기다려야 하는 치료 스케줄에도 지치셨을 테고, 40 시간 이상 투여되는 항암제를 몸에 차고 나와 투여가 끝나면 타 병원에 가서 주사제를 제거하는 절차도 감당하기 힘든 건 사실이니까.
'오늘은 무슨 말을 하든 간에, 이제 난 더 이상 이건 안 하고 싶다.'
그런 말을 하는 엄마도, 듣는 나도 아팠다.
의사는 이제 더 쓸 약은 없다고 건조하게 말했다. 채혈 후 2시간 넘게 기다려 들은 의사의 첫마디였다. 엄마의 항암 지표와 몇 가지 수치들을 확인하고는 더 이상 항암 치료 효과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앞으로는 경과만 보겠다며 진통제만 처방하고 4주 후 보자고 했다. 그간 치료해 온 기간만 생각하더라도 4년이 지났는데 의사로서 더 이상 자신이 치료할 수 없는 상황을 그렇게 건조하게 쌀쌀맞게 1분 남짓 이야기하는 것으로 마무리하다니... 치료를 더 이상 지속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최소한의 위로만이라도 기대하는 건 지나친 욕심일까? 없던 병도 생길 정도의 얼음장 같은 목소리는 아무리 적응하려 해도 적응이 안 됐다. 더구나 그날은... 누구한테 인지, 무엇 때문인지, 화를 내고 싶어도 화를 낼 기운조차 없어 무력하다는 것을 체감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다행히 큰 도로는 눈이 많이 녹았다. 귀가 길에 탔던 택시 기사분은 50년 운전 베테랑이라셨지만 운전 내내 손을 떠셨다. 뒷좌석에서 조마조마했지만 안전운행을 하시고 중간중간 최적경로를 물어봐 주셨다. 차고지도 성북구, 우리 목적지와는 반대인데도 싫은 티 안 내고 흔쾌히 집 앞에 내려주셨다. 가는 길은 50분이 채 안 걸렸는데, 오는 길은 1시간 30분이 넘게 걸렸다. 그래, 그래도 무사히 도착했으니 다행이다.
마음이 날씨보다 차가운 날. 항암이 이렇게 끝나는구나. 수술 후 6개월 기간을 정하고 시작했던 예방 항암 때는 마지막 날이 이렇게 춥지는 않았는데... 재발 한 뒤 시작한 항암은 언제 끝날 지 기약할 수 없다고 했었다. 더 이상 할 수 없을 때까지, 환자가 견딜 수 있을 때까지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엄마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고 했던 날, 결과도 이제 그만이라고 했다. 상대가 먼저 차기 전에 내가 먼저 차버리겠다는 심정으로 의사가 뭐라고 하건, 엄마가 선택하는 것이라고 하셨는데... 이 날의 결정은 엄마가 먼저였을까, 의사의 판단이었을까.
마음은 추운 날이었지만, 병원 오가는 길에 함께 한 두 분의 택시 기사님은 어쩌면 하느님이 주신 작은 선물 같은 것은 아니었을까. 그동안 오가느라 힘들었으니 오늘 만큼은 마음 힘든 것으로 됐다시며 조금은 위로해 주시려는 손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항암치료는 마침표를 찍는구나. 이제부터는 완화치료를 알아봐야 하려나. 그건 또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잘 모르겠다. 이제 정말 겨울이다. 어쩌나... 아직 준비가 안 됐는데... 그래도 뭐...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뜨겠지.
브런치를 시작할 때, 부지런히 근면하게 글을 쓰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얼마간 써 두었던 글을 업로드하는 수준이어서 잘 쓰는 건 자신 없어도 일정 시간 안에 쓰는 것은 충분히 가능할 거라 생각했다. 항암 치료가 끝나는 날의 이야기를 적고, 또 다른 새로운 장이 시작되는 이야기를 적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11월 이후 이렇게 시간이 빨리 지날 줄은 몰랐다. 마음이 산란하여, 결정할 일들이 산적해서, 몸이 고단해서... 이유는 다양했다. 앞에 일이 정리되지 않으니 뒤에 일어난 이야기를 쓰는 것이 무언가 미해결 된 과제처럼 남는 것 같아 글을 쓸 수가 없었다. 지금도 연휴 시작 날 응급실을 거쳐 전원해 온 병원에 침상 옆에서 글을 쓴다. 근래에는 시간에 쫓기는 느낌마저 들어서 이렇게나마 빚쟁이 된 느낌은 덜어 보려 한다. 글쓰기의 힘을 믿으며... 무거운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래 보려 한다.
다음 글은 너무 늦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