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나는 늘 펜을 들었다. 기록이 아니었다면 아마 더 쉽게 흔들리고, 성급하게 선택했을지도 모른다. 기록은 단순한 습관을 넘어, 불안한 마음을 붙잡고 나를 신중하게 만들어 주는 힘이었다. 특히 퇴사를 고민할 때마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 일을 시작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만둔다면 얻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무엇보다 오래 남았던 질문은 이것이었다.
새벽 2시쯤 되었을까. 잠들지 못한 채 책상 위 작은 스탠드를 켰다. 방 안은 고요했지만, 희미한 불빛 속에서 마음은 오히려 더 요동쳤다. 노트를 펼쳐 같은 질문을 몇 번이고 반복해 적었다. 글씨가 번질 만큼 힘주어 눌러 쓴 흔적이 남았다. 질문은 언제나 같았다. “내 선택에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안정적인 직장을 내려놓은 사실, 남들이 나를 바라볼 시선, 그 모든 것이 나를 다시 흔들었다. 다른 길이 과연 가능할까, 지금보다 힘들어지지 않을까. 불안은 스탠드 불빛처럼 흐릿하게 깜박였지만, 펜으로 옮겨 적는 순간만큼은 분명한 형태를 가졌다.
흐릿했던 감정이 질문과 답으로 바뀌면서 비로소 형태를 갖추었다. 그제야 나는 불안의 정체를 알아챌 수 있었다. 두려움은 막연한 그림자가 아니라, ‘안정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위험을 감수할 것인가’라는 선택의 갈림길이었다. 언어로 붙잡힌 감정은 더 이상 나를 짓누르는 덩어리가 아니었다.
글로 정리하는 것만으로는 끝나지 않았다. 문제는 결국 주변의 시선이었다. 성인이었지만 가족의 걱정, 지인의 충고를 무시하기는 어려웠다. “안정적인 길을 왜 스스로 버리려 하느냐”는 말은 내 마음을 더 무겁게 했다. 그래서 그 한마디에 맞설 수 있는 내 문장을 만들기 위해 수없이 펜을 들었다. 노트 한 권이 빼곡히 차고 나서야, 마침내 입 밖으로 낼 수 있었다. 먼저 나 스스로를 설득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야만 흔들리지 않고 다른 이에게도 말할 수 있었다.
준비되지 않았다면 쉽게 무너졌을 선언이었지만, 덕분에 흔들리지 않고 말할 수 있었다.
기록은 내 선택이 옳다거나 그르다고 알려주지는 않았다. 다만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몇 줄의 질문과 대답은 거울처럼 나를 비추었고, 그 과정을 통해 나는 스스로를 조금 더 단단히 붙잡을 수 있었다.
말로 다 풀리지 않는 마음은 색연필 그림으로 옮겼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불안은 잠시 누그러졌다. 글이 마음의 뼈대를 드러냈다면, 그림은 그 속을 채우는 감정을 풀어냈다. 언어와 그림, 두 가지 기록이 서로를 보완하며 나를 지켜주었다. 작은 기록들이 쌓이지 않았다면, 나는 여러 번 성급한 목소리를 내고 후회했을 것이다. 글을 쓰고 그림을 남기며, 내 안의 목소리를 더 분명히 들을 수 있었다. 기록은 조용하지만 확실한 힘이었다.
온라인에 글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그 힘은 더 크게 확장되었다. 내 글에 공감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려주었다. 혼자 쓰던 기록이 누군가와 연결되면서, 그것은 더 이상 작은 힘이 아니었다. 나를 지탱하고, 또 다른 누군가를 지탱하는 힘이 되었다.
기록은 선택을 대신해주지 않는다. 그러나 길을 잃었을 때 다시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기록은 내 안의 지도를 펼쳐서 보여주었다. 덕분에 나는 서두르지 않았다. 그 순간의 나를 지켜준 것이 바로 기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