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은 나를 붙잡아 주는 힘이 되었을 뿐 아니라,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출발점이 되기도 했다. 퇴사와 같은 무거운 결정을 지탱하던 펜이, 이번에는 오래 묵혀 두었던 꿈을 다시 불러냈다.
일본어는 내게 시험 점수나 자격증을 위한 도구가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내 삶을 기록하는 또 다른 방식이었다.
모두가 야간자율학습에 남아 있던 시절, 나는 일본 유학을 준비한다는 이유로 먼저 하교해 일본어 학원으로 향하곤 했다. 교실 문을 열면 나처럼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빼곡히 앉아 있었고, 그 사이사이에는 회사 일을 마치고 온 직장인들도 보였다. 서로 다른 나이와 배경이었지만, 모두 같은 이유로 같은 자리에 모여 있었다.
선생님들은 수업마다 먼저 유학을 간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선배들의 이야기가 시작될 때면, 교실 공기가 달라지는 듯했고 내 안에 작은 날개가 돋아나는 듯 설렜다.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내 마음은 마치 긴 여행을 앞둔 철새처럼, 날갯짓을 준비하며 서서히 부풀어 올랐다. 언젠가 나도 날아오를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가슴 가득 차올랐다.
그러나 그 꿈은 결국 미뤄졌다. 십 년이 넘는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일본어 책을 펼쳤을 때 그것은 단순히 언어 공부가 아니었다. 오래 묵혀 두었던 꿈의 한 조각을 다시 꺼내는 일이었다.
일본어 공부를 다시 시작하면서 작은 습관이 생겼다. 새로 배운 단어 옆에 색연필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하늘(空, そら)’이라는 단어를 배우면 파란색으로 작은 하늘을, ‘꽃(花, はな)’이라는 단어를 배우면 분홍빛으로 꽃을 그렸다. 몇 분 안 되는 짧은 기록이었지만, 그 작은 그림은 단어보다 더 오래 기억에 남았다. 언어와 그림이 합쳐지면서 일본어는 더 이상 추상적인 지식이 아니라 내 하루와 연결된 경험이 되었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공부는 의무가 아니라 놀이가 되었고, 불안은 잠시 물러났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과정은 언제나 낯설고 어렵지만, 그림을 곁들이면 부담이 줄어들었다. 완벽하게 외우지 못해도 괜찮았다. 중요한 건 그 순간 나의 감정과 시간을 기록했다는 사실이었다. 언어와 그림이 만나면서, 일본어는 내 일상에 스며드는 따뜻한 기록이 되었다.
종종 일본어로 짧은 일기를 쓰기도 했다. 외국어로 감정을 적으면, 복잡했던 생각이 단순해졌다. 한국어라면 길게 늘어놓았을 복잡한 감정도 외국어로는 감정의 단어가 한정되어 있어 간단히 바꿔 쓸 수밖에 없었다. ‘서운하다’라는 말을 옮기기 어려워 결국 “조금 슬펐다”라고 적는 식이었다. 그렇게 표현을 단순화하다 보면, 감정을 단순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무겁게 붙잡고 있던 감정을 조금은 가볍게 내려놓을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더 깊고 섬세한 표현을 배우는 건 덤이었다.
외국어 일기는 감정을 잠시 내려놓게 하는, 나만의 작은 의식에 가까웠다. 문장을 만드는 동안 복잡한 생각이 정리되고, 글자로 남겨진 감정은 더 이상 나를 짓누르지 않았다. 나는 언어를 배운 것이 아니라, 언어를 통해 나를 다루는 법을 배운 셈이다.
이런 기록들을 다시 들여다보면, 단어 하나, 문장 하나에 담긴 그날의 내가 보인다.
“오늘은 집중이 잘 안 됐구나.”
“이 단어를 왜 이렇게 좋아했을까?”
공부의 진도보다 더 중요한 건, 그 기록 속에 담긴 내 마음이었다. 일본어 공부는 성과를 쌓는 일이 아니라 나를 응원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 되었다.
한국어가 아닌 외국어로 적은 일기 역시 내게 위로가 되었다. 언어를 배우며 남긴 작은 기록이 쌓이자, 나는 여전히 배우고 있고 앞으로도 새로운 길을 열어갈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작은 그림과 짧은 문장을 남긴다.
내일의 내가 흔들리더라도, 이 기록이 방향을 다시 잡아줄 테니까.
나는 여전히 배우고 있고, 앞으로도 나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