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에서 길을 찾는 일은 쉽지 않다. 특히 사람은 더욱 어려움을 겪는다. 얼마 전 사막에서 사람의 길찾기 능력을 한번 시험해 보았다. 대상은 나와 그리고 친구인 California State University의 David Gray 교수님 이었다. 우리는 귀뚜라미를 채집하러 멕시코와 가까운 캘리포니아 남부의 앨고도운스 듄스(Algodones Dunes)에 오후 4시쯤 도착했다. 텐트를 치고 야영할 준비를 한 다음, 야영지로부터 2 km 정도 떨어진 모래언덕 근처로 탐사를 나서기로 했다. 귀뚜라미 채집은 주로 밤에 한다. 그러나 귀뚜라미가 있을 만한 장소를 미리 파악하기 위해, 아직 해가 있을 때 미리 탐사를 하러 갔다. 출발하기 전에 핸드폰에 우리 야영 지점을 표시해 두었다. 그러나 약간 장난기가 발동하여 GPS의 도움 없이 길을 찾아 보자고 했다. 우리는 모래언덕 쪽으로 걸어가면서 다양한 나무, 캥거루쥐의 굴, 도마뱀, 새들과 곤충을 관찰했다. 모래언덕을 올라가니 모래 위에 여러 동물들의 발자국을 보았다. 내심 '사이드와인더'라는 방울뱀이 이동하면서 찍히는 물결 모양의 발자국도 기대했지만 발견하진 못했다. 다행히 팔로베르디 군락에서 귀뚜라미의 노래는 들을 수 있었다. 오늘 밤에 다시 이 장소에 다시 와서 채집을 하기로 결정하고 야영지로 돌아가기로 했다.
사람은 가까운 장소에서 길을 찾을 때 시각에 의존한 지형지물을 이용하기 좋아한다. 이것을 학술용어로 지형지물 방향잡기(landmark orientation)이라 한다. 친구가 길을 물어 보면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이대역 2번 출구로 나와서 일방통행인 길을 쭉 내려가면 이대 정문이 나와. 정문에서 보면 정면에 계곡처럼 생긴 건물이 있어. 이게 ECC야. 그 건물 지하 4층에 있는 스타벅스로 와." 이렇게 우리는 눈에 띄는 지형지물을 연달아 제공해 줘서 길을 찾게 한다. 그러나 이 방법은 바다, 숲 속, 또는 사막과 같이 지형지물이 없거나, 비슷하면 사용하기 어렵다. 그래서 지형이 일정하지 않은 사막에서 살고 있는 동물은 다른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예를 들면 사막개미는 한 발짝, 한 발짝 내 디딜 때마다 둥지까지의 거리와 위치를 계산한다. 그래서 먹이를 찾았거나 아니면 피신을 할 때 둥지까지 곧바로 이동할 수 있다. 이 때 사용하는 계산 방법은 내가 고등학교 때 배운 적분이다. 그래서 사막개미가 사용하는 방향잡기는 경로적분(path integration)이라 한다. 이 방법은 개미가 잘 사용하는 길페로몬이나 지형지물을 이용하지 않고도 사막에서 둥지를 찾을 수 있다.
탐사를 마치고 텐트를 친 야영지로 돌아 가면서 눈여겨 봐 뒀던 지형지물을 생각해 냈다. 야영지 앞 100 m 에 비포장 도로가 있고, 길을 따라 철로가 있고, 철로 공사장이 한창이고 인부들이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지형지물은 높은 하얀색 타워이었고, 또 멀리서 무선통신 송수신 타워가 빨간 불빛을 번쩍이고 있었다. 그러나 사막 지형도 평탄하지 않아서 대부분의 지형지물이 보이지 않았다. 다만 멀리 번쩍이는 송수신 타워의 빨간 불빛만 보일 뿐이다. 우리는 그쪽 방향으로 걸었다. 그러나 송수신 타워가 야영지와는 멀리 떨어져 있어서, 우리를 정확하게 인도하지는 않았고, 우리는 곧 방향감각을 잃어버렸다. 그런데 놀랍게도 가장 중요한 지형지물은 가끔씩 열차가 지나가는 철로였다. 그래서 철로 가까이 가서 철로를 따라 야영지 방향으로 이동했다. 한참을 이동해 보니 철로 공사장 현장이 나오고, 야영지 근처의 하얀색 타워도 나왔다. 야영지 바로 근처에 와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텐트를 친 지점을 정확하게 찾는 일은 정말 어려웠다. 해는 기울어서 점점 어둑어둑 해졌다. 한참을 헤매다가 어쩔 수 없이 핸드폰을 켜서 GPS로 위치를 확인한 후에야 겨우 야영지를 찾을 수 있었다. 야영지에 도착해서 보니 우리는 약 만 보를 걸었고, 거리로 환산하면 7 km가 조금 넘었다. 야영지부터 목적지까지 왕복으로 4 km 거리이니, 약 3 km 정도는 헤맨 셈이다.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이번에는 귀뚜라미를 채집하기 위해 다시 길을 나섰다. 한번 가 본 길이라서 훨씬 수월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귀뚜라미를 잡고, 전갈도 구경하였다. 채집을 끝내고 다시 야영지로 향했다. 한번 가 본 길이지만 길을 찾는 일이 쉬워지지 않았다. 다시 멀리 있는 송수신 타워로 대충 방향을 잡고, 철로를 따라서 야영지 근처로 갔다. 그리고 야영지 근처에 왔는데 GPS 도움 없이 정확한 지점을 찾는 것은 불가능했다. 한번 가 본 길이지만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이번 채집도 역시 만 보 정도 걸렸다.
나는 포닥 생활을 하면서 그리고 여행하면서 미국 전역을 누비고 다녔다. 그래서 방향잡기와 길찾기에는 나름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사막에서 나의 길찾기 능력을 시험해 보니 형편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사막에서 길을 잃으면 나는 꼼짝없이 조난당할 것 같다. 실제로 1996년 캘리포니아 Death Valley에서 독일인 일가족 4명이 조난을 당했고, 애석하게도 이들의 유해가 한참 후에 발견되었다. 물론 사막과 같이 지형지물이 모두 비슷한 장소에서는 우리의 방향잡기와 길찾기 능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현대인의 길찾기 능력 상실은 다 우리 때문이다. 최근 우리는 항해술의 발달과 항해기기의 개인화로 생활공간 밖의 방향 잡는 능력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몇몇 연구에 의하면 GPS를 이용하여 길을 찾아가면 적어도 단기간 동안에 우리의 길찾기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고 한다. 사막에서 나의 경험을 비추어 보면 틀린 말이 아닌 것 같다. 사람의 길찾기 능력은 다른 여러 능력과 마찬가지로 학습에 의해 결정된다. 다시 말해 계속 사용하면 향상될 수도 있고, 사용하지 않으면 상실된다. 요즘 나는 차를 운전할 때 핸드폰의 내비를 사용하지 않으면 불안하다. 전에는 한번 가 본 길은 두 번째부터는 큰 어려움이 없이 찾아가곤 했는데. 내비를 끄고 살아야 하나?
처음 발행일: 2015년 6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