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남부터미널에서 구례로 고속버스를 타고 내려가면서 에드워드 윌슨 교수의 <생명사랑>을 읽었다. 윌슨 교수는 이 책에서 생명에 대한 사랑은 우리의 유전자에 깊이 박혀 있다고 주장한다. 지난 10월 27일 지리산에 있는 국립공원관리공단 종복원기술원에서 진행된 반달가슴곰 방사를 지켜보면서 나는 생명사랑이 야생동물 방사의 밑바탕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 날 방사된 곰들은 생후 10 개월 된 수컷 두 마리이다. 이들의 어미(CF-37)는 지리산의 반달가슴곰의 숫자를 늘리기 위해 2011년 중국에서 도입되었다. 어미는 올해 1월 달에 수컷 두 마리를 출산하였고, 새끼들과 처음 8개월을 같이 지내면서 생존에 필요한 여러 기술을 가르쳤다. 예를 들면 어미는 계절에 따라 먹을 수 있는 먹이의 종류를 알려 준다. 어미가 적당한 먹이 식물을 씹어 먹다가 다시 땅에 놓는다. 그럼 새끼들은 어미가 씹어 놓은 먹이를 집어먹고 그 식물을 메뉴에 포함시킨다. 또 사람이 접근하면 어미는 새끼들을 나무에 오르게 하며 위협행동을 한다. 새끼들은 자연스럽게 사람이 위험한 존재라는 것을 학습하게 된다. 이것을 사회학습이라 하는데 어미나 주위의 다른 개체들로부터 정보를 습득한다.
자연방사는 야생으로 돌아갔을 경우 스스로 생존할 수 있다고 판단이 될 때 이뤄진다. 그래서 너무 어리거나, 쇠약하거나, 질병이 있는 개체는 방사 대상에서 제외된다. 또 스스로 위험을 인지하고 방어할 수 있는 체력을 갖춰야 한다. 올해 9월부터 새끼 곰들은 어미와 분리되어 자연적응훈련장에서 훈련을 받았다. 이제 새끼들은 몸무게 15 kg의 당당한 곰으로 성장하였다. 방사 시점을 10월 말로 잡은 이유는 지금 지리산에 도토리가 풍부하기 때문이다. 12월 말에 겨울잠에 들어가기 전까지 곰들은 도토리를 먹이로 하여 충분히 몸무게를 늘릴 수 있다.
자연적응훈련 중 가장 중요한 내용은 사람에 대한 경계이다. 만약 방사된 곰들이 사람에게 접근하여 먹이를 구걸하면 사람과 동물 모두 위험에 처해질 가능성이 있다. 이럴 경우 곰은 회수되어 다시 생태학습장으로 돌아온다. 종복원기술원 연구원들은 방사된 곰들이 사람에게 접근하여 음식을 구걸하지 않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이들이 자연적응훈련장의 곰들에게 접근할 때에 서바이벌 건을 쏘고, 소리를 질러 겁을 준다. 그러면 곰들은 사람이 위험한 존재라고 느끼고 나무 위로 도망간다. 이것은 연관학습의 일종으로 야생에 나가서도 사람을 피하도록 하는 훈련이다. 우리가 방사를 위해 자연적응훈련장에 접근하였을 때 곰들은 우리를 피해 나무로 올라갔다. 훈련이 잘 되어 있다는 증거이다. 그러나 이런 훈련 때문인지 곰들이 이 날 자연적응훈련장을 떠나는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우리가 머무는 내내 곰들은 나무 위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자연적응훈련장을 나가는 시기는 곰들이 직접 결정한다. 심지어 방사되어 나갔다가도 다시 자연적응훈련장으로 되돌아오기를 반복할 수도 있다. 이것을 연방사(soft release)라 한다.
이번에 방사된 2마리의 곰이 성공적으로 야생에서 돌아가면 지리산 국립공원 안에는 약 38마리의 반달가슴곰이 살게 된다. 2004년 시작 이후 불과 11년 만에 반달가슴곰 복원사업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이고 성공적인 복원사업으로 자리매김하였다. 나는 2012년에 남방큰돌고래 야생방류 사업에 참여하였고, 현재도 수원청개구리 복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렇지만 나도 가끔 우리가 왜 이런 자연방사나 복원사업을 진행해야 하나 자문한다. 어떻게 보면 복원사업은 돈키호테가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것과 유사하다. 우리는 야생에 있는 반달가슴곰이 자연생태계의 보전과 생물다양성을 높이는데 큰 기여를 한다고 알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 인간은 이중적으로 반달가슴곰의 서식지를 파괴하고 있다. 우리가 자연생태계를 보전하는 속도보다 파괴하는 속도가 훨씬 더 높다. 반달가슴곰 복원사업은 학술적으로도 중요하다. 그러나 같은 예산으로 다른 학술사업에 투자하면 더 많은 학문적 진보를 이룰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복원사업을 계속 수행해야 하는가? 그 답은 국립공원관리공단 종복원기술원에서 근무하는 연구원들을 보면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이 분들은 나이 40이 넘으면 무릎이 성한 직원이 없다고 한다. 매일 산에 오르기 때문에 무릎 연골이 약해진 탓이다. 이들은 매일 같이 지리산의 곰들과 사람 간의 충돌이 없애기 위해 하루도 빠짐없이 곰들을 돌보고 추적한다. 짧은 기간이지만 이들의 삶을 엿보면서 나는 복원사업의 근본 동력은 그 무엇보다도 우리의 생명사랑 때문이라고 확신한다.
이 글은 <어린이과학동아> 2015년 12월 1일호에 발표되었다.
방문일: 2015년 10월 27일
2015년 10월 27일 방사하기 직전의 반달가슴곰 새끼 두 마리. 이들은 9월부터 어미와 분리되어 자연적응훈련장에서 야생적응훈련을 받고 있었다. (사진: 국립공원관리공단 종복원기술원 제공)
방사를 위해 우리가 적응훈련장에 접근했을 때 새끼 곰 두마리는 바로 나무 위로 올라갔다. 새끼들은 사람을 피하도록 훈련을 받았다. 덕분에 방사하는 동안 이들은 나무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반달가슴곰 방사에 사용되었던 장비.
반달가슴곰 자연적응훈련장에서 새끼 곰들이 나가기를 기다리는 연구원과 취재진. 아쉽게도 새끼 곰들이 이 휸련장이 나가는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이 날의 방사는 자연적응훈련장의 문을 이렇게 열어 둠으로 종료되었다. 이 자연적응훈련장에서 나가는 시점은 새끼 곰들이 결정한다. 이것을 '연방사'라 한다.
반달가슴곰 자연적응훈련장에 가는 길에 설치된 알림 표지판.
국립공원관리공단 종복원기술원 생태학습장에 있는 반달가슴곰. 증식용이거나 야생에서 회수된 곰들이 여기에 수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