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새해가 되면서 한 가지 결심을 했다. 답은 항상 현장에 있고, 내가 직접 현장을 뛰자! 물론 이전부터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대학원생들에게 현장 연구를 일임하곤 했다. 올해의 첫 현장 연구를 위해 나는 반달가슴곰이 있는 지리산으로 왔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종복원기술원에서 반달가슴곰을 연구할 기회가 생겼는데 나는 고민 없이 뛰어들었다. 지리산 국립공원 안에는 현재 최소 39 마리의 반달가슴곰이 서식하고 있다. 2004년 시작 이후 불과 12 년 만에 반달가슴곰 복원사업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이고 성공적인 복원사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실제 반달가슴곰이 동면하는 장소를 가보고 싶다고 하니 연구원들이 우려와 경고의 말을 먼저 건넨다. 동면하는 곰을 조사할 경우 곰이 연구원들을 공격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장 연구 첫날 차량을 타고 다니면서 곰들의 위치를 무선 추적하였다. 사륜구동 차량의 뒷좌석에 앉아 가는데 조수석에 앉은 신입 연구원은 수신기를 연신 귀에 대고 있다. 시야가 좋고 신호가 잘 잡히는 정해진 장소에 도착하면 차량에서 내려 동면하는 곰들의 위치를 무선 추적한다. 먼저 한 지점에서 신호음의 방향을 잡고, 다시 어느 정도 이동하여 다른 각도에서 같은 신호음을 잡는다. 그런 다음 이 두 방향의 교차점을 찾으면 바로 곰의 추정 위치가 나온다. 안테나를 곰이 있는 방향으로 돌리면 틱틱하는 신호음이 잡힌다. 곰이 정면 방향으로 있다는 뜻이다. 연구원들은 이 장소에서 곰이 약 2 km 정도 떨어져 있다고 말했다. 그러다가 잠시 후 신호가 미약해지는 경우가 있었다. 곰이 고개를 돌리거나 이동하는 경우라고 한다. 간단한 신호음의 강약으로 2 km 떨어진 곰의 움직임을 읽는다니 놀랍기만 하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종복원기술원은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매일 곰들의 위치를 추적한다. 이렇게 철저한 관리를 하는 이유는 민가가 곰들의 서식지 깊숙이 침투해 있어 곰과 인간이 충돌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우리가 차로 위치추적을 하는 도중 다른 팀으로부터 국립공원 경계 부근에서 오늘 올무를 52개나 수거했다고 연락이 왔다. 그래서 다음 날 다시 올무를 수거하러 나가야 한다. 곰-인간 충돌의 가능성은 이튿날 더욱 뚜렷이 목격했다. 이날 우리는 곰이 동면하는 장소인 동면굴을 확인하러 등산을 하였다. 가파르고 눈 덮인 비탈을 오르는데 주위에 검은 케이블이 지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처음에는 고압 전깃줄인 줄 알았는데 이것은 고로쇠 수액을 수송하는 호스이었다. 연구원들은 이런 검은 호스가 지리산 전체에 깔려 있다고 한다. 마치 지리산 전체가 검은 호스 그물로 옭아매어 있는 느낌을 받았다. 발열식 음식을 먹고 우리는 다시 등산을 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동면굴을 발견하였지만, 고로쇠 호스가 지나가는 길목에 있었다. 그래서 연구원들은 하산하면서 3 군데에 걸쳐 경고 현수막을 매달았다. 고로쇠 수액을 채집하는 주민과 동면하는 곰의 충돌을 미리 막으려는 노력이다. 반달가슴곰 복원사업에 가장 많은 노력이 들어가는 부분은 아이러니하게도 이와 같은 대주민사업이다.
반달가슴곰복원사업의 여러 어려움도 보았지만 나는 동시에 희망도 보았다. 이 사업을 처음 시작할 때는 반달가슴곰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강했지만 지금은 극적으로 호전됐다. 곰 하면 웅담 정도만 생각하고, 농사를 헤치며 등산객에 피해를 준다는 의식이 강했다. 그러나 2012년에 실행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66%의 지역민들은 반달가슴곰 복원이 자연환경보전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하고 있다. 2006년 여론조사에 비해 이 수치는 무려 30%가 높다. 같은 여론조사에서 일반인들의 73%가 반달가슴곰 복원사업을 인식하고 있다. 아마 환경부와 국립공원관리공단의 많은 사업 중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사업이 아닌가 한다.
차를 타고 이동하다 보면 반달가슴곰 산장, 반달가슴곰 마을, 반달가슴곰을 이용한 농산품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지역 주민들 사이에 반달가슴곰에 대한 인식전환이 이뤄지고 있다는 증거이다. 환경부와 국립공원관리공단 종복원기술원은 작년부터 설악산 등 북부권에 반달가슴곰을 복원하기 위한 연구사업을 진행 중이며 2017년부터 설악산에도 반달가슴곰을 시험적으로 방사할 예정이다. 궁극적으로 지리산부터 설악산까지 백두대간을 따라 반달가슴곰을 복원할 계획이다. 아울러 산양과 여우의 복원도 백두대간을 따라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듣기만 해도 심장이 뛰는 계획이다.
그런데 과연 이것이 가능할까? 그리고 이 계획을 가능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반달가슴곰복원사업의 가장 어려운 점은 국민의 인식전환이라고 많은 분들이 지적한다. 곰이 국립공원에 살고 있는 것에 아직 거부감이 많다고 한다. 그러나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백두대간에서 반달가슴곰이 살아가는 것을 찬성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인류는 늘 야생동물과 같이 살아왔고, 공존하는 방법을 배워왔다. 우리는 야생동물이 잘 살고 있는 건강한 생태계에서 살아가고 싶어 한다. 문제는 이런 인간의 본성을 헤아리지 못하는 정치인, 공무원, 지자체라고 생각한다. 설령 주민들의 의견이 양분되었다고 하더라도 야생동물과 우리가 공존하는 큰 방향을 가리키는 것이 지도자의 역할이다.
반달가슴곰을 지리산에서 설악산까지 복원을 실행할 때 공간적인 어려움은 도로와 택지 개발로 인한 서식지 분절이다. 이 문제는 국토개발계획의 최우선 기본방향을 자연생태계의 보전으로 바뀌지 않는 이상 해결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국토개발계획의 4대 기본 목표에는 '자연과 어우러진 녹색국토'라는 항목이 들어가 있지만, 이 기조의 정책적 실현은 항상 뒷전이다. 그동안 이 계획은 임무를 훌륭히 완수했다. 그러나 면적당 도로의 비율이 세계 1위, 주택보급률은 이미 100%를 넘어섰고, 사업체가 들어서지 않는 개발지역이 다수인 점을 고려하면 현시점에서 이 계획이 더 이상 필요한지 의문이 든다. 지금 우리가 필요한 계획은 반달가슴곰의 복원과 자연생태계의 보전을 위해 우리의 모든 지식과 기술을 모아야 하는 국토보전계획이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국토개발 계획을 바꾸면서 까지 반달가슴곰을 복원할 필요가 있는지 묻고 싶다. 지금까지 우리는 잘 살고, 편리한 세상을 만들어 보려고 노력해 왔다. 그 결과 지난 몇십 년 동안 눈부신 성장을 지속해 왔지만, 그 안에 살고 있는 우리는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잘 살려고 추진한 방향이 자연생태계와 어우러져 살고 싶어 하는 인간 본성과 동떨어졌기 때문이다. 반달가슴곰의 복원은 빗나가고 있는 우리 삶의 방향을 인간의 본성과 부합되는 쪽으로 재정렬하는 첫걸음이라 할 수 있다.
이 글은 2016년 1월 26일 경향신문 <장이권의 자연생태 탐사기>에 발표되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032&aid=0002671036&sid1=001
방문일: 2016년 1월 13,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