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곱고 고운 댕기도 내가 들이고
새로 사온 신발도 내가 신어요.
-윤극영. 작사 작곡
일제 강점기에 우리는 나라뿐만 아니라 우리말과 동요도 빼앗겼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윤극영 선생님이 전해 내려오는 풍속을 우리말로 만든 노래가 바로 이 <설날>이란 동요이다. 그러면 이 동요에서 왜 까치의 설날은 어제일까? 이 질문에 대한 몇 가지 학설이 있지만 나의 고개를 끄덕이게 하지는 않는다.
까치가 살고 있는 장소는 나무가 군데군데 있는 탁 트인 개활지이다. 근처에 야산도 있어야 한다. 이런 까치의 서식지는 우리의 전통적인 마을이나, 도시의 교외 지역과 같다. 그래서 사람이 살고 있는 곳에서는 까치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런 서식지의 유사성이 까치가 설날 동요에 등장하는 바탕이다. 그러나 마을에는 까치 외에도 다른 새들도 있는데 우리 조상님들은 그 중 까치를 콕 찍어서 이 동요에 등장시켰을까?
나는 조상님들이 설날과 까치를 연결시킨 가장 중요한 이유는 까치의 번식활동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새는 꽃이 피고, 새잎이 돋고, 곤충이 활동하기 시작하는 3, 4월에 알을 낳는다. 새들이 이 때 새끼를 기르면 먹이를 충분히 조달할 수 있다. 까치도 마찬가지로 이 때 알을 부화시키고, 새끼에게 먹이를 물어 온다. 그런데 까치가 이 때 새끼를 기르려면 설날이 있는 1, 2월부터 둥지를 지어야 한다.
둥지는 움직이기 힘들고, 방어력이 거의 없는 새들의 알과 새끼를 오랜 기간 동안 담고 있다. 그래서 포식자 방어를 위해 새들은 대부분 은밀한 곳에 둥지를 짓는다. 도심 속에 비둘기도 아주 흔한 새이지만 비둘기의 둥지를 찾는 일은 쉽지 않다. 흔히 뱁새로 알려 진 붉은머리오목눈이는 관목, 주목나무 및 초본에 주로 둥지를 트는데 주변에 은신처가 많이 있는 장소를 둥지로 선택한다. 참새는 지붕 처마 밑이나 건물 틈새를 이용하여 둥지를 짓기 때문에 우리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에 비해 까치는 눈에 확 띄는 커다란 둥지를 높은 나무 위에 짓는다.
대부분의 새들이 둥지를 은밀한 곳에 지어 포식자를 피하지만, 까치는 높이를 이용하여 포식자 방어를 한다. 까치 둥지는 워낙 높게 있어 동네 개구쟁이들도 쉽게 건드리지 못한다. 네발동물들도 마찬가지이다. 새들을 위협하는 동물로 고양이나 삵과 같은 고양이과 작은 동물이 있다. 이들도 나무를 어느 정도 올라갈 수 있지만 까치 둥지가 있는 높은 곳까지 올라가는 것은 어렵다. 높이는 대부분의 지표면 동물에 대한 최선의 방어방법이다.
둥지가 높은 나무에 위치해 있으면 지면에 살고 있는 포식자를 피할 수 있지만 공중에서 오는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강한 햇빛, 눈과 비, 바람과 같은 기상활동에 까치 둥지의 새끼들이 취약할 수 있다. 또 기회주의적인 새들의 공격에 노출될 수 있다. 까치는 이런 공중에서 다가오는 위협에도 훌륭한 방어책을 가지고 있다. 보통 새의 둥지는 위가 열린 접시처럼 생겼다. 그러나 까치의 둥지는 윗부분도 덮어 쌓아서 마치 안이 비어 있는 공처럼 생겼다. 둥지의 윗부분도 아랫부분과 같이 나뭇가지를 얽어 짓는다. 그래서 까치 둥지의 무게는 4.6 - 12.0 Kg 정도나 나가는데 조류의 둥지로써 무척 무겁다. 천장이 있는 튼튼한 둥지는 공중에서의 위험에도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
높이 있는 둥지는 포식자로 부터 안전하지만, 특히 바람에 취약하다. 시베리아 기단의 영향을 받아서 부는 북서풍은 겨울철 우리나라의 기후인 춥고 건조한 바람을 가져온다. 까치는 비교적 큰 나무이면서도 적게 흔들리는 나뭇가지 위에 둥지를 짓는다. 또 까치는 둥지의 모양을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에 대해 유선형으로 만든다. 그래서 강한 북서풍이 불어도 까치의 둥지는 안정하다.
까치는 둥지를 지을 때 분업을 한다. 수컷이 둥지에 쓰일 재료를 물어 오고, 암컷이 재료를 엮어서 둥지를 쌓아 간다. 까치는 먼저 나뭇가지를 이용하여 둥지의 기본적인 골격을 만든다. 특별한 나무를 선호하지 않고 근처에 사용 가능한 나뭇가지를 이용하는데, 보통 까치의 둥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려 800개 정도의 나뭇가지가 필요하다. 나뭇가지로 외부 둥지를 만들고, 까치는 그 내부에 진흙, 지푸라기, 깃털 및 솜털을 이용하여 다시 둥지를 만든다. 그래서 까치의 둥지는 다른 새들의 둥지보다 크고, 튼튼하고, 정교하다.
까치는 높이를 이용한 포식자 방어를 하기 때문에 크고, 튼튼하고, 정교한 둥지를 지어야 한다. 또 이런 둥지를 짓기 위해서 건축 기간이 다른 어떤 새들의 둥지보다 길다. 그래서 한 겨울인 설날 즈음에 둥지를 짓는 새는 까치밖에 없다. 이런 까치의 번식활동의 특징때문에 우리 조상님들은 까치를 설날 동요에 등장시키지 않았을까? 그럼 까치의 설날은 왜 오늘이 아니고 어제일까? 한자로 까치를 의미하는 작(鵲)과 어제를 의미하는 작(昨)의 우리말 음이 같아 까치의 설날은 어제가 되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그러면 설날, 까치와 어제가 자연스럽게 연결이 된다.
설날 아침에 온 가족이 모여 차례를 지내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설날에는 집안의 대소사나 올해의 농사를 계획하면서, 한 해를 시작하는 날이기도 하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지만 이 때 까치가 나뭇가지를 물고 와서 둥지를 짓는다. 나뭇잎이 없고 나뭇가지만 앙상하게 드러나는 한 겨울이기 때문에 까치의 행동을 예리한 조상님들이 놓쳤을 리 없다. 설날 아침에 새롭게 시작하는 까치의 번식활동을 보면서 우리 조상님들은 한 해를 계획하지 않았을까?
이 글은 2016년 2월 1일 경향신문 <장이권의 자연생태 탐사기>에 발표되었다.
방문일: 2016년 2월 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