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University of Missouri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근무할 때 친한 친구가 있었다. 같은 실험실에서 박사후연구원이있던 Mike Smith와 갓 결혼한 신부 Michelle이다. 우리가 호주를 방문하기로 결정한 후 Mike에게 연락을 했다. Mike과 Michelle은 호주 서해안인 퍼스(Perth)에 살기 때문에 시드니에서 만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런데 마침 Mike과 Michelle도 연말을 맞아 시드니를 방문하게 되었고, 놀랍게도 같은 호텔에 묵게 되었다. 11년이 지난 후였지만 둘은 그대로였다. 다만 나이의 흔적이 여기저기 있고, 귀여운 아들내미 Jasper도 같이 있었다. 우리는 식사를 같이 하며 그동안의 회포를 풀고, 호텔에서 가까운 달링하버로 산책을 나갔다.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는 식당가와 공원 사이의 길을 걷는데 길 한복판에 하얀 따오기가 여기저기 걸어 다니고 있었다. 따오기 하면 제일 먼저 우포늪에 복원 중인 따오기가 떠오른다. 우리나라에서는 멸종위기종인데 여기 시드니에서는 거리에 돌아다닐 정도로 흔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이 새가 호주흰따오기(Australian White Ibis)라고 알게 되었다.
신기한 마음에 달려가 사진도 찍고 관찰도 하였다. 따오기는 가늘고 긴 부리가 특징이다. 부리는 안쪽으로 휘어져 있어 땅속이나 진흙 속에 숨어 있는 곤충, 갑각류, 등을 잡아먹기에 적당하다. 그런데 호주흰따오기는 번잡한 거리에서 쉽게 돌아다닐 만한 작은 새가 아니다. 보통 키가 지면에서 75 cm 정도이기 때문에, 근처에 있는 비둘기나 갈매기에 비해 월등이 컸다. 조그마한 어린이에게는 충분히 위협이 될 만한 크기였다. 나의 호기심 어린 행동을 보고 Mike이 친절히 알려 주었다. 호주흰따오기는 최근 호주 동부 도시들에서 숫자가 급격히 증가하였다. 이 새는 번식을 위해서는 영구적인 습지 근처에 있어야 하는 물새이다. 그래서 호주 동부의 큰 도시공원에 있는 연못이나 개울가, 수로가 있는 곳은 이 새들이 점령하고 있다.
재미있는 점은 호주흰따오기가 동부의 도시들에서 번성하게 된 배경이다. 이 새들은 원래 호주의 내륙에 있는 머레이강과 달링강 유역(Murray Darling Basin)에 서식하고 있었다. 1970년 후반에 큰 가뭄이 들었고, 번식할 장소를 찾아 이들 중 일부가 동부의 도시로 이동했다. 그런데 호주흰따오기를 원서식지에서 내몬 주요인은 인간 때문이다. 농사를 위해 원서식지의 물을 지속적으로 빼냈고, 여기에 1990년대 말에 가뭄이 겹쳐 호주흰따오기는 더 이상 번식하기 어려워졌다. 그래서 2000년도에는 내륙의 원서식지에서 호주흰따오기의 둥지를 찾아볼 수 없었다. 풍부하고 영구적인 물, 탁 트인 공간, 음식이 풍부한 도시는 호주흰따오기에게 아주 매력적인 서식장소이다.
호주 동부의 도시들에서 호주흰따오기의 개체수가 많아지면서 인간과 충돌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우리가 걸으면서 식당가를 보니 호주흰따오기가 의자나 테이블에 올라가 남은 음식을 훔쳐 가져가고 있었다. 어떤 놈은 먹고 있는 음식을 노리고 있었다. 이들은 물을 지저분하게 하고, 잔디나 화단에 배설물을 싸고, 쓰레기를 뒤지고 다닌다. 또 악취를 풍기는 경우도 있어 점점 혐오의 대상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닭둘기 수준이다.
민원이 급증하자 일부 지자체들은 호주흰따오기의 조절에 나섰다. 야자수와 같이 둥지를 짓는 나무를 없애 성체를 내쫓기도 하고, 둥지에서 알을 제거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알질식기술(egg-oil technique이라고 한다)이 자주 사용된다. 호주흰따오기는 한 번식기에 3 차례나 알을 낳을 수 있고, 알이 포식자에게 희생되면 바로 다시 알을 낳는다. 알에 캐놀라 오일을 발라서 둥지에 두면 알은 공기공급을 받지 못해 폐사한다. 정상적인 경우 알은 3주 내에 부화하지만, 이 경우 어미는 알이 죽은 줄도 모르고 두 달 가까이 알을 품는다. 죽은 알을 품고 있으면 그 기간 동안 호주흰따오기가 번식할 수 있는 기회를 제한할 수 있다. 어미에게는 잔인하지만 알질식기술은 개체수 조절에 아주 효과적이다.
그렇지만 이런 개체수 조절이 궁극적으로 피난 온 호주흰따오기를 멸종의 위협으로 내몰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호주흰따오기는 수명이 길기 때문에 개체수 조절이 당분간 지속되더라도 성조의 수는 큰 변화가 없다. 그러나 어느 한 순간 개체군은 와해되어 회복되기 어려운 수준으로 내려갈 수 있다. 그래서 개체수 조절 보다는 안전 피난처를 지정하거나 조성하여 호주흰따오기를 보전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인간과 야생동물이 공존하는 일은 여기 호주에서도 쉽지 않은 것 같다.
방문일: 2015년 12월 22, 23일
장소: 시드니, 오스트레일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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