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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이권 Apr 05. 2016

우리나라의 6계절

대자연의 감동을 느끼러 해외로 가는 분들이 많다. 아프리카의 사하라와 나미브 사막, 아마존의 열대우림, 호주의 대산호초, … 나는 주위 분들에게 이와 필적할 만한 대자연이 우리나라에도 있다고 강조한다. 봄에 나무에서 새 잎이 돋는 현상을 개엽이라 한다. 곧 우리나라 전역에서 시작될 개엽이 세계의 다른 생태계에서 보기 어려운 대자연의 감동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4월 초인 지금 야외에 나가면 세상은 회색 위주이다. 우리나라의 산림은 온대활엽수림이 주축이다. 낮의 길이가 짧아지고 밤의 온도가 내려가기 시작하는 가을이 되면 온대지역의 활엽수는 잎에서 엽록소의 생산을 줄여 간다. 초록색의 엽록소가 잎에서 점점 사라지면, 잎에 있는 빨강, 노랑의 다른 색소가 드러난다. 흔히 우리가 말하는 단풍이다. 이어서 활엽수는 물의 손실을 줄이기 위해 잎을 떨어뜨리는데, 이것은 낙엽이다.      


온대활엽수림에 있는 대부분의 나무는 이 상태로 겨울을 난다. 그래서 지금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우리나라가 회색으로 뒤덮여 있다.


온대 지역은 춥고 긴 겨울 동안 많은 생물들의 활동을 정지시키거나 위축시킨다. 생명체는 세포로 구성되어 있고, 세포는 온도가 0 °C 이하로 떨어지면 얼음 결정체가 생성되어 파괴된다. 이런 낮은 온도를 극복하기 위해 온대지역의 생명체는 다양한 월동 방법을 진화시켰다. 예를 들면, 조류의 깃털, 포유류의 털이나 모피, 해양포유류의 지방층은 추위로부터 내부 기관을 절연시켜 준다. 일부 동물들은 추위를 피해 온도가 높은 저위도로 이주를 한다. 낙엽은 나무가 추운 온대지역의 겨울을 나는 훌륭한 월동 방법이다.


떨어진 나뭇잎은 바로 부패하지 않는다. 곧이어 닥치는 추운 겨울 때문에 부패과정이 더디게 일어난다. 낙엽이 부패하여 분해되려면 높은 온도와 습도가 있는 이듬해 봄과 여름까지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겨울이 찾아오고 부패과정이 멈춘다. 이렇게 온대 지역은 추운 겨울 때문에 표토에 있는 유기물의 부패가 더디게 일어나고, 낙엽이 완전히 분해되는데 보통 4-6 년이 걸린다. 그 결과 온대지역의 토양은 두껍고, 풍부한 유기물질 때문에 대단히 비옥하다. 이런 이유로 전 세계의 곡창지대는 대부분 온대지역에 있다.      


낮의 온도가 정기적으로 영상으로 올라가면서 점차 얼음이 녹기 시작한다. 동시에 추운 겨울 동안 멈춰 있던 생명활동은 초봄이 되면서 움트기 시작한다. 초봄은 남부 지역에서는 1월 말부터 시작할 수 있고, 중부지방에서는 2월에 시작할 수도 있다. 초봄을 특징짓는 생물계절 활동은 산개구리와 새들의 노래이다. 산개구리들은 얼음이 녹은 물에 산란을 하고, 새들은 영역을 확보하고 둥지를 짓기 바빠진다. 여름 철새는 저위도 지역에서 우리나라로 이주해 온다. 낙엽성의 나무는 이때 잎눈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다. 산수유, 생강나무, 진달래, 노루귀와 같은 일부 식물은 이때 개화를 한다.


초봄은 봄을 알리는 전주곡이다. 봄의 대표적인 생물계절 전국적으로 일어나는 개엽이다. 온대활엽수림의 개엽은 절대적인 범위, 양 및 속도에서 상상을 초월한다. 유기물 함량이 높은 온대지역의 토양은 막대한 양의 새잎을 생산할 수 있게 한다. 더욱 놀라운 일은 개엽이 우리나라 전역에서 불과 몇 주 사이에 일어난다. 그래서 개엽은 가히 폭발적이라고 표현할 만하다. 이 시기에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회색뿐인 세상이 순식간에 연초록으로 물드는 것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개엽은 단순하게 새잎이 돋아나는 생물학적 현상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식물의 잎은 곤충을 포함한 많은 초식동물의 먹이이다. 곤충은 새잎을 바탕으로 새로운 성장과 번식을 하고, 이들은 다시 조류, 양서류, 파충류의 먹이가 된다. 추위를 버티며 연명하던 조류나 포유류, 동면에 깨어난 포유류, 우리나라를 다시 찾은 여름철새도 개엽에 맞춰 본격적으로 활동한다.


여름에 온대활엽수림의 나뭇잎은 진한 녹색을 띈다. 성숙한 숲에 들어가면 하늘을 보기 어려울 정도로 나뭇잎이 하늘을 가리고 있다. 동물들은 이 시기에 대부분의 성장과 번식을 한다. 8월 중순이나 하순쯤이면 나뭇잎들의 색이 변하는 늦여름이다. 늦여름은 추수의 계절이다. 이 때 쯤이면 봄에 부화한 새들은 거의 대부분 어른 새가 된다. 또 여름 철새는 이주할 준비를 시작한다.       


생태학자들은 온대지역의 계절을 초봄, 봄, 여름, 늦여름, 가을 및 겨울로 구분한다. 이런 구분은 흔히 우리가 익숙한 천문기상학적 계절이 아니고, 생물계절에 따른 계절이다. 6계절의 구분은 우리의 옷차림이나 활동 및 농사와 같이 실질적인 의미가 있다. 조선 말기에 집필된 농가월령가를 보면 동식물의 계절활동에 맞춰 농사일을 알려 주고 있다. 농촌진흥청에서 권고하는 작물의 파종시기나 접붙이기도 생물의 계절활동과 관련이 깊다. 또 기후변화가 생물계절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국립농업과학원과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생물계절 연구를 실행하고 있다.      


봄의 시작을 알리는 개엽은 우리나라 전체의 색과 향기를 바꿔 버리는 대자연의 향연이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생명체가 개엽에 맞춰 본격적으로 성장과 번식을 한다. 우리나라와 같은 온대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이 대자연의 감동을 올 봄에 모두 감상해 보면 좋겠다.




이 글은 2016년 4월 5일 경향신문 <장이권의 자연생태 탐사기>에 발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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