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를 사랑하고 나비처럼 살고 싶은 사람 4명이 모였다. <한국나비생태도감>을 집필한 서영호 감독님, 나비를 사랑하는 지리학자 김이재 교수님, 인생의 경로를 나비처럼 탈바꿈하는 원국동 회장님, 언젠가는 나비 연구를 하겠다고 벼르고 있는 나이다. 우리는 12마리의 나비 문양을 외벽 전면에 수 놓은 에버리치 호텔에서 나비와의 만남을 가졌다. 드넓은 호텔 정원을 라벤더 향기와 색으로 채우겠다며 원 회장님은 이 날도 손수 식재를 하였다. 때는 5월 초이어서 철쭉이 활짝 피워 있었고, 우리는 이 앞에서 나비를 기다렸다. 1시간도 지나지 않아 무려 8종이 넘는 나비가 이곳을 찾았다. 배추흰나비, 큰줄흰나비, 애기세줄나비, 산호랑나비, 호랑나비, 긴꼬리제비나비, 제비나비, 푸른부전나비...
다양한 나비가 우리를 찾아왔지만 나의 시선을 끈 나비는 그중에 가장 평범하고 흔한 배추흰나비이다. 이 나비는 비교적 작고, 주로 하얀색 바탕에 검은 점이 있는 날개가 있다. 배추흰나비가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면 정신이 없다. 이리 펄럭, 저리 펄럭, 도대체 종잡을 수가 없다. 나비는 좌우로 윗 날개와 아랫 날개가 있다. 윗 날개는 근육이 연결되어 있어 비행에 필요한 힘을 직접 얻는다. 그런데 아랫 날개는 근육에 연결되어 있지 않고 그저 윗 날개에 걸쳐 있다. 그래서 나비의 아랫 날개를 제거해도 나비가 비행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나비는 아랫 날개를 마치 거룻배의 노처럼 이용하여 비행방향을 자유자재로 바꾼다고 한다. 아랫 날개가 상당히 큰 만큼 나비는 비행 중에 방향을 빠르고 급격하게 바꿀 수 있다. 배추흰나비는 어차피 포식자인 새보다 빠르게 비행할 수 없다. 그래서 배추흰나비는 아랫 날개를 이용하여 비행방향을 빠르게 바꾸고, 불규칙하게 비행하여 새들을 피하려고 한다.
펄럭이며 정신없이 날아가지만, 배추흰나비는 아주 분명한 방향감각을 가지고 있다. 배추흰나비는 평생 한 방향으로만 날아간다. 며칠 동안의 비행경로를 추적하여 연결하면 일직선으로 한 방향을 유지한다. 배추흰나비 암컷은 일직선으로 이동하면서 보통 텃밭과 같이 열린 공간에 있는 배추과 식물을 좋아한다. 그렇지만 산란하기에 적당한 식물이 있는 공간이 있더라도 일직선 비행경로에서 벗어나 있으면 무시하고 지나간다. 배추흰나비 한 마리, 한 마리의 비행방향은 무작위이다. 그래서 많은 배추흰나비의 비행방향을 한꺼번에 놓고 보면 사방팔방으로 뻗어간다.
커다란 뒷날개를 이용하여 방향을 자유자재로 바꾸면서 날아가는 배추흰나비의 비행방법은 짝짓기를 할 때에도 중요하다. 나비의 날개에 있는 인편은 아주 얇은 막이 겹겹이 쌓여 있는데 각 층마다 빛이 반사된다. 그런데 반사되는 빛이 서로 일치하여 보통 반사되는 빛 보다 훨씬 밝아 보인다. 이것을 건설적인 간섭 (constructive interference)이라 한다. 그런데 이 때 잘 반사되는 빛은 UV이다. 우리 눈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나비와 같은 곤충은 UV를 잘 볼 수 있다. 수컷 나비는 암컷 앞에서 날개를 펄럭이면 여기서 UV 빛이 반사되어 암컷에게 비춘다. 암컷은 수컷의 날개에서 반사되는 UV를 보고 짝짓기 상대로 결정한다. 펄럭, 펄럭이며 춤추듯이 날아가는 배추흰나비의 비행은 포식자에게는 정신없어 보이지만 이성에게는 매력적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