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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이권 Nov 12. 2015

사막의 하천, wash

곤충학을 전공하는 분들에게 채집여행은 연례의식과 같다. 일 년 계획을 세울 때 가장 먼저 채집여행 일정을 잡는다. 해외에서 채집여행을 하는 경우 심지어 몇 년 앞의 일정까지 미리 잡아 놓기도 한다. 서로 만나서 수다를 떨면 내가 언제 어디에 가서 무엇을 채집 했는지가 주요 대화거리이다. 재미있거나 기억에 남는 일은 거의 대부분 채집여행에서 생긴다. 수십 년이 지나 다시 만나도 채집여행 이야기를 하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 또 같이 채집여행을 한번 갔다 와야만 진정한 친구가 된다. 나도 당연히 채집여행 이야기가 몇 개 있다.  

   

내가 다닌 캔자스 대학교에서는 매년 여름 정기적으로 야외곤충학 수업이 있다. 교수 한 두 분과 학생들이 2-3 주간 주로 미국 남서부로 채집을 간다. 가끔 해외로 채집을 갈 때도 있다. 내가 대학원생이 되고 난 다음해이다. 우리는 텍사스, 뉴멕시코, 아리조나를 거쳐서 콜로라도로 들어섰다. 그 날도 어느 날과 같이 낮에 운전을 하고, 밤이 오기 전에 야영지에 텐트를 세웠다. 간단하게 저녁을 마치고 바로 black light채집에 들어간다. 이 채집은 하얀 천을 높게 세우고, 자외선 불을 비춘다. 그러면 밤에 활동하는 곤충들이 이 불빛에 유인된다. 멀리 있는 곤충도 불빛에 유인 되게 하기 위해서 black light 채집은 주로 탁 트인 장소에 설치한다. 우리는 적당한 장소를 물색하다가 이름은 잘 모르지만 어떤 wash 한 가운데에 유인불빛을 설치했다. Wash는 건조한 지역에 있는 조그마한 하천이다. 평상시에는 물이 없어서 말라 있다가 비만 오면 잠깐 물이 씻겨 내려가듯 흐른다. Wash의 좋은 번역을 아직 찾지 못했지만, 풀어서 말하면 '씻겨 내려가는 하천'으로 하면 좋겠다. 물이 흐르는 장소이기에 wash 내에는 평평한 장소가 많이 있다.     


몇 시간 동안 야간 곤충채집을 열심히 하고, 나는 지친 몸을 이끌고 텐트로 들어갔다. 들어가기 전에 멀리서, 아주 멀리서, 하늘이 번쩍이는 것을 보았다. 사막은 습기가 없어서 아주 멀리까지 보인다. 우리나라와 같이 습기가 많은 곳에서는 몇 km 앞도 잘 보이지 않지만, 사막은 몇 십 km 밖도 뚜렷하게 볼 수 있다. 한참 자고 있는데 누군가가 나를 흔들어 깨웠다. 여기를 탈출해야 한다면서 빨리 일어나라고 했다. 일어나 보니 우리 텐트는 하천 한가운데 조그만 섬에 고립되어 있었다. 잠들기 전에 멀리서 보았던 번개가가 비로 이어졌고, 그 비가 여기까지 도달한 것이다. 이것을 '돌발홍수' (flash flood)라 한다. 우리를 책임지고 있던 교수님은 돌발홍수가 걱정이 되어 불어나는 수위를 지켜보면서 뜬 눈으로 지샜다고 한다. 우리는 재빨리 장비를 챙겨서 물을 건너 안전한 장소로 이동했다. 물살이 세긴 하지만 깊진 않아서 다행히 위험하진 않았다. 텐트를 칠 때 절대 물가에 세워서는 안 된다는 기본 수칙을 잊어먹은 결과이었다.     


물은 사막에 살고 있는 생명체의 삶과 죽음을 가른다. 북미의 소노란 사막은 지구에서 가장 건조하고, 가혹한 환경에 속한다. 일 년에 8 cm 미만의 비가 내릴 뿐이다. 이런 사막에 생명을 불어 넣는 것은 겨울에 오는 비이다. 비는 잠깐 오지만 사후아로 같은 선인장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한 그루가 무려 700 리터 까지 물을 흡수할 수 있다. 쟁기발 두꺼비도 비가 오면 땅속에서 나와 임시로 만들어진 습지를 이용하여 번식을 한다. 그리고 이 때에 주로 wash에서 물을 볼 수 있다. 지난겨울 Petrified Forest National Park를 여행하면서 물이 흐르고 있는 wash를 보았다. 나는 너무 반가워 차에서 내려 이리 저리 사진을 찍었다. 차에 있는 일행은 내가 왜 흥분해서 사진을 찍어대는지 의아한 눈치다. 그 홍수사건 이후 이 지역을 몇 차례로 더 방문했지만, wash에서 물을 보지는 못했다. 물이 흐르는 wash는 정말 보기 드문 장면이지만, 이 가혹한 사막에도 생명이 넘쳐흐른다는 상징이다.


2015년 4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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