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디에이고는 멕시코와 인접한 미국 캘리포니아의 남단에 있는 도시로 일 년 내내 기후가 온화하다. 이 도시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을 뽑으라면 단연 라호야 만(La Jolla Cove)이다. 바다가 육지 쪽으로 들어와 있는 지형을 '만'이라 하는데, 크면 'bay', 작으면 'cove'라 한다. 라호야 만은 그리 크지 않지만,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어 전망이 뛰어나다. 스노클링이나 스쿠버다이빙과 같은 바다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을 늘 볼 수 있고, 다양한 해양 생명체를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우리가 이곳을 찾은 시점은 12월 마지막 주의 한 겨울이었지만, 여전히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해안가를 따라 내려가다가 어렵게 주차에 성공하였다. 늦은 오후의 햇빛을 받아 절벽은 노란 화염처럼 타오르고 있었고, 짙푸른 바다색과 멋진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해가 질 때이어서 조금만 기다리면 태평양의 낙조도 사진에 담을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렇지만 내가 이곳을 찾은 가장 중요한 이유는 여기에서 살고 있는 바다사자를 구경하기 위해서이다.
조금만 걸어 내려가자마자 바다사자들이 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해안가 여기저기에 수 백 마리의 바다사자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리고 펠리컨, 가마우지, 갈매기와 같은 바다새도 모두 평화롭게 이 해안을 즐기고 있어 보였다. 초가을에 이 곳을 방문했던 와이프가 바다사자 냄새가 지독히 난다고 미리 경고했다. 그런데 우리가 찾은 시기가 한겨울이라서, 그런지 냄새는 거의 나지 않았다. 나는 아름다운 풍경과 해양동물들을 사진으로 담기 바빴다. 사진을 한참 찍다가 이상하게 생긴 바다사자를 발견하였다. 목에 마치 목걸이를 두른 것 같은 바다사자이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목걸이가 아니라 낚싯줄이 목에 걸려 그 부분만 색이 진했다. 낚싯줄이 목으로 파고 들어간 두께를 보면, 이 낚싯줄을 걸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나간 것처럼 보인다. 나는 자세히 보려고 조금 더 절벽 밑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낚싯줄로 목걸이를 한 바다사자에게 다가가긴 어려웠다. 잠시 뒤 아직 성체는 아닌 작고 너무 귀여운 바다사자 한 마리가 갑자기 나타났다. 그런데 이 녀석이 계속 이동하여 나에게 점점 다가왔다. 잠시 후 손을 뻗으면 닿을만한 거리까지 다가와 소리를 질러댔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낚싯줄이 입에서부터 온 몸으로 이 녀석을 옭아매고 있었다. 몸을 옆으로 돌려놓고 나에게 보여주는 모습이 꼭 도움을 요청하는 것 같았다.
이 바다사자를 보면서 어찌할 줄 모르고 있는데 뒤에 있던 딸내미와 딸내미 친구들이 어떻게든 해보라고 소리를 질러 댔다. 아이들의 눈총이 무서워서 도와주려고 다가가는데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서 있는 곳은 미끄러운 해안 바위이고, 나한테는 질긴 낚싯줄을 자를만한 도구가 있지도 않았다. 그래서 뒤로 물러나 다른 관광객들에게 다가갔다. 이들에게 설명을 하고 혹시 낚싯줄을 자를 만한 도구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아무도 그런 도구를 가지고 있진 않았다. 한참 동안 관광객과 바다사자를 왔다 갔다 하다가, 도저히 내가 이 녀석을 구조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아이들은 다시 경찰이나 구조대원에게 가보라고 난리를 친다. 그래서 해안과 인근 도로를 오가며 제복을 입은 사람을 열심히 찾았다. 마침 구조대원을 발견하여 이들에게 바다사자를 구조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이들도 바다사자를 구조할만한 장비가 없다며 도움을 줄 수 없다고 하고, 대신 다음날 아침 해양생물 전문가들에게 알리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다시 아이들에게 조그만 성과를 설명하고, 도망치듯 이곳을 빠져나왔다.
라호야 해안에서 점점 멀어졌지만, 낚싯줄에 걸린 바다사자의 모습은 나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정말 그 바다사자는 도움을 요청하려고 나에게 접근하였을까? 지금이라도 낚싯줄을 자를 만한 도구를 사서 다시 돌아가야 하나? 해양에 버려지는 쓰레기에 의해 많은 해양동물들이 피해를 입는다고 잘 알고 있었지만, 내 눈앞에서 절규하는 바다사자를 보면서 이 지식이 나에게 고통스러운 현실이 되어 버렸다. 멋있는 경치를 감상하러 많은 사람들이 라호야 만에 찾아오겠지만, 이제 나에게 라호야 만은 낚싯줄에 걸린 해양동물이 몸부림치는 끔찍한 곳으로 낙인찍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