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쉽게 함부로 판단하지 말걸
아이들의 사춘기는 언제 시작되는 걸까. 아마 그 시기는 딱 정해진 게 아니라 아이마다 다 제각각일 거다. 초등학년 때부터 사춘기가 시작되는 아이들도 있고, 고등학교 졸업 후에 마음의 풍랑이 찾아오는 친구들도 있다. 어쨌든 사춘기라는 시기가 어른들 눈에는 이상해 보일지 모르지만, 그 시기를 거치고 나서야 아이는 어른으로 살아갈 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되는 것 같다.
앵두의 사춘기 시작은 초등학교 5학년 즈음부터였던 거 같다. 이제 초딩스러운 모든 것들이 다 시시해 보이고, 그전에 자신이 재밌게 하던 것들 대신 친구가 말하는 모든 것들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해졌다. 방을 혼자 쓰기 시작하고, 비밀이 많아졌다. 좋아하는 아이돌이 생겼고, 굿즈를 사는데 돈을 많이 쓰기 시작했다. 그때는 앵두가 부모 말은 잘 안 들으면서 아이돌 굿즈 산다고 용돈만 달라고 하는 모습이 괜히 얄미워서 싸우기도 많이 싸웠는데, 돌아보니 아이돌 덕질만큼 세상 얌전한 사춘기도 없는 것 같다. 지금 만약 내 아이가 아이돌 덕질을 하면서 사춘기를 허비한다고 걱정하시는 부모님들이 계시다면, 세상 다행스럽고 감사한 일이라고 진짜 말해드리고 싶다.
하여튼 난 그때 진짜 사춘기 아이에 대해서 모르는 게 많아서, 너무나 모든 게 낯설었고, 앵두와의 관계도 조금씩 어색해지기 시작한 거 같다. 아이는 그 전에 가족들과 즐겁게 했던 모든 것들을 이젠 더는 좋아하지 않았다. 매년 제주도로 여행 가서 가족들과 오랫동안 같이 걸으며 자연을 관찰하고 작은 것들에 즐거워하던 아이는 이제 사라져버렸다. 이제 막 사춘기가 시작되고 있는 아이의 현재 모습을 부모가 받아들이지 못하니, 이제 더는 아이와 할 얘기도 없고, 잦은 다툼이 날 수밖에 없던 거다.
그 당시 나는 마을공동체에 속해있었는데, 동네 언니들을 통해 여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다른 집 아이들의 삶의 방식을 보니, 내가 뭔가 집에서 교육을 단단히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립심 높고 사교적인 다른 집 아이들과 우리 집 아이를 비교하면서 ‘왜 얘만 이럴까’라는 바보같은 생각만 하고 있었으니, 첫째와 관계만 나빠진 거다. 생각해보니 그때 아이는 사춘기 소녀들의 기 싸움 속에서 나름대로 폭풍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 거다. 주변 아이들도 모두 변하고, 자신도 그렇게 쎈 모습의 가면을 쓰고 있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시절을 보내면서, 엄마까지 자신을 누군가와 끊임없이 비교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할 시간에 아이의 이야기를 더 오래 귀 기울여주고, 한번 더 안아주고, 맛있는 음식을 같이 해 먹었어야 했는데. 지금 돌아보니 그때의 내가 참 미련스럽고, 앵두의 마음이 이해가 간다.
이제야 몇 년 전 과거를 돌아보니 사춘기 아이들 마음속에는 자신의 본심을 감추는 허세가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아이처럼 놀고 싶고, 그저 누군가에게 특별하고 소중한 사람이 되고 싶은데, 괜히 센 척하고, 상처 안 받은 척하고, 더 못된 척을 하면서 어떤 가면 속에 자신의 본모습을 숨기는 거다. 사실 아이들이 무엇보다 가장 원하는 건 날 인정해줬으면 하는 마음인데, 내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여 주는 넓고 따뜻한 어른들의 시선과 사랑인데… 그런 말을 할 수 없어서 괜히 아픈 말만 튀어나오는 것이다.
하여튼 사춘기의 시작은 아이도 어른도 어색하고 낯선 시기다. 그때야말로 육아 공부가 필요하다. 이제야 돌아보니 그때 사춘기에 대해 공부란 걸 해야 했었다. 내 아이의 사춘기가 클라이맥스를 치닫기 전에. 가족들이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 전에. 아이의 변화에 대해 알고 이해해야 했다. 그렇게 온갖 공부를 열심히 하고 온갖 책을 부지런히 읽으면서, 왜 그렇게 내 삶에서 중요한 공부는 패스했을까. 어쩌면 그건 오만함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내 아이는 그냥 놔두면 알아서 잘 클 거라는 근거도 없는 생각을 믿으며 그냥 정신없이 바쁘게만 돌아쳤던 것 같다. 그런 상황에서도 주변 엄마들의 이런저런 충고에 쓸데없이 흔들리며 괜히 멀쩡한 아이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만 키워갔으니, 본질을 한참 비껴가고 만 거다.
나중에 사춘기의 심리에 관한 책과 영상을 찾아보며, 여러 가지 후회가 밀려왔다. 이렇게 아이에게 많은 상처를 주고 나서야 뒤늦게 알게 된 것들을 그때 조금이라도 일찍 알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 생각과 가치관에 맞지 않더라도 일단 들어보고 물어보고 이야기해 볼걸. 아주 작은 문제들을 붙들고 큰일이 난 것처럼 너무 쉽게 함부로 판단하지 말걸. 초보 사춘기 엄마의 실수들은 돌아볼수록 차고 넘친다.
#사춘기엄마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