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현상소'생명의 기억' 퍼포먼스
지금은 청년과 청소년이 된 아이들에게 2014년 4월 16일 오전의 기억을 물어보면 모두 한결같이 학교에 있었다는 이야기가 돌아온다. 어른들이 각자 다른 장소에서 다른 일들을 하며 뉴스를 처음 들었던 것과 달리 아이들은 그때 대부분 학교 교실에서 수업을 듣고 있었다.
기억현상소 동아리의 416퍼포먼스 수업 첫 모임을 기억하며 떠올랐던 건, 아이들이 모두 그날 학교에서 그 소식을 들었다는 사실이었다. ‘당신은 참사가 일어났던 그때 무엇을 하고 있었나요?’라는 질문에 똑같은 대답이 나올 수밖에 없는 유일한 세대. 청소년을 생각했을 때, 그 당연하고 한결같은 대답이 머릿속에서 걸렸던 건, 최근 세월호 선체를 보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였다.
그해 세상 모든 것들이 멈춘 것만 같던 상황에서도 학교는 변함없이 계속 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계 안에 들어가 있던 아이들은 그 충격과 슬픔을 학교에서 감당하고 있었다. 어른들에게도 그날의 충격은 회복되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던 사건이었는데, 학교란 공간에 있던 아이들의 시간과 감정은 얼마나 억눌러져 있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스쳤다.
의도치 않았지만, 청소년들이 ‘생명의 기억’ 퍼포먼스를 준비하던 과정들은 혹시 그렇게 억눌린 것들을 풀어가는 워밍업 같은 시간 아니었을까. 자기 몸을 움직여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뭔가를 표현한다는 건 사람을 자유롭게 한다. 2019년 봄 아이들이 작은 연습실을 콩콩 뛰고 점프하며 환하게 웃던 표정, 두 팔을 벌려 바람에 몸을 맡기며 흐느적거리던 모습이 주던 묘한 울림은 어쩌면 거기서 나왔을지도 모르겠다. 세상을 뒤흔들 만큼 큰 사건이 있었던 순간에도 교실에 갇혀 있어야 했던 아이들이 몸짓을 통해 죄책감이 아닌 자유를 경험한다는 것. 그 흥겨운 몸짓 자체를 보는 것만으로도 어른들은 5년 전 그 사건이 가진 끔찍한 재난의 실체를 현재에서 마주 보게 된다는 것.
‘생명의 기억’ 퍼포먼스는 그날의 기억뿐 아니라, 만약 그때 그런 사건이 없었다면 일어났을 3일간의 수학여행을 상상하며 아이들이 만들어간 가상의 기억을 소환한다. 그때의 아이들은 팔딱팔딱 물고기처럼 생생하고, 바람에 춤을 추는 나뭇잎처럼 자연스럽다. 99도씨에서 매일 마주하게 되는 청소년들, 뛰고 소리 지르고 까르르 웃는 생동감 넘치는 아이들 자체가 아마 그때의 아이들 모습이었을 거다. 영정사진 속에 박제된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아니라 너무나 생생하게 눈앞에서 뛰어다닐 것 같은 아이들 모습이 그렇게 떠오른다. 설레는 마음으로 셀카를 찍고, 고백을 준비하고, 친구들과 떠들고 게임을 하면서 지나갈 수도 있었을 어떤 밤을 아이들은 시간여행처럼 되살려 났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이유 없이 죄책감을 가졌어요. 죄책감을 갖는 행위 자체가 처음에는 저희도 이유 없이 미안하고, 그런 것들이 조금 부담으로 느껴지기도 했는데, 이 과정이 매주 진행되면 될수록 마치 진짜 내가 내일 당장 수학여행을 가게 될 것처럼, 그리고 어렸을 적 갔던 수학여행이 다시 끄집어 올라오면서 그 자체가 너무 즐거웠어요.” - 강사 안용세(예술교육가)
만약 그런 일이 없었다면, 그 사건이 그저 잠깐 동안의 해프닝 불과한 일이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416을 기억하며 뭔가를 만들고 있지만, 아이들은 그때의 아이들이 되어, 당시를 상상하며 더 재밌고 신나게 놀아본다. 그때의 아이들이 꿈꿨을 자유를 바람이 되어, 물고기가 되어, 나비가 되어 몸짓에 담아 보낸다. 그리고 청소년들이 더 많이 웃고 춤추고 소리 지를 때, 그걸 지켜보는 어른들의 마음에는 기쁨만큼 슬픔이 차곡차곡 사무친다.
“이 아이들을 통해서 그때 당시 단원고 아이들을 본 거지. 수학여행 갔을 때 아이들이 그런 마음이었겠구나. 고백도 하고 뭔가 흥도 넘치고, 재미로 가득 차서 시시껄렁한 농담도 하고, 그냥 마냥 재미있는 아이들의 모습, 이런 것들을 또래 아이가 퍼포먼스로 표현을 하다 보니까 ‘아 이렇게 예쁜 아이들이 결국은 별이 된 거구나’ 그 아이들은 그 시간을 정말 티 없이 맑게 보냈는데, 다음날에 일어나는 일이 뭔지 모른 채 지냈다고 생각하니까 너무 가슴이 아픈 거지. 그 생각을 하면 너무 기가 막혀. 그래서 어떻게 보면 누가 잘못했다 이런 거보다, 그 아이들이 어떤 아이들이었나 하는 걸 알게 되면서 더 4.16이 사무쳐오는 느낌이 드는 거야.” - 99도씨 책임교사 김부일
2014년 4월 16일 진도 바다 한복판에서 그 엄청난 사건이 일어난 그때, 교실에 앉아있던 아이들은 여전히 교실 안에 앉아있다. 그때 아이들이 배 안에서 창밖으로 바다를 바라보았던 것처럼, 여전히 지금 청소년들은 교실에 갇혀 창밖의 세계를 바라본다. 그때 아이들이 오랫동안 바라봤을 창밖의 바다를 떠올린다. 물결 위로 반짝이는 햇빛이 흐르고, 끝도 없이 넓게 펼쳐진 푸른 세계가 있는 곳. 상상하기 괴롭지만 선체에 들어가 어쩔 수 없이 마주 볼 수밖에 없었던 건 창밖을 향해 간절히 손을 뻗었던 아이들의 숨소리였다. 그 괴물 같은 선체가 집어삼킨 것들을 마주 볼 용기가 없다고, 여전히 거기 그대로 있을 수는 없다. 무섭고 거대한 파도가 밀려오지만, 어디로 떠내려갈지 모르지만, 그 창밖으로 어떻게든 나가게 해야 한다.
글을 쓰는 중에 악동뮤지션의 ‘물 만난 물고기’라는 노래 제목이 문득 떠올라, 가사를 오랫동안 들여다봤다. 어느새 바다가 된 이가 여전히 배로 살아남은 이에게 전하는 마지막 말을 한참 동안 읽었다.
“너는 꼭 살아서, 지프라기라도 잡아서, 내 이름을 기억해줘
너는 꼭 살아서, 죽기 살기로 살아서, 내가 있었음을 음악 해줘
우리가 노래하듯이, 우리가 말하듯이, 우리가 헤엄치듯이 살길”
- 악뮤의 항해 앨범 ‘물 만난 물고기’ 가사 中
99도씨 퍼포먼스 동아리는 ‘기억현상소’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기억을 세상에 현상하는 일, 그때의 생생함과 슬픔을 현상해서 세상에 보여주는 것은 예술을 의미할 것이다. 아이들이 정말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노래하듯이, 말하듯이, 춤추듯이. 물 만난 물고기가 되어, 하늘을 만난 새가 되어 더 멀리 헤엄치고 더 높이 날아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