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딸과 말다툼 했던어느 밤의 일기
때론 부모란 전생의 업보를 너무 많이 쌓은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시지프스의 돌을 굴리듯 내 무게로는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커다란 돌덩이를 힘겹게 올리고 있는 느낌에 휩싸일 때가 있다. 그리고 힘겹게 올린 돌이 바닥으로 한없이 내려가는 것을 허무하게 지켜보는 순간이 생긴다.
나는 한순간 말 한마디로 사춘기 아이에게 세상 나쁜 부모가 돼 있기도 하고, 아이들을 사랑하는 다른 부모들과 비교당하곤 한다. 그리고 그 말이 사춘기 아이가 흥분하고 화가 나서 하는 말이라는 건 알지만, 어쩐지 자괴감에 휩싸인다. 내가 그동안 살아왔던 시간들이, 내가 소중하다고 생각한 것들이 실은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는 걸 문득 깨닫고 만다.
자식을 어떤 식으로든 사랑할 수밖에 없는 부모들의 마음이 본능 같아 보일 때가 있다. 아이가 부모에게 아무리 모진 말을 하고, 원망을 하고, 가슴에 비수를 꽂는 말을 해도, 그 와중에도 너무 아프기 때문에 나는 이 아이를 사랑하고 있구나, 느끼는 순간 말이다.
어쩌면 어떤 부모 자식 사이는 영화 <레이디버드>의 대사처럼 사랑하지만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는 관계이기도 할 것이다.
사랑한다는 큰 전제는 부정할 수 없을 거야. 하지만 때론 어떤 말이, 어떤 표정이, 어떤 행동을 좋아할 수 없을 때가 있어. 어떤 순간들을 아파하고 계속 되돌아보고, 어떤 수고들은 기꺼이 감당하고 살고 있지만, 모든 것을 다 이해한다고 말하는 건 거짓말일지도 몰라.
그저 내가 키운 아이들이 어쩌면 평생 이해할 수 없는 타인이라는 것을,
그게 옳거나 그른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한 사람의 고유한 특성이라는 것을,
아무리 오래 알아왔다 해도, 아무리 오래 이야기를 했어도, 사람이란 존재는 도저히 알 수 없다는 것을 슬프게 인정하게 되는 순간이 생기곤 한다.
그저 우리는 약한 사람이라는 것,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서 너무나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사람이란 걸 깨닫게 된다.
어쩌면 그저 말이 잘못 튀어나왔을 수도 있던 건데, 그날 내 자존감이 너무 약해져 있던 것뿐인데... 왜 그렇게 그 말 한마디가 내 존재 자체를 부정한다고 생각했을까.
난 누군가의 말 한마디로 정의될 수 없는 사람인데, 나도 날 잘 모르겠는데.... 나는 지금 어쨌든 최선을 다해 살고 있는데... 그렇게 나에 대한 생각을 한참 동안 하다 보면, 세상 그 누구도 내 멋대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상대방이 진심으로 느끼게 되는 사랑의 힘에 대해서 나는 알고 있다.
하지만 때론 난 그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런 순간들이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걷게 되는 어두운 밤이란 걸 안다.
삶으로 기도를 하게 되는 순간이다.
누구에게라도 원망을 하고 싶지만, 결국 아무에게도 원망할 수 없어서, 그저 잠시 내려놓은 짐을 다시 짊어지고 무거운 발을 내딛는 시간.
어떤 밤은 그저 보이지 않은 것들을 무슨 의미가 있는지도 모른 채 차곡차곡 쌓으며, 밤공기에 숨을 토해놓는 것밖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도대체 난 언제쯤이면 좀 더 단단한 어른이 될까.
언제 이 짐이 조금은 가벼워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