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먹는 밥
아이들에게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매년 다녔던 가족여행에 대한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딸은 이제 모든 걸 귀찮아하기 시작했고 스마트폰만 붙잡고 싶어 했다. 제주에 도착하자마자 괜히 왔다는 둥, 빨리 집에 가고 싶다는 둥 하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거기에 더해 남편마저 휴가에서까지 노트북으로 업무를 보거나 이동 중에 몇 시간씩 통화하는 일이 반복됐다. 어느 해 여름 2박 3일의 짧은 제주 여행을 다녀온 후, 이젠 가족여행으로 제주를 걷는 건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들은 변하기 마련이다. 특히 성장에는 당연히 변화가 수반될 수밖에 없다. 애벌레가 번데기가 되고, 그 번데기가 다시 나비로 변하는 과정처럼 급격한 변화를 겪어내지 않으면 성장도 없다. 지나간 것들이 못내 아쉽지만, 언제까지 옛날만 그리워하고 살 수는 없다. 아이가 변했다면 나도 그 변화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 인정이 또 다른 관계의 문을 열어 준다.
다음 해 다시 제주를 찾게 된 건 아버지 칠순을 맞아 동생네 가족과 부모님을 모시고 대가족 여행을 계획했기 때문이다. 총 11명이 함께하는 제주여행을 준비하면서 숙소와 맛집을 꽤 오랫동안 검색해서 일정을 짰다. 70대 어르신들부터 유아들까지 모두 만족할 만한 여행을 고려하다 보니, 숙소는 크고 좋되 일정은 여유롭게 움직이는 계획을 세웠다. 다행히 3박 4일 동안 머물렀던 세 개의 숙소가 모두 좋아서 가족들과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었다.
여행을 하며 깨닫게 된 건 의외로 딸이 대가족 여행을 좋아한다는 거였다. 커다란 독채 펜션에서 가족들과 어울려서 밥을 먹고, 작은 승합차를 타고 함께 이동하고, 4살짜리 조카와 놀아주는 소소한 일상을 즐겼다. 딸에게 필요한 건 모험이나 변화가 아니라 자신을 인정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을 때 느낄 수 있는 안정감과 평온함이었다. 물론 한창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한 나이였지만, 한편으로 외로울 틈 없이 북적북적한 대가족의 온기가 그리워지는 시기였던 것 같다.
때론 여행이 아니라 집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때 사춘기 딸에겐 여행보다 집이 더 절실했다는 걸 처음으로 깨닫게 됐다. 길 위에 서 있기 위해 여행을 떠났던 나와 달리 딸은 집을 찾기 위해 길 위에 서 있었던 거다. ‘나도 내가 뭘 원하는지 모르겠어’ 요즘 딸과 얘기할 때마다 늘 마지막에 나오는 그 말을 떠올려보면 내 시선으로 딸아이를 바꾸려고 했던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방향이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이란 책에서 폭넓은 의미에서 ‘폭력’을 ‘어떤 사람/사건의 진실에 최대한 섬세해지려는 노력을 포기하는 데서 만족을 얻는 모든 태도’라고 정의했다. 그 구절을 읽으며 때론 내가 부모의 사랑이란 허울 좋은 이름으로 내 아이에게 그런 폭력을 휘두르지 않았나, 반성해보게 됐다. 더 세심하게 볼 수 있는데 그런 노력조차 하지 않고 내 의견만 도돌이표처럼 반복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날카로운 논리가 아니라 예민한 더듬이와 인내심이 필요했는데, 정작 필요한 걸 바라볼 배려조차 없었구나. 몇 번을 실패해도 다시 노력해야 하는 공부를 계속 반복할 수밖에 없다.
아이의 사춘기를 받아들이고 최근에 다시 계획했던 여행은 그래도 반쯤의 성공을 거뒀다. 아이가 좋아할 만한 예쁜 숙소를 선택했고, SNS 맛집도 찾아다녔다. 이제 올레길을 걷다 배고파지면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서 한 끼를 때우고, 당일 잡은 숙소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우연에 기댄 모험은 하지 않는다. 숙소 마당에 앉아 따뜻한 차를 마시며 고양이를 관찰했고, 재즈 음악을 들으며 딸이 만들어준 토스트를 먹었다. 숙소 옥상에 앉아 해가 지는 주홍빛 하늘에 비눗방울을 불고 있는 딸의 뒷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볼 수 있었다. 여행 중에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어쨌거나 아름다운 순간도 있던 것이다.
대단한 걸 하지는 않지만 함께하는 시간 자체가 소중할 때가 있다. 같이 밥을 먹고, 같은 것을 보고, 함께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들이 쌓여 그래도 오늘을 버텨낼 수 있는 단순한 힘을 얻게 되는 것 아닐까.
일본 애니메이션 ‘썸머워즈’에는 대가족의 구심점 역할을 하던 증조할머니가 남긴 유언장에서 인상적인 구절이 나온다.
“인생에 지지 않도록 가족들 손을 놓지 말아라. 혹시 힘들고 괴로운 때가 와도 평소처럼 가족 모두 모여서 밥을 먹거라. 가장 나쁜 것은, 배가 고픈 것과 혼자 있는 것이란다.”
유언장 내용 중 ‘인생에 지지 않도록’이란 자막이 흘러나올 때,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울컥했다. 쓰러지고 싶은 고된 인생의 순간들을 어떻게든 버텨내야 했다. 그럴 때, 태풍에도 견뎌낼 수 있는 단단한 기둥이 필요할 때, 온 가족들이 둘러앉아 함께 먹었던 밥이 결국 인생을 버텨낼 수 있는 최후의 보루 같은 것이 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