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는 연습

사춘기아이에게 말 할때 하는 실수들

by 달팽이

사춘기 아이들과 함께 살며 문득 느끼게 되는 건, 부모는 진짜 마음에 여유가 있는 사람이어야겠다는 거다. 가끔 아이들 감정이 맥락 없이 급발진하는 것처럼 보일 때마다, 눈앞에 뭔가 지나간 것처럼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상황이 펼쳐진다. 부모가 보기에는 아이가 갑자기 성질을 내거나 화를 내는 것처럼 보이는 그런 순간 말이다.


그럴 때 넋을 놓고 있으면 별거 아닌 말 한마디 오해로 큰 싸움이 시작된다. 일단 부모는 그 상황에 판단을 보류하고 입을 닫는 게 중요하다. 괜히 그때 섣부른 말 한마디와 훈계, 충고를 보태면, 본전도 못 찾는 일이 벌어지기 쉽다. 어쩌겠는가. 사춘기 부모는 어차피 지는 존재다. 서천석 박사 말대로 사춘기 아이들의 부모는 잘 지는 연습을 해야 하는 것 같다.


아침에 바쁘게 준비하다 한껏 툴툴거리며 나간 아이들이 없는 빈집에서 다시 곰곰이 생각해본다. 오늘 도대체 어떤 포인트에서 화가 났던 걸까. 그 짧은 시간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 그러다 퍼뜩 생각이 날 때가 있다. 급한데 스마트폰 충전이 잘 안 된다며 속상해하는 아이한테 나도 모르게 “꼭 니가 자주 만지는 충전기는 망가진다”라는 말을 하고 만 것이다(사실 아무 생각 없이 나온 얘기라 그 말에 아이가 화가 났을 거란 생각도 못 하고 있었다). 가뜩이나 다들 예민한 아침에는 입을 조심해야 하는데, 어쩌다 기름까지 부은 격이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특히 사춘기 아이들은 자신을 비판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사소한 말들에 참 민감한 시기인 것 같다. 어른들이 무심코 지나치는 말들에서 신기하게 그런 것들을 기가 막히게 캐치해 내서, 내면의 폭탄창고 연료로 사용한다. 어른들이 보기에는 당황스러울 수 있지만, 그 모든 문제를 아이들의 문제라고만 생각하면 답이 없다. 왜 갑자기 급발진되고, 태도가 공격적으로 변한 건지 떠올려보면 그 최초의 원인은 항상 내 입에서 나왔던 사소한 말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실 왜 그런 작은 걸로 화가 나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는 생각을 고수하면 할 말이 없지만, 어쩌겠는가. 아이가 느끼는 감정이 그렇다면, 내 의도와 상관없이 화가 나는 마음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는 거다. 온전히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 감정이 사라질 때까지는 최소한 석유를 붓지 말겠다는 다짐은 몇십 번이고 할 필요가 있다. (그걸 제대로 못 했던 감정적인 난 솔직히 후회할 일들을 너무 많이 만들었던 것 같다.)


사실 이미 어른이 된 난 집에서 누가 이래라저래라 간섭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편이다. 그래서 가끔 같이 사는 남편이 매번 휴지통 방향에 대해서 지적해도 괜히 성질이 날 때가 있다. 아주 사소한 일들로 꼭 나를 비난하고 나를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는 거다. 그런 걸 돌아보면 아이들이 집에서 자주 듣는 부모의 잔소리도 그런 느낌일 거 같다. ‘옷은 옷장에 넣자’, ‘휴지는 쓰레기통에 버리자’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왜 맨날 옷을 벌려 놓는 거야’로 시작되는 비난형 의문문으로 말이 시작되면, 괜히 사소한 일로 자신을 힐난하는 것처럼 느껴질 거 같다. “도대체 내가 몇 번을 말해야 하니” 등의 말로 이미 자신이 잘못된 사람이라는 평가를 당한 후, 그 일을 기꺼이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물론 당연히 내가 해야 하는 일이지만 비난을 당하면 하려고 했던 일도 하기 싫은 게 사람 아닌가. 어른들도 그런데 청소년 아이들은 오죽 그럴까 싶다.


우린 습관과 반복에 의해 변하는 존재다. 교육이란 반복할 수 있는 마음을 먹는 것이고, 어떤 변화를 위해를 아마도 기분 좋게 반복이라는 걸 해볼 수 있을 거다. 부모 혹은 교사는 몇 번이나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마치 처음 그 일을 권유하는 사람처럼 새롭게 말하고 기다려 볼 수 있다. 심리학의 원리처럼 어떤 일을 했을 때의 기분 좋은 감정이 반복되다 보면, 아이들도 저절로 그 일을 습관처럼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지 않을까.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겠지만, 명령에 따라 했다고 생각하는 것과 내가 자발적으로 해서 도움이 된다고 느껴지는 내적인 효능은 차원이 다를 테니까.


솔직히 관계는 늘 어렵기만 하다. 아마 그 어려움의 많은 부분은 내가 타인의 마음과 생각을 더 많이 이해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해서 오는 것도 있을 것 같다. 섣불리 판단하지 않고, 답을 빨리 내버리지 말고, 잠잠히 누군가의 입장과 감정을 떠올려보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잠시 한 사람은 멈춰 설 수 있고, 그 멈춤이 상대방을 생각해볼 수 있는 작은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 같다. 아마도 내가 모르는 다른 이유가 있겠지. 급한 일이 있어 기분이 좋지 않았겠지… 순간에 매몰되지 않고, 덜 예민하고 자존감이 강한 부모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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