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늑대아이' 이야기
<늑대아이>는 애니메이션이지만 아이가 아닌 엄마들을 치유하는 영화다. 늑대인간이란 환상적인 소재를 선택하고 있지만 이 작품은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하나‘가 늑대인간과 사랑에 빠진 후, 홀로 아이 둘을 고군분투하며 키우는 일상과 감정들이 어떤 실사 영화보다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아이가 어릴 때는 밤 새 우는 아기를 달래다 낮에 틈만 나면 졸고 있거나, 아이가 흘린 음식을 자연스럽게 주워 먹는 ‘하나’의 육아생활이 기시감이 느껴질 정도로 영화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또, 아이가 학교에 갈 나이가 되면, 새로운 공동체를 경험하는 것만큼 각자의 고민들이 생기게 되고, 어느덧 서서히 부모가 모르는 비밀들이 많아지기 시작하는 미묘한 시절의 변화도 볼 수 있다. 이때쯤 되면 ‘유키’와 ‘아메’ 남매가 사람도 될 수 있고 늑대도 될 수 있다는 설정이 ‘하나’ 앞에 무거운 시험거리로 던져진다. 엄마 무릎에 기대 울던 아이는 어느새 누군가를 지켜줄 만큼 커버렸는데, ‘뭐가 됐든 아이가 하고 싶은 걸 선택하게 돕겠다.’ 던 다짐은 말처럼 선뜻 결심하기 어려워진다.
이렇게 <늑대아이>는 아가씨가 엄마가 되고, 한 아이가 독립된 존재로 성장해 가는 변화들을 마치 하늘의 구름 모양이 조금씩 움직이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그려내고 있다. 13년이란 꽤 오랜 세월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시간의 흐름을 창의적인 방법으로 표현하고 있어, 그 모든 일들이 영화 속 대사처럼 ‘동화 속 이야기처럼 한 순간이었다’고 회상하게 한다.
어찌 보면 양육은 영화 속에 나오는 감자농사를 닮았다. 비 오듯 땀을 쏟으며 땅을 갈아엎고 이랑을 넓게 파서 비옥한 땅을 만드는데 온 힘을 쏟지만, 막상 심은 후에는 물도 주지 말고 일단 내버려 두면 제 모양대로 자라는 것이다. 농사와 양육을 일단 책으로만 배웠던 ‘하나’는 직접 농사를 짓고 아이를 키워가면서 몸으로 부딪쳐야만 얻게 되는 지혜를 알게 된다.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너른 땅을 정성껏 일구는 것일 뿐, 그 후에는 자연스럽게 싹이 트고, 열매가 맺혀가는 모습을 지켜볼 뿐이라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자식이 부모를 떠나는 시기는 결국 오고야말고, ‘하나’는 폭우로 만물이 깨끗하게 씻겨버린 아침, 그것을 겸허히 받아들이게 된다. 한 사람을 최선을 다해 사랑한다는 것은 종국에는 그 사람을 웃으면서 보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 ‘하나’는 집안에 남아있던 가족의 흔적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갑자기 바람을 따라 먼 곳에서 들려오는 늑대 울음소리에 귀 기울이며 만족한 듯 미소 짓는다. 이 싱거운 마지막 장면은 크레딧 화면이 다 지나간 후에야 비로소 입체적인 감정으로 다가온다. 마치 ‘하나’가 사진첩을 보면서 지난 추억들을 회상하며 노래하는 것처럼 표현된 크레딧 장면에는 아이를 키우는 과정 속의 환희와 경이로움, 쓸쓸하고 숭고한 감정들이 압축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래서 음악이 끝나갈 쯤 잠시 암전된 후,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이젠 아무것도 없는 거니./ 언젠가 네가 여행을 떠날 땐/ 꼭 웃으며 보내주마.’ 라는 노래가사가 나올 땐, 결국 ‘하나’가 ‘저 멀리 산봉우리를 바라보는 것처럼’ 웃어주었을 어떤 장면이 떠올라서 마음이 먹먹해지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