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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팽이 Apr 28. 2021

지금 뛰고 자라는 모든것에 경배를

영화 <진짜로 일어날지 몰라 기적> 이야기

  아직 두 돌도 안 된 조카를 데리고 가끔 동네 산책을 나가곤 한다. 두발로 직립보행을 시작한지 이제 얼마 안 된 아이에게 세상 모든 것들은 마냥 신기하기만 하다. 작은 두발로 불안한 듯 발걸음을 내딛으면서도 연신 두 눈은 땅바닥에 흩어져 있는 것들을 향하고 있다. 잔디 사이에 피어있는 들풀, 길가에 떨어진 흔한 돌멩이, 나풀나풀 풀밭에 떠있는 나비, 날개를 펴고 땅으로 착지하는 비둘기..., 세상의 모든 몸짓과 형태들은 아기에게 신비로움 그 자체다. 아이의 눈 속에 떠오르는 경이로움은 어른들에게도 세상을 다시 바라볼 수 있는 틈을 열어준다. <진짜로 일어날지 몰라 기적>(이하 ‘기적’)에는 그렇게 아이들이 거리를 쉴 새 없이 뛰고, 천진한 표정으로 말하고 먹는 순간의 살아있는 리듬이 담겨져 있다. 이 영화는 부모의 이혼으로 따로 떨어져 살게 된 두 형제를 중심으로, 아이들의 시선에 담긴 세계와 일상을 보여준다. 영화가 시작하고 동생 류가 다코야키를 사러 거리를 뛰어가는 모습이 나오면, 감독이 말하고 싶었던 기적이 어쩌면 아이들의 통통 튀는 발자국과 표정 속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짐작해 보게 된다. 그만큼 <기적>에는 아이들이 카메라 앞에서 자유롭게 내뿜는 에너지 자체로 감동되는 지점이 있다.

영화 <진짜로 일어날지 몰라 기적> 스틸컷

영화 속에는 형 코이치가 수업시간에 시를 읽고 있는 장면이 나온다. 산다는 것/ 지금 살아있는 것/ 그것은 목이 마른 것/ 나무에 비치는 태양이 눈부시다는 것/ 문득 어떤 멜로디를 떠올리는 것/ 재채기를 하는 것/ 당신과 손을 잡는 것..., <기적>은 지금 살아있다는 것을 생생한 감각으로 포착하는 영화다. 이 시에 표현된 느낌처럼 가끔 삶이 행복하다고 느껴질 때는, 어떤 대단한 성공에 만족했을 때가 아니라 사소한 일상의 조각들 때문이다. 얼굴에 비치는 저녁햇빛 속에서 토마토 한입을 베어 물 때, 자전거로 달리는 내리막길 어디선가 아카시아향 바람이 불어올 때, 문득 더 바랄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 때가 생긴다. <기적>은 행복의 속성이 이렇게 과거도 미래도 아닌, 지금 이 순간 자신의 손에 닿을 수 있는 감촉과 감정의 충만함 같은 것이라는 것을 잘 아는 영화다. 아이들이 주인공인 이 작품에서 일상의 사물과 자연, 몸짓들은 새로운 눈높이로 스크린에 펼쳐진다. 운동장에는 잠자리가 날아다니고, 코스모스꽃에서 씨를 발견하고, 자판기 밑에서 동전을 찾아낸다. 아무 맛도 나지 않던 가루칸떡의 심심한 맛에 어느새 중독되어 가듯, <기적>의 소박한 이미지와 리듬 속에는 삶을 겸허하게 찬양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하지만 <기적>이 일상의 찬란함을 말하는데 그치지 않고, 성숙한 영화라고 느껴지는 것은 지금 살아있다는 것이 가진 내 몫의 책임과 한계까지도 받아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코이치가 화산재가 떨어진 방안을 닦는 모습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화산재처럼 불편하고 거추장스러워 보이는 것들을 통해 삶이 지탱되는 묘한 진실을 보여준다. 도대체 화산재가 날리는 곳에서 왜 사는지 모르겠다고 불평하는 손주에게 할아버지는 ‘분화는 아직 산이 살아있다는 증거지. 살아있으니까 가끔 에너지를 발산해야지’ 라고 답한다. 고레에다의 영화는 지금 살아있기 때문에 상처받고 버림받아 버거울 수 있는 삶의 뒷모습까지 지그시 지켜봐 준다. 살아있다는 것은 현실에서 부딪히는 아픔과 고통까지도 동시에 끌어안고 존재하는 것을 말한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기적>의 아이들은 천진하지만 성숙하다. 아버지와 사는 류는 혼자 저녁 식사를 챙겨 먹고, 학교 갈 준비를 하면서도 마당에서 야채까지 키울 정도로 활력 있게 살아가고, 엄마와 함께 사는 코이치는 스스로 여행경비를 모으고, 할아버지가 만든 떡을 은근히 칭찬할 정도로 배려 깊다. 여행 중에 우연히 묵게 된 집 마당에서 형제가 앉아 이야기하는 장면은 그들의 뒷모습을 비추면서 시작한다. 아이들은 어느덧 과자 부스러기를 서로에게 양보할 만큼, 아빠와 할아버지가 만든 작품을 이해할 만큼, 믿음직스럽게 엄마 아빠를 부탁할 만큼 커버렸다. ‘쓸모없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하지만, 세상에는 쓸모없는 것만 있으면 안 된다’는 것도 알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의 작고 단단하게 오므라진 등은 어느새 삶에 내려앉은 근심까지 넉넉히 버텨내고 있다. 


영화에서 기찻길을 찾아 걸어 다니던 류는 친구들에게 여러 가지 생태지식을 전해준다. 가재와 미꾸라지는 오히려 더러운 물에서 더 잘 자란다거나, 열매가 맺히는데 밤은 3년, 감은 8년이나 걸린다는 말도 한다. 아이들은 부모도 알지 못하는 어떤 시간들 속에서 스스로 성장한다. 깨끗한 물은 아니지만, 미꾸라지처럼 더러운 물에서 더 잘 자라게 될 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형제는 각자에게 어울리는 곳에서 각자의 시간을 살아간다. 어떤 곳에서건 무엇이 되었든 배울 것이고, 계절을 따라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기적’은 작은 씨앗에서 마법처럼 싹이 나고, 열매가 맺히는 것처럼, 어떤 환경에서건 키가 자라고 생각이 깊어져가는 아이들 그 자체의 모습이다. 

영화 <진짜로 일어날지 몰라 기적> 스틸컷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에서 아이들은 어른들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어른들이 나이만 먹었지 타인을 책임질 만큼 철들지 않았다면, 아이들은 오히려 부모를 걱정하고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 충실하게 하루를 꾸려나가곤 했다. 부모님이 이혼하고, 아버지는 빠칭코에 빠져있어도 고레에다의 아이들은 남은 일과를 추스른다. 지친 일상 속에서 어른들이 순식간에 반짝하고 지나가는 행복을 마주칠 수 있었던 이유 또한 굳건히 현재에 뿌리 박혀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집에 돌아온 류가 아빠의 공연밴드가 방송출연을 할 거라는 소식을 듣고, ‘다 내 덕분이야’ 라고 말하는 순간, 웃음이 나오지만, 어쩐지 그 말 속에서 유머로 흘러들을 수 없는 진실을 발견하게 된다. 어쩌면 어른들은 아이들의 존재 자체로 삶에 빚을 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코이치가 화산재가 뿌옇게 쌓인 방안을 닦는 모습으로 시작하는 <기적>은 그가 베란다에서 할아버지처럼 손가락을 올리고 화산재를 가름하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아마 이 영화를 보고 당신의 화산재를 가장 먼저 발견하고, 가장 먼저 닦아주었던 사람이 아이들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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