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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팽이 May 03. 2021

오래 일할 수 있을까

친구와 나눴던 프리랜서 창작자에 대한 고민

오래된 친구와 오랜만에 번개 만남을 가졌다. 우린 사는 곳도 다르고, 지금 키우는 아이들 나이대도 다르지만, 늘 그렇듯 어제 만난 사이처럼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신나게 나눴고, 종국에는 여성 프리랜서로 느끼는 비슷한 고민을 공유했다. 일을 할 수 있고, 재능도 있는 것 같은데, 불규칙한 프리랜서의 수입과 일거리를 생각하며 앞으로 어떤 기반에서 윤여정 선생님처럼 일을 오래 지속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대학생 때 난 가능하다면 한량처럼 사는 것이 꿈이었던 것 같은데, 지금의 나는 오래 일하고 싶다. 계속 일을 하며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고, 그 일로 내 삶을 잘 꾸려나가며 인정도 받고 싶다. 경제적인 보상이 전부는 아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적절한 경제적인 보상이 주어지는 일을 하며 나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잘 돌볼 수 있다는 자신감도 갖고 싶다. 좋은 일은 나 자신을 성장시킨다. 일하는 과정을 통해 내 안에서 화학반응이 일어나고, 새로운 것들을 만나고, 새로운 것들 앞에 놓여있던 내 편견을 깨부수기도 한다. 그건 나 혼자만의 세상에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친구와 사람들 앞에 자신을 멋지게 포장하기 어려워하는 성격에 대해서 생각해봤고, 학위가 없으면 인정받지 못하는 나라에서 시간과 돈을 들여 학위를 따는 게 맞는 것인지, 더 많은 커리어와 포트폴리오 쌓는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인지 고민했다. 더 적극적으로 돌아다니며 영업을 해야 할지, 어떻게 네트워크를 쌓으며 연결될 수 있을지 등 실제적인 방법들을 점검해봤다. 내 일에 관한 이런 실질적인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게 감사했다.


마침 요즘 수입이 부실해져서 약간 의기소침한 상태로 ‘지금 이렇게 사는게 너무 뜬구름 잡는 일인가?’ 내 안에 의문이 솟아올랐는데, 친구와 얘기를 하면서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 싶어 얼싸안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생각해보니, 그게 아직 제대로 명성을 얻지 못한 모든 창작 프리랜서가 겪는 괴로움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길을 계속 가야 하는 게 맞는 것인지, 좀 더 안정적인 수입을 얻을 수 있는 다른 길을 찾아야 하는지, 아마 입금내역이 찍히지 않는 통장을 보며 계속 생각하게 될 것 같다. 


한국무용을 전공하는 아이한테는 돈은 걱정하지 말라고, 엄마가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호기롭게 말했지만, 일거리가 뚝 떨어지는 달이 생기면 내가 인생을 너무 모른 채 우격다짐으로 사는 건가 싶을 때도 있다. 

그래도 앞으로 한 2년 정도만 어떻게든 잘 버텨내면 나아질 수 있겠지. 어쩌면 이렇게 용감하게,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처 덜 받고 지금까지 잘 버텨온 것만 해도 나로서는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딱 나에게 주어지는 만나를 받으며 생명을 유지할 수 있던 것처럼, 그래도 다행히 우리 가족에게도 신기하게도 그런 ‘만나’들이 때마다 주어졌고 가족들과 산책을 하고 웃을 수 있는 행복의 조각들도 덤으로 얻을 수 있었네. 참 감사한 일이야. 


솔직히 딱히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두렵지만 어쩔 수 없지. 계속 내 앞에 나타난 좁은 길을 걷고, 문을 두드려볼 거야. 때론 삶의 중력이 너무 크게 느껴질 때도 있을 거고, 수많은 질문 앞에서 한마디 대답할 기력조차 남아있지 않을 때도 있을 거 같아. 그래도 걸어봐야지. 지레 겁먹고 포기하는 것보다, 뭔가 성실하게 시도해 보고 저 끝에 뭐가 있는지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싶어. 인생이 짧지만 이제 고작 반 정도밖에 안 왔어. 좋은 사람들을 계속 만나게 될 거 같아. 혹여 일이 실패한다고 해도, 그 사람들과 함께 계속 행복한 꿈을 꿀 수 있다면 삶은 이미 그걸로 충분히 완벽한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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