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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팽이 May 05. 2021

노인의 마음으로 사는 소년의 시간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이야기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이하 ‘밴자민 버튼’)는 강가에 앉아서 지는 해를 바라보는 노인의시선을 담은 영화다. 태어나자마자 80세 노인의 몸을 입고 양로원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벤자민(브래드 피트)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어려지지만 노인의 마음으로 인생을 살아간다. 사랑이 이루어지는 순간에도 경박하게 기뻐하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에도 유별나게 아파하지 않는다. 탄생보다 죽음을 먼저 경험하고, 만남보다 헤어짐이 더 자연스러운 벤자민의 시선에 비친 세상은 그렇게 담담히 흘러간다.


앞을 보지 못하는 게토는 전쟁에서 죽은 아들을 그리워하며, 거꾸로 가는 시계를 만든다. 시간을 다시 되돌려서라도 아들이 살아 돌아와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는 평범한 삶을 지켜보고 싶었던 아버지는 끝끝내 그렇게 세상과 화해하지 못한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게토가 만든 시계 때문에 거꾸로 가는 인생을 살게 된 벤자민은 그 어느 누구보다도 편안하게 삶의 순리를 받아들인다.

벤자민의 몸의 시계는 거꾸로 가지만, 그의 인생 시계는 여느 사람들의 것과 다르지 않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세상 밖을 갈망하기도 하고, 첫사랑에 빠져 설레기도 하며, 집을 떠나 제 손으로 일해 먹고사는 법도 알게 된다. 각자의 길이 다를 뿐 결국 모든 사람의 끝은 똑같다는 퀴니의 대사처럼 벤자민의 시간도 그렇게 끝을 향해 달려갈 뿐이다. 노인의 몸을 입고 태어난 아이는 인생에 대한 과도한 기대도, 쓸데없는 비관도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살아가는 법을 안다. 만남이 예상치 못한 축복이듯 이별도 어쩔 수 없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고, 사람이 살면서 벼락을 맞는 것처럼 진기한 사건들까지도 얼마든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란 걸 배운다.


<벤자민 버튼>에서 두번씩이나 똑같이 나오는 “결국 끝이 다가오면 그냥 가게 놔둬야한다” 는 대사는 이 영화의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설명해 준다. 강가가 보이는 벤치에 앉아 떠오르는 해를 무심히 바라보고 있는 장면이나, 게토의 시계가 보관된 창고에 물이 들어오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이런 메시지를 감성적, 이성적으로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임의로 거꾸로 가는 시계를 만들 수는 있지만, 차오르는 물을 피할 수 없듯이 죽음이라는 자연의 순리는 아무도 거스를 수 없는 것이다. 그저 새벽녘 강가를 비추는 햇살의 아름다움을 지켜보며, 그 순간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것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사랑이야기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실제로 <벤자민 버튼>은 남들과는 조금 다른 인생을 사는 한 남자의 삶을 관조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영화다. 그래서 케이트 블랑쉐가 연기하는 첫사랑 데이지는 벤자민의 삶에서 강가 벤치에서 바라보는 떠오르는 해 같은 의미를 지닌다. 인생에 단 한번 가장 빛나던 순간, 마음에 담아두고 사는 게 지칠 때면 간절히 그리워지는 곳.


벤자민과 데이지와의 관계가 본격적으로 진전되는 때는 영화가 이미 3분의 2쯤 지난 시점이다. 둘은 나이든 벤자민이 점점 젊어져 빛나던 때, 승승장구 하던 데이지가 실패를 경험하고 낮아졌을 때 비로소 중간쯤에서 만나 섬광처럼 아름다운 사랑을 나눈다. 둘의 시간이 만나 사랑할 순간에 벤자민은 뒤를 돌아보지도 미래를 염려하지도 않고, 그저 그 순간이 전부인 것처럼 완벽히 삶을 즐긴다. 우리가 무언가를 선택하고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은 어쩌면 그때가 전부인지도 모른다. 돌아보면 후회로 남을 수많은 변수들이 있겠지만, 순간과 순간이 만나 누군가를 사랑하고, 아름다움을 만끽할 시간은 아마 결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데이지가 교통사고를 당하는 장면을 묘사할 때처럼, 어떤 사건이 일어난 후 우리는 수많은 ‘만약에’를 생각해 본다. 하지만 그 사소한 불운의 씨줄과 날줄이 얽혀 지금 이 순간, 일상의 기막힌 타이밍을 만들어 낸다.


벤자민과 데이지가 같은 연령대에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간다. 시간이 흐를수록 벤자민은 점점 어려지고, 데이지는 점점 늙어간다. 영화 속 대사처럼 오는 것이 있다면 가는 것이 있다. 그리고 얻은 것이 있다면, 분명 잃은 것도 있을 것이다. 벤자민은 아마 본능처럼 행복이라 믿는 현재가 결코 영원하지 않음을 알았을 것이다.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이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가슴에 담아두고, 때가 되면 그것을 놓아줘야 하는 것임을 담담히 받아들인다.

젊은 벤자민과 매혹적인 데이지가 사랑하는 시간은 눈부시게 아름답다. 하지만 이 영화가 말하고 있는 것은 그렇게 소중한 순간까지도 기꺼이 놓아주고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갈 수 있는 용기이다. 그리고 그 뒷모습이 처량하거나 슬프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브래드 피트가 표현한 벤자민의 독특한 이미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젊은 육체에 깃든 노인의 눈빛을 통해 생을 마치 예습하듯 살아가는 사람에게서나 보이는 가벼움이 그에게선 느껴진다.

결국 시계를 거꾸로 돌려서 <벤자민 버튼>이 찬양하는 것은 노인의 얼굴이다. 무겁고 지친 어른의 얼굴이 아니라, 주름진 얼굴에서 빛나는 소년의 눈빛과 아기얼굴에 깃든 노인의 평화로움이다. 그렇게 아이와 노인의 얼굴이 겹치듯 삶과 죽음도 서로 맞닿아 있다. 지친 달음박질 끝에, 비로소 작은 벌새의 무한대 날갯짓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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