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좋아하는 사람의 말은 듣고 싶다
점심때 밥을 먹다가 아들과 스마트폰 사용 문제로 말다툼을 했다. 원래 식사할 때는 유튜브를 보지 말자는 게 내 원칙이었지만, 요즘 사춘기 아들 기분을 봐가면서 조절을 하고 있었다. 식탁에서 밥 먹다가 아들 기분이 엉망이 되는 게 싫어서 가끔 내버려 둘 때도 있었는데, 하필 오늘은 딱 그런 날 남편이 같이 있었고, 식사 시간은 기분이 엉망인 채로 끝났다.
뭐 이런 일은 사춘기 아이들을 키우는 집에서 흔하게 벌어지는 일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가족들과 식사할 때 에어팟 꽂고 유튜브 보는 행동이 좋은 건 아니지만, 일단 밥을 다 먹고 차분하게 이야기해도 됐을 것 같다. 꼭 가족들과 밥 먹는 시간을 나쁜 기억으로 만들지 않아도 됐을 것 같다. 조금 기분이 좋을 때 차분하게 말해도 좋았을 텐데… 여러 생각이 든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나와 남편이 하는 큰 실수를 생각해보니, 문제를 확대 해석하는 거였다. 밥 먹을 때까지 스마트폰 한다고 굳이 아이를 심각한 중독이라고 몰아세우지 않아도 됐을 텐데. 아무리 성격이 온순한 아이도 사춘기는 사춘기이고, 아이는 역시 아이인데, 논리적이지 않다고,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뭐가 크게 잘못된 사람처럼 말하는 거 정말 좋은 방법이 아니다.
나도 물론 지금 온갖 시행착오를 겪으며 하루살이처럼 살아가고 있지만, 요즘 들어 크게 드는 생각은 원칙보다는 관계를 지키겠다는 마음이다.
청소년기 아이들은 진짜 아동기 때 아이들과 사고 구조 자체가 다르게 작동되는 게 느껴질 때가 있다. 부모들은 바쁘게 사느냐고 자식들이 어느새 커버린 걸 인지하지 못하고, 어린아이 때처럼 사춘기 애들을 대하다가 호되게 데이기도 한다. 원칙을 끝까지 지키는 게 통하고 중요한 나이는 딱 사춘기 전까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부모들은 예전에 하던 대로 원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서 아이들이 크게 잘못될 거라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큰 우여곡절 끝에 원칙을 지켰다 해도 관계가 망가져 버리는 것만큼 무서운 피해는 없다. 사실 감정이 흥분 상태에 있을 때는 굳이 사춘기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다른 사람 이야기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특히 감정을 상하게 했던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 사람은 거의 없을 거다.
원칙은 아이들 기분이 좋을 때, 따로 시간을 잡고 협상을 통해 정해야 하는 게 효과적인 것 같다. 아이도 자신의 의견을 보탤 수 있어야 하고, 부모는 다양한 방법으로 설득하는 노력을 하되, 적정한 지점에서는 양보도 할 수 있어야 하는 것 같다. 아이를 키우는 건, 시합도 아니고 100분 토론도 아니다. 이긴 게 이긴 게 아니다.
서로 화가 난 상태에서는 온갖 협박을 동원해도 아무 성과가 나지 않는다는 걸 몇십 번의 경험을 통해 보게 된다. 아무리 사춘기 아이가 비논리적인 말꼬리 잡기로 우겨도 어쩌겠는가. 키는 나보다 커버렸어도 이 녀석은 아직 성인보다는 아이에 가깝다. 속이 터지지만 내 속만 터질 뿐이고, 사춘기 아이의 논리를 갖고 계속 왈가왈부해도 아무 이득이 없다. 괜히 마음만 상하고, 관계만 나빠질 뿐이다. 특히 부모와 자식 간 관계에서 칼로 물 베는 싸움은 거의 없는 거 같다. 어떤 식으로든 상처가 남고, 관계를 원 상태로 되돌리기 위해서는 진짜 큰 노력이 필요하다.
사춘기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의 목표는 참 소박하면 좋을 것 같다. 최대한 아이들과의 관계를 망가뜨리지 않기. 원칙을 지키지 않아도 아이 존재 자체가 잘못된 것처럼 말하지 않기. 기분이 안 좋을 때는 너무 많은 충고와 잔소리하지 않기. 진짜 속이 터지고 답답하면 그냥 밖에 나가서 30분만 걷고 오기.
사실 원칙이 지금 무너지는 것 같아 큰일 난 것처럼 보여도, 아이들과의 관계만 유지한다면 그 원칙은 언제든 다시 지켜진다.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의 말을 듣고 싶어 하니까. 억지로 무력으로 아이들이 내 말을 듣고 원칙대로 했다고 성취감을 느끼면 안 된다. 지금 당장은 부모 말을 어쩔 수 없이 듣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아이가 너무 마음이 상해서 부모와 더는 친밀한 관계를 원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실패한 것이다.
어쩌면 아이들은 부모가 생각하는 것보다 늘 더 괜찮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부모가 아이들을 편견 어린 시각으로 어떤 어떤 사람이라고 쉽게 단정을 짓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늘 부모가 자신에게서 보고 있고 기대하는 사람이 되고 싶을 거다.
아마 밖으로 말은 그렇게 울퉁불퉁하게 했지만, 아이들 자신이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겠지. 스마트폰이나 게임을 너무 많이 해서 현타가 오고, 이렇게 긴 시간을 버리면 안 되겠다는 걸. 괜히 공부를 안 하고 있는데도 정작 불안한 건 자기 자신이라는 걸.
누구보다 자기 삶을 더 걱정하고 고민하는 사람은 아이들이고, 사실 그래야 한다. 아이 대신 부모가 너무 많은 염려와 불안을 드러내고 있을 때, 아이들은 자신이 자기 삶의 주인이란 사실도 잊어버리게 되지 않을까. 혹시 자기 미래와 진로, 시간까지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리게 되지 않을까.
아이들이 같이 있을 때 기분 좋아지는 사람이, 말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부모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