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헨 형제의 '로나의 침묵' 이야기
영화 보는 내내 아무 생각이 없었다. 영화를 보는 중간에도, 다 끝나고도 정말 멍한 채로 별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벨기에 국적을 취득하려고 위장 결혼한 알바니안 여자의 일상을 따라가는 카메라는 쉽게 어떤 감정이입도 허락하지 않고, 어디로 흘러갈지 예상할 수 없는 곳에서 이야기를 끝맺었다. 느닷없이 화면이 암전되고 단순한 피아노 음악으로 크래딧 자막이 올라 갈 때도 의문부호들은 없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한 참이 지나, 혼자 걷거나 빈방에 혼자 앉아있을 때, 문득 그 여자가 떠올랐다. 어떤 표정도 남겨두지 않고 옷깃을 여미듯 마음을 여미던 로나가 언뜻 흔들리던 순간이 생각났다. 어떤 영화들은 극장에 있던 순간이 아니라, 그 이후의 순간부터 일상을 지배한다. 그리고 긴 여진을 마음에 남긴다. <로나의 침묵>이 하는 이야기는 그렇게 관객들의 긴 삶속에 들어와 말을 건다.
<로나의 침묵>은 현대 가장 윤리적인 영화를 만든다는 다르헨 형제의 영화라는 전후 맥락 없이 봤을 때도 어쩐지 이상하다. 주인공은 일찌감치 죽고, 중요 사건은 아예 생략되고, 기대했던 이야기들은 슬며시 사라져 버린다. 드디어 벨기에 국적을 취득하게 된 로나(아르타 도브로시)는 약물중독자인 클로이(제레미 레니에)와 이혼하고, 다시 러시아인과 위장결혼해서 한 몫 단단히 챙기려고 한다. 그런데 자꾸 클로이가 마약 끊는 걸 도와달라며 엉겨 붙기 시작한다. 로나와 클로이의 관계가 밝아질 듯한 기대를 품게 될 즈음, 바로 다음 장면에서 로나는 죽은 클로이의 옷가지들을 챙기고 있다. 무표정하게 클로이의 옷을 고르는 로나의 얼굴을 보면서도 관객들은 그게 무얼 뜻하는지 전혀 알 수 없다. 다음 장면에서 장례비용은 이미 다 계산됐다는 대사를 듣고서야, 로나가 클로이의 영정복을 고르고 있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는 것이다.
다르헨 형제는 사건의 충격이 아니라, 그 이후 남겨진 사람의 일상의 궤적을 따라다닌다. 고통스러운 일이 생겼을 때 사람들은 막상 그 순간에는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다, 일이 다 정리되고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사건의 여진이 서서히 자신을 흔드는 것을 목격한다. 클로이의 죽음에 얼마든지 면죄부를 받을 수 있었던 로나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한 죄책감에 시달린다. 고통 자체를 아예 보지 않게 되면서 피할 수 있었던 책임감에서 관객 또한 온전히 자유롭지는 못하다. 영화를 계속 보면서 느끼게 되는 뭔가 석연치 않은 느낌은 여기서 기인한다. 다르헨 형제가 요구하는 윤리는 감각에 호소한 즉각적인 반응이 아니라, 끈질기게 우리 삶까지 따라붙어 침잠하게 만드는 것이다.
클로이는 영화 시작부터 계속 로나를 귀잖게 한다. 로나는 자신의 카페를 갖겠다는 꿈이 있고, 이제 그 목표가 눈앞에 와있다. 클로이와 제대로 헤어지기만 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로나의 철벽같은 가면 사이로 이미, 마음 깊이 연민이 스며들어 버렸다. 그 순간 로나는 더 이상 자본주의 사회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인간이 돼 버린 지도 모르겠다. 어디로 가야하는지 정확하게 알던 로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할지 알 지 못한다. 그러나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해졌다. 뱃속의 아이를 지키기 위해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는 것. 잠 잘 곳을 구하고, 먹을 걸 찾아야 하는 이유가 너무나 분명해 졌다는 거다.
로나가 그토록 보호하려는 뱃속의 클로이의 아이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끈질기게 도움을 요청하던 클로이를 외면하던 로나는 이제 상상의 아이까지 만들어 내어 그를 보호하려 한다. 그리고 살려고 한다. 작은 집과 불쑤시개만 있으면 족하다. 어둠을 몰아낼 아주 작은 희망으로 충분하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이 고단한 삶을 버텨낼 수 있을까. 그토록 바라고 기다리던 꿈 때문에? 혹은 어딘가에는 존재할 유토피아를 바라면서? 마음을 다잡고 바위처럼 걷던 로나는 그 꿈을 눈앞에 두고, 연민 때문에 흔들린다. 이것이 더 실존적이고 절박한 진리이다. 우리는 꿈 때문에 살 수 없다. 내 앞에서 간절히, 내가 필요하다고 외치는 그 사람 때문에 살 수 있다. 내 뒷덜미를 잡고, 차마 그냥 두고 갈 수 없게 만드는 그 사람 때문에 몸부림치면서라도 살게 되는 것이다. 살과 살을 부대끼면서 내가 상처받듯 당신도 똑같이 상처받은 몸으로 버틴다는 걸 알게 될 때 사는 게 그토록 절실해진다.
클이가 애써서 끊었던 마약을 다시 시작하려고 할 때, 로나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그저 빈 몸뚱이로 클로이를 껴안고 있는 게 그녀가 할 수 있는 전부다. 그렇게 살과 살이 만나는 순간, 나와 너의 경계는 희미해지고 위로하는 사람과 위로받는 사람도 구분할 수 없게 된다. 그냥 서로의 몸에 기대어 같은 시간을 견뎌내는 육체만이 존재한다. 그 초라한 살과 살이 만나 서로를 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