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카인드 리와인드>를 보고
낡은 파란색 건물이 보이는 오래된 거리. 아이들은 그곳에서 총싸움을 하고, 젊은이들은 춤을 추고, 노인들은 오며 가며 만나는 사람들과 어울려 담소를 나눈다. <비카인드 리와인드>는 그 거리에 대한 영화다. 한 공간에서 같은 추억을 공유하던 공동체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거리에는 한 비디오 대여점이 있다. 간간이 주인과 종업원을 잘 아는 동네 주민들이 드나드는 곳. <비카인드 리와인드>는 이 비디오 대여점의 이름이다. 어느 날 주인이 일주일간 자리를 비우게 되면서 점원 마이크(모스 데프)가 가게를 책임지게 된다. 그런데 사고로 전기에 감전된 친구 제리(잭 블랙)가 자성을 갖게 된 몸으로 가게에 들어오면서 비디오가 몽땅 지워지는 사건이 벌어진다.
마이크와 제리는 이 일을 어떻게든 수습해 보려고, 결국 자신들이 직접 카메라를 들고 지워져버린 영화들을 조악하게 찍기 시작한다. ‘고스트 버스트’, ‘러시아워2’ ‘로보캅’ 등 애들 장난처럼 허술하게 만든 영화들은 의외로 동네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게 되고, 급기야 물량이 딸리게 되자 주인공들은 주민들과 함께 영화를 만들어 간다. 사실 말도 안 되는 플롯을 통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날로그 사회에 대한 향수이다. <비카인드 리와인드>는 디지털 시대 속에서 익명화되고 파편화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들려주는 마치 마법과도 같은 우화이다.
마지막 장면, 마을사람들이 직접 만든 다큐영화를 함께 보면서 사람들은 같이 웃고 떠들며, 그들만이 느끼는 어떠한 정서를 공유한다. 이 장면은 <시네마 천국> 등 이전 영화들에서 숱하게 많이 쓰인 연출임에도 불구하고, 개인화된 삶에 너무나 익숙해 저버린 우리에게 무언가 뭉클한 감정을 안겨준다.
서로 얼굴을 아는 가까운 동네 사람들이 직접 영화를 만들어 그것을 함께 본다는 것은 꿈같은 상상이다. 여기에는 미셀 공드리 감독 자신이 꿈꾸는, 어떤 소박한 작은 공동체를 그리는 애정 어린 마음이 숨어있다. 아이부터 노인까지 서로 얼굴을 알고 인사하는 작은 공간. 그곳에는 그들만이 아는 역사가 있고, 사람들은 그들이 숨 쉬는 공간의 이야기를 기억한다. 그리고 구성원들이 직접 그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다. 그들이 사는 곳을 의미 있게 만들어 주는 이야기는 현재에 되살아나고, 울고 웃으며 그것을 같이 공유한다.
21세기, 얼굴과 얼굴을 마주보며 자신이 살고 있는 장소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추억하는 공동체는 이미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살아남는 것 자체도 버겁기 만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것을 추억하는 것이 도대체 지금 이 순간 무슨 의미가 있냐고 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비카인드 리와인드>의 작은 공동체가 주는 뭉클한 감동은 지금도 경쟁하기 위해 아등바등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잊고 있던 뭔가를 기억나게 한다. 이제는 기억조차 가물거리지만 가까운 거리에 살며 가끔은 함께 밥을 먹기도 하고, 하등 쓸데없는 일로 시간을 보내면서도 신나하던 동네 친구들과 어울리던 그 골목 어귀. 그 안에 인간이 원초적으로 소망하는,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의 이야기를 공유하며 사소한 것들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소박한 공동체에 대한 기억이 숨어있다. 그 단순한 삶에서, 어쩌면 숨 가쁘게 돌아가는 현실의 조건을 넘어 지금 이 순간을 향유할 수 있는 행복의 비밀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덧붙이자면, <비카인드 리와인드>는 여러 가지 재미와 미덕을 지닌 영화이다. 순박한 눈으로 세상을 한없이 착하게 바라보는 모스 데프의 연기와 상황이 말이 안 될수록 더 큰 웃음을 주는 잭 블랙의 연기가 은근히 어울린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70, 80년대 영화들이 은박지와 폐품들로 이루어진 특수효과로 어설프게 리메이크 되는 걸 지켜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