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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팽이 Jun 11. 2021

사랑이라는 3분의 환상

영화 '우리도 사랑일까'의 순간

영화 '우리도 사랑일까'를 아무 생각 없이 보다가 깜짝 놀랐다. 잘 만든 사랑 얘기일 거라 생각했는데, 삶에 대해, 환상에 대해, 욕망에 대해 리얼하게 깊게 들어간다. 마지막쯤에 가면, 영화가 설마 거기까지 나갈 줄이야, 하고 다시 번쩍 놀라게 된다. 

지나치듯 편하게 흘러나오는 대사까지도 주제의 핵심을 슬쩍 찌르며 지나가고, 감각적이고 섬세한 연출로 흔한 이야기에 특별한 질감과 분위기를 부여하고 있다.      


영화 시작부터 미셸 윌리암스의 흔들리고 떨리는 눈빛에 감정이입 되어, 너무 심하게 집중하고 보면, 갑자기 급 피곤해지는 지경까지 온다. 영화 내내 미셸의 연기가 살아서 움직이듯 손에 잡힐 듯이 떨리고, 미묘하게 변화해서 내내 흥미로웠다. 그녀가 흔히 있을 법한 상황 속에서 처음 관찰하는 것만 같은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정말 영화 속 마고가 설레고, 불안하고, 사랑하는 감정들이 내가 알던 어떤 맥락 속에 같이 떨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사실 이 영화 속에서 마고가 입는 옷 색깔과 배치들도 넘 사랑스럽다. 영화 끝나고도 그 초록색 스니커즈와 빨간색 샌들이 아른거릴정도 )      

영화 '우리도 사랑일까' 스틸컷 사진

영화 초반에 마고가 남자에게 고백했던 것처럼, 영화 전체를 지배하는 정서는 뭔가 삶에 삐걱거리는 불안이다. (영화 내내 그런 느낌들이 긴 단음의 기계음들로 깔리며 긴장감을 준다) 마고는 어떤 남자와 함께 있을 때도, 뭔가 채워지지 않는 어색함으로 공기에 이물질처럼 섞여서 그 자리에서 계속 진동하며  떤다. 그녀가 가장 안정적으로 보이는 유일한 순간은 놀이기구에 몸을 맡기며, 조명 불빛들에 둘러싸여 눈을 감고 그저 흔들릴 때다.      


'사랑해'라는 말에 둘러싸여, 끝없이 그게 아니면 도저히 안 될 것 같은 사랑을 갈구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토록 갖고 싶었던 것을 손에 넣는 순간, 그 욕망은 지극히 평범한 것으로 변색한다. 

결국 우리가 애써 유지시킬 수 있는 사랑이란 서로를 둘러싼 소리조차 다른 공간에서, 유리 창문을 사이에 두고, 손가락을 맞대고 입을 맞대며, 가깝지만 닿을 수 없는 거리를 유지하며 만나는 것이 전부일지도 모르겠다.      

모든 새로운 것들이 결국 낡은 것이 될 테지만, 그 사랑을 높은 곳에서 바라보며, 그렇게 쉽게 환상이라고 치부해 버릴 수도 없다. 설레며 간절히 욕망하던 그 순간만큼은 그게 죽을 만큼 아픈 이별이고, 절망이고, 평생 후회할 것만 같은 실수였을 테니까. 어떤 상실감에 가슴에 횅하니 이미 구멍이 뚫려 버렸을 테니까.        

환상을 실재에 닿게 하려는 시도는 도돌이표를 돌아 다시 처음으로 모든 것들을 되돌려 놓고 만다. 모든 것을 바꾸어 놓을 것만 같은 일들은 다시 아무것도 아닌 시큰둥한 일상 속에 들어와 똑같은 노동이 된다.


때론 환상은 환상으로 남아있을 때, 온전히 그 '아름다움'을 유지한다.      

당장 내일이 아니라, '30년 후 같은 날 2시'의 약속으로 남아있을 때, 비밀은 환상을 덧입어 삶을 채색해주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30년 후의 약속이 기우뚱하게나마 삶을 지탱하는 것이 나았을까, 환상의 틈이 계속 벌어지는 순간들을 지켜보면서 다시 쌓고 부수는 일들을 반복하는 게 나았던 걸까.      

혹은, 이미 그것은 내 손을 떠나있었던 걸까.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 쉽게 벌어지는 일이 아니듯, 어쩌면 그 선택도 결코 나의 것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친다. 


그 모든 소동도 결국 딱 3분의 왈츠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 삶을 지탱하는 것은, 오히려 매일 하루도 빼먹지 않고 하게 되는 장기적인 장난과 권태로운 괴롭힘 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3분의 왈츠와 50년의 성실한 장난 사이에서 평생 흔들릴 수밖에 없는 것이 삶일까.

그게 시간 속에서 우리가 나눌 수 있는 사랑의 한계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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