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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팽이 Mar 22. 2022

중력을 거스르는 청춘에 경의를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보다가 밤에 든 생각

밤에 잠을 자고 있는데, 갑자기 ‘스물다섯 스물하나’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수돗가에서 거꾸로 솟는 물, 백이진이 나희도를 좋아하는 이유...

이 드라마는 중력을 거스르는 청춘의 시절에 대한 이야기구나. 


희도는 온몸으로 중력을 거스르는 아이다. 수돗물을 거꾸로 틀며 행복하다고 말하는 아이, 앞으로 행복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이진에게 몰래 행복해지자고 말하는 아이. 칼을 하늘 높이 들어 사과를 찌르고, 어른들이 상실을 표현하던 국화꽃을 하늘 높이 던지는 아이다. 희도는 늘 하늘로 뭔가를 던지고, 땅으로 떨어지는 것들을 받아낸다. 

폴짝폴짝 뛰는 걸음걸이처럼 가벼운 소녀다. 어떤 상황에서도 무겁지 않다. 아무리 아픈 비극이나 외로움도 희극으로 바꿀 수 있는 아이다. 비극도 멀리서 보면 희극이니까. 가볍게 시대의 어둠을 건너 중력을 이겨보려 한다. 좋아하는 것으로 중력을 이겨 창공에 닿으려고 뛴다.


시대의 중력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간신히 살아내는 이진에게 중력을 거스르며 살아가는 희도는 뭔가를 자꾸 기대하는 되게 존재다. 

모든 것이 변해도 중력은 변하지 않는다고 말하던 이진이였다. 중력의 힘을 알고 있지만, 그 중력을 거슬러 꿈을 꾸겠다고 말하는 희도가 이진에게는 아마도 꿈 같은 존재였을까. 이진은 나사에 들어가는 것을 꿈꾸던 사람이었으니까. 그래서 작은 로켓 같은 희도를 옆에서 지켜보며 이진도 중력을 거슬러 시대를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을 자기 안에서 찾게 되지 않았을까.      


이 드라마는 시대의 중력이 짓누르는 상황에서 중력을 거슬러 살아가는 청춘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청춘의 성질은 그런거니까. 좋아하는 것을 향해, 동경하는 것을 향해, 옳다고 생각되는 것을 향해, 중력을 거슬러 볼 수 있는 무모함을 가진 나이니까. 이 순간이 영원할 것 같다고 생각하는 시기, 이 여름의 주인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은 시절이니까. 실패조차 계단으로 만들 수 있는 시기니까. 


그러나 이진의 말처럼 중력은 결코 변하지 않는 힘이다. 어느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중력은 육체를 짓누른다. 중년이 된 희도의 말처럼 영원한 것은 없고 모든 것은 흘러가 버릴 것이다. 그럼에도 청춘은 중력을 버텨보려 한다. 온몸을 누르는 중력에도 부러질지언정 구부러지지는 않는다.  


시대가 짓누르는 중력을 온몸으로 거스르는 청춘의 모습이 아름다우면서도 씁쓸한 것은 왜 일까. 그건 어쩌면 이 시대의 중력이 여전히 우리를 짓누르기 때문일 거고, 시대는 불의하기 때문일 거다. 잘못하지도 않는 일에 사과를 구하며 구부러져야 하는 백이진을, 그렇게 깨지고 부서지고 비루해서 어렵게 지금을 버텨내고 있는 이진의 모습을 내 안에서도 보기 때문일 거다.


12화에서 승완의 이야기를 보며 왜 그런지 모르게 어느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드라마 속에서 묘사된 일상적인 폭력의 풍경은 나도 알고 겪어본 것이었다. 그 시대를 굴복해 살아내며 난 승완처럼 용기 내 문제를 제기하고 싸워볼 생각 자체를 아예 못했다. 그게 잘못됐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냥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혹시 그렇게 중력에 나를 맞추며 구부러지며 살아왔던 삶이, 세상에 여전히 불의한 힘이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놔뒀던 건 아닐까. 

그래서 승완의 쓸쓸한 눈빛과 실패가 마치 나의 패배이자 순종의 결과가 아닐까 싶어, 마음이 아팠다. 


아마도 이진이 희도를 보며 느끼는 마음도 그런 거 아니었을까. 마냥 더없이 맑은 저 아이가 중력을 거슬러 날아오르는 모습을 보고 싶은데, 혹여 세상의 힘에 꺾일까 봐 상처 입을까 봐, 우산이라도 되어주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하지만 그런 희도도 중력에 몸을 맡기며 천천히 땅으로 내려온다. 하늘에서 낙하산처럼 우산이 내려오듯 가볍게 땅으로 내려와 동경하는 누군가를 위해 대신 비를 맞으며 기뻐한다. 땅으로 떨어지는 것이 무서워 빠른 속도로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미리 훈련하는 유림의 마음을 강하게 붙잡아 준다.  

  

이미 어른이 된 나는 그 중력을 온몸으로 체감하며 살아간다. 중력을 거스를 생각 자체를 할 수 없는 존재가 됐다. 분명 내 안에도 좋아하는 마음 하나로 중력을 거슬러 살던 희도가 살고있었는데, 이제 그 마음을 잃어버렸다. 중력이 당연한 것이 되었고, 그 시절의 어떤 순간들을 기억 속에서 잃어버린 사람이 됐다. 

‘영원하자’라고 ‘행복하자’라고 호기롭게 말하던 소녀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뭔가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마음을 잃어버린 나를 오래 바라본다. 그리고 그시절의 청춘을 다시 기억해 본다. 

무모해서 섬광처럼 짧게 빛나던, 그래서 아름답고 황홀했던 그 시절이 지나갔다. 

하지만 슬프지 않다. 영원한 건 없으니까. 결국 모든 것들은 흘러가버리니까. 


이 드라마는 우리의 청춘을 다시 떠올리게 해. 

불꽃놀이를 보듯, 잠깐 석양을 물들이는 석양을 바라보듯, 너무 아깝게 너무 간절하게 그걸 바라보게해. 

그땐 그 시간이 영원할 줄만 알았는데, 언제고 부르면 다시 찾아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한 줌 순간이었구나.

그걸 다 알게된 지금의 시점에서 그 순간을 아련하게 바라보게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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