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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츄리 Apr 06. 2022

4개국어 아니면 0개국어

성인이 된 후 두 개의 새로운 외국어를 배우며 느낀 것들


스페인어 공부하다 지쳐서 쓰는 글 맞다.

외국어를 좋아하는 나로서도 시험 준비는 결코 쉽지 않다.

그저 좋아하는 것과 시험을 치르기 위해 공부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인 듯하다.




스페인어는 제2외국어로서 꽤나 대중적이지만, 의외로 내가 영어 이외에 처음으로 접한 외국어는 다름아닌 인도네시아어였다.


대학교 3학년 때 한 학기 남짓 다녀온 해외봉사활동 이후 , 귀국하고서도 인도네시아어를 계속 공부해 두 번의 시험을 치렀다. 한 번은 말하기 시험, 한 번은 한국외대에서 주관하는 종합시험(말하기 빼고 다 있는)이었다. 2년도 더 넘은 이 시험들에 대한 후기 및 정보글이 내 블로그에선 여전히 스테디셀러로 꼽히고 있으니, 짧은 시간 동안 나름대로 영리하게  공부하고 시험을 치렀다고 감히 말해볼 수 있겠다. 물론 지금은 거의 모든 게 스페인어로 대체된 것마냥 기억이 안 나긴 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옛날부터 궁금하던 스페인어를 수박겉핥기 식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외국어 공부에 관심 좀 있다 하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알 만한 어플로 매일 매일 꾸준히 기초단어와 생활회화 등을 익혔다. 연습과 실전은 천지 차이긴 했지만 그래도 스페인어는 엄연히 내가 한국어, 영어와 인도네시아어 다음으로 접한 네 번째 언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번 글은 외국어를 배우라고 추천하는 글도 아니고, 충고하는 글도 아니다. 그저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외국어를 배우면서 가장 많이 깨달은 점들을 써보려고 한다.






'잘하는 것' 또는 '할 줄 아는 것'의 기준



최근 몇 년 간 내가 외국어 공부를 하면서 가장 많이 궁금해하고, 고민했던 점이다. 당연히 정답은 없지만 내가 내린 결론 중 가장 확실한 건 그 기준이 시험 점수나 등급은 아니고, 어려운 단어를 많이 아는 건 더더욱 아니라는 것이다.


대신, "같은 말도 쉽게 풀어서 할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외국어를 잘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어떤 언어를 사용하다 보면 언제든 단어나 표현이 기억이 안 나는 상황을 맞닥뜨리게 된다. 심지어는 한국말도 생각이 안 날 때가 있지 않은가? 그런 상황이 단순히 그 언어가 모국어가 아니라서 일어나는 건 아닌 것이다.


특정 단어가 생각이 안 나더라도 그 의미를 풀어서 설명할 줄 안다면 된 것이다. 아니, 오히려 더 훌륭한 수준으로 평가 받을 수도 있다. 상대방은 생각보다 우리에게 관대하고, 단어 하나 몰라서 그 의미를 더 많은 단어로 설명하는 우리를 절대 답답하게 생각하진 않을 것이다. 되려 '잘한다'고 생각하게 될 가능성이 높을 것 같다.




같은 언어 다른 느낌, 그것이 진정한 언어의 맛



이건 특히 스페인어를 배우면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이다. 스페인어는 사실 영어보다도 사용하는 인구가 더 많은 언어이다. 내가 지금 있는 남미 대륙에서는 포르투갈어를 쓰는 브라질을 제외하곤 모두 스페인어를 사용하는데, Español이라는 한 이름으로 통칭되긴 하지만 사실 모두가 다르다. 발음과 억양이 다른 건 물론이고, 단어의 의미가 아예 달라 주의해야 할 때도 있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발음과 억양에 집착하는 영어 교육을 받아 왔다. 그땐 몰랐지만,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그랬던 것 같다. 사실 발음 좀 틀리면 어떻고, 억양이 좀 다르면 어떤가? 우린 어차피 외국인이고, 외국인이 외국어를 사용하는 게 좀 어색하게 들리는 건 당연한 일이다. 물론 누군가에게 내가 이 언어를 할 줄 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치르는 시험에서는 최대한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채점과 평가를 해야 하기에 어쩔 수 없겠지만, 해외에서 살아 보니 중요한 건 발음도 억양도 아니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모르는 사람들에겐 똑같은 '스페인어'일지 몰라도, 조금은  다른 남미의 스페인어를 배우면서 나는 이 언어에 더욱 흥미를 느꼈다. 같은 언어권 사람이지만 그들이 하는 말이 사실은 조금씩 다르기에, 백 명의 사람이 있으면 백 개의 언어가 존재하게 된다는 걸 깨달았다. 비로소 보다 다양한 세상에 눈을 뜬 기분이 들어 기쁘고 설레었던 것 같다.



투입과 산출을 적절히



외국어 실력을 본격적으로 향상해 보고자 할 때 명심해야 하는 점이다. 여기서 투입은 읽기와 듣기, 산출은 말하기와 쓰기라고 상정했다. 사실 생각해 보면 당연하지 않은가? 전자는 눈과 귀를 통해 머리로 '들어오는' 것이고, 후자는 머리를 통해 입과 손으로 '나오는' 것이다. 기억도 안 날 만큼 어릴 때 모국어를 습득하게 되는 과정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네 가지 영역 중 하나라도 부족하면 원활하게 언어를 구사하기가 어렵다.


그 중 특별히 더 뛰어난 영역은 있을 수 있다. 내 경우엔,  특히 지금 스페인어 DELE 시험 준비를 하다 보면, 투입보다는 산출이 굉장히 어렵다. 읽거나 쓰는 것보다 듣기와 말하기가 훨씬 힘들다. 다 잘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반대인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투입과 산출을 골고루 훈련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DELE 시험이 '진또배기'인 것 같다고 나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하곤 하는데, 그 이유도 여기 있다. 어느 한 가지나 그 중 일부만 평가하는 시험의 경우 사실 내 실력을 정확하게 증명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규칙적•집중적으로 네 가지 영역에 모두 시간을 투자하고 있는 지금의 시간들이 지나면, 내 스페인어 실력도 눈에 띄게 성장해있길 바라본다. 사실 그럴 거라 믿어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우선순위 1번은 모국어


갑자기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야? 싶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외국어를 배우면서 그 언어들 뿐만 아니라 내 모국어인 한국어에 대한 관심도가 더 높아졌다. '언어'로서 매번 비교하게 되고 또 외국어의 문법이나 어휘를 많이 알아갈수록, 오히려 한국어의 세련된 우수성에 또 감탄하곤 했다.


예전에 부모님과 함께 모 TV 프로그램을 보는데, 똑똑하고 외국어도 잘하기로 유명한 연예인이 정작 한국 속담 문제를 못 맞히는 장면이 나왔다. 부모님은 몇 분 전까지만 해도 뉘집 자식이길래 저리 똑똑하냐며 감탄하시다가 이내 실망하고 혀를 끌끌 차셨다. 나도 공감했다. 한국을 영영 뜰 게 아니라면 결국엔 한국 사람인데.. 모국어에 대한 기본적인 소양이 없다면 외국어를 잘한다는 건 내세울 게 못 될 것 같다. 제목에 쓴 것처럼 본인을 0개국어라고 소개하지 않으려면 제일 중요한 건 당연히 모국어일 것이고 또 당당히 N개국어라고 소개하려고 할 때에도 제일 기본이 되는 건 모국어일 것이다.


외국어 공부 열풍에 휩쓸려 기초적인 한국어 맞춤법을 틀리거나 비문을 쓰면서 살지는 말자고 매번 다짐해본다.





쓰다 보니 글이 길어졌다. 내가 언어에 꽤나 진심이었구나.. 싶다.


자의든 타의든 외국어를 공부하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응원과 격려를 보내며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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