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츄리 Apr 04. 2022

[월간 아순시온] 9월호 : 버티기 작전

해외생활, 그 민낯에 대하여


로망은 로망일뿐


누구나 한번쯤은 해외에서의 삶을 꿈꿀 것이다.

특정한 계기가 있는 게 아니더라도, 뭔가 한국에서의 내 삶보다는 멋지고 행복할 것만 같은 그런 환상.


나도 그런 환상을 가진 사람 중 하나였다. 외국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하곤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구체적인 실현방안을 강구하지는 않았다. 그야말로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그래서 내 대학 생활에서 딱 한 가지 후회되는 점이 있다면 방학을 활용한 해외여행이나 그 흔한 교환학생을 가보지 않은 것이다. 그나마 선택한 게 해외봉사였는데, 나는 그 몇 개월을 계기로 더 다양한 국가에서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더욱 커졌다.




파라과이에 오면서, 그토록 목표로 하던 해외생활을 회사 지원 두둑히 받으면서 1년 동안이나 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집 계약은 뭐이리 할 게 많고, 핸드폰 개통하려는데도 뭐가 이리 복잡한지. 그리고 집에 와이파이 좀 설치하려 했더니 여기 사람들은 왜이렇게 약속을 안 지키고 늦게 오는지. 전기세 좀 내고 싶은데 은행 어플은 왜이렇게 작동이 안 되는지. 사실 가장 큰 문제는 내가 스페인어를 못 한다는 것이었다. 가뜩이나 원래 영어도 안 통하는 곳이니 누굴 탓하리오?


이렇게 아순시온에 온 지 한두달 정도 되었을 때쯤엔 하루하루가 전쟁 같았다. 어느 정도 자리는 잡은 것 같지만 완전히 적응했다고 하기에도 애매한 상태. 하루하루가 돌발상황의 연속이었고, 내 스스로 해결하기엔 어려운 상황도 많았다.


그래서 나는 그때쯤 생각했다.

나는 동기들도 있고 사무실 분들도 계시고, 심지어 회사가 지원해주는 집에서 사는데 옛날 나의 로망처럼 가족들과 해외에서 함께 살려면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들까?

너무 핑크빛 환상을 가지고 있었음을 곧 깨닫게 되었다. '정착'의 단계가 이리도 고되고 힘들다는 것은 직접 와보기 전까진 모르는 것이었구나.


지금 글을 쓰면서 생각해 보니, 8-9월에는 정말 내가 좋아하는 취미생활을 하며 보낸 시간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럴 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초점 나간 사진처럼, 초점 나간 일상의 반복이었다.



버텨라, 이 또한 지나가리니


로망은 로망일뿐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로망을 가지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그런 힘든 순간들도 언젠가는 흐릿해지기 마련이다. 업무와 생활환경에 적응하고, 돌발상황에 대처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날들이 지나가자 나를 돌볼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스페인어 과외를 시작했고, 동기들과 나중에 어디로 여행 가고 싶은지 같은 다소 희망찬(?) 얘기도 곧잘 나눴다.




버티기 작전을 쓰고 나니, 로망을 가지길 잘했구나 싶었다. 이렇게 한 단계 또 성장했으니 다음에 또 다른 해외생활을 시작할 때는 한결 더 수월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해외생활의 고단함과 민낯,

그 민낯을 피하기 보다는 좀더 유연하게 대처하는 방법을 배우는 시간으로 삼아보기로 한번 더 결심해본다.


유학•어학연수, 교환학생, 워킹홀리데이, 해외취업, 이민,

여행 등 다양한 이유로 전세계 각국에서 힘든 하루를 보낸 이들이 있다면.


오늘도 힘차게 버팁시다, 이 또한 지나가리니!
작가의 이전글 [월간 아순시온] 8월호 : 첫인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