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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츄리 Mar 26. 2022

[월간 아순시온] 8월호 : 첫인상

1년 동안 잘 부탁해

1. 자가격리 중 만난 아순시온의 하늘


내가 파라과이에 왔을 때만 하더라도, 해외입국자에 대한 자가격리 조치가 시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5일 간 호텔에서 격리를 하게 되었다.

어마어마한 인턴 군단의 1년치 짐들

오랜 비행의 여독도 풀고, 시차적응도 좀 하고, 앞으로 펼쳐질 1년에 대해 마음의 준비(?)도 할 수 있는 시간이라 생각하니 오히려 잘된 듯했다.

격리호텔 첫 날
호텔방 뷰 1~5
호텔방 뷰 6

격리하는 동안 할 게 없으니(밖에 나가면 있을 줄 알았다), 바깥 풍경 사진만 얼마나 찍었는지 모르겠다.

가끔은 이렇게 한국에서 데려온 친구를 보며 심심함을 달래기도 했다.

특별할 것 없지만 그래도 감지덕지 했던 조식

호텔방 뷰 7
호텔방 뷰 8, 9(야경)

난생 처음 와보는 곳이지만 역시나 저녁 노을은 알 수 없는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아순시온의 하늘이 너무 예뻐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2. 치안과 맞바꾼 재미


자가격리 해제 직후 우리는 앞으로 살림을 꾸려나가는 데 크나큰 역할을 차지하게 될 쇼핑몰과 마트를 구경했다. 회사 건물과 쇼핑몰 사이 도로에 서있는 한국 신호등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또 뭐 했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왜냐면 파라과이에는 딱히 할 만한 게 없기 때문이다. 오고 나서 처음 맞이하는 달이니만큼 앞으로 뭘 하며 살지가 모두의 관심사였는데 오자마자(?) 김이 식기 시작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나중에도 누누이 말하게 되겠지만 중남미에서는 '평화롭고 단조로운' 환경이 축복과도 같다. 그만큼 안전하다는 뜻도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파라과이는 중남미 국가들 중에서도 치안이 괜찮은 편이다. 특히나 우리가 사는 수도 아순시온 중심부는.. 과장 안 보태고 한국에서 사는 거랑 별 차이도 없다. (할 게 많지가 않으니 밤 늦게까지 다닐 일도 없다.)


재미가 좀 없을지언정, 길거리에서 귀에 에어팟을 꽂고 핸드폰을 만지며 다니며 살 수 있다는 점에 곧 감사하게 되었다.


3. 홈 스윗 홈


첫 출근과 맞먹을 정도로 중요한 일정이 8월에 잡혀 있었다. 바로 1년 간 살 집을 구하는 것이었다. 중개인을 통해 몇 군데 옵션을 보러 다녔는데, 다 걸어서 출퇴근 할 수 있는 거리였다. 사무소 직원들도 거의 다 모여사는 동네니 걱정할 것도 없었고, 한국에서는 감히 내가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정도의 집들이었다. 그런데 나는 여태까지 자취방을 보러 다닌 경험도 없었어서, 이때가 '집을 구하는' 첫 경험이었다. 그렇다 보니 나만의 기준이나 취향, 노하우 등이 있을 리가 없었고 그저 '회사에서 지원해 줄 때 이런 집에 살아보지 언제 살아보겠어' 라는 생각만 한 것 같다.


그렇게 '다 그냥 좋은 집이겠거니' 하며 별다른 호불호가 없었던 나는 결과적으로 사무실에서 도보 20분 거리 정도 되는 아파트에 입주하게 되었다. 방 2개, 욕실 2개. 층수도 꽤나 고층이어서 방에서 바라보는 뷰가 좋다는 점이 가장 매력적인 집이었다.


하지만 직접 살아보면 또 다르다고, 내 마음에 안 드는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닌 것이었다! 마룻바닥이라 틈새 때문에 청소하기도 불편하고, 욕실 샤워기는 또 왜 고정형인지. 에어컨 실외기가 함께 달려 있는 바람에 밖으로 뚫려 있는 세탁실에는 빗물이 들이치기 마련이고. 현관이나 통로도 없이 문 열고 들어오면 바로 부엌. 이 정도 아파트는 끄떡 없을 줄 알았지만 폭풍우 치는 날엔 정전되기 일쑤.


당장 생각나는 불만사항만 하더라도 이 정도이지만, 곧 생각을 고쳐 먹었다.


자, 다시 되새기자.

지금 한국 가면 이런 집에 못 살아.


입주를 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땐, 사람 사는 냄새도 안 나고 내 짐이랄 것도 별로 정돈되지 못한 상태여서 집이 아니라 그냥 호텔 같았다. 남의 집에서 자는 듯한 어색한 시간으로써 새 집 신고식을 혼자 열심히 치렀다. 그래도 한국에서 가져온 가족사진, 친구들과 찍은 사진 등을 먼저 꺼내 침실에 놓으며 1년 간 지내게 될 이곳에 정을 붙이기 시작했다.


물론, 창밖을 바라보면 펼쳐지는 초록도시 아순시온의 전경과 저녁 노을에 늘 감탄하면서 말이다.


4. 첫인상이 중요하다던데


비단 사람뿐 아니라 장소 또한 마찬가지인가보다.

그저 정신없고 얼떨떨한 첫 달이었지만 여름이 오기 전 아순시온의 선선한 공기와 초록빛으로 가득한 도시. 높은 건물이 많이 없어, 노을이 질 때 블라인드만 걷으면 붉게 물든 하늘이 그대로 융단처럼 펼쳐지는 곳. 더군다나 인도네시아 해외봉사 당시 내가 지나가면 쳐다보기 바쁘던 현지인들의 모습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던 게 무색할 정도로 우리에게 관심없는 이곳 사람들.

적어도 아순시온의 첫인상은 나에게 이 한 문장이었다.


생각보다 괜찮은데?






파견 첫 주, 아순시온 탐방
함께가 아니었다면 몰랐을 즐거움들


/


[월간 아순시온] 8월호 : 첫인상

1년 동안 잘 부탁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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