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극P러 Sep 10. 2024

나 이런 사람이야

겸손이 미덕? 글쎄

  들을 때마다 신나는 것은 덤이요, 자신감까지 뿜뿜 충전되는 곡이 있다. 바로 DJ DOC의 <나 이런 사람이야>인데, 가사를 들을 때마다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라 마음에 든다. 그런데 노래가 아닌 일상생활에서 누군가가 대화 중에 가사 속의 이런 말을 한다면 어떨까? 아마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 그게 신기했다. 이렇게 모순적인 감정이 드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나 이런 사람이야
알아서 기어
아니면 쉬어 알았으면 뛰어
그래 내가 원래 그래
그래서 뭐 어쩔래

  나는 그동안 '나를 낮추는 화법'을 많이 사용해 왔었다. 예를 들면 "나는 이러는데(비하하는 말), 너는 ㅇㅇ 잘하는구나!"와 같은 방식으로 말이다. 마음속에선 자랑하고 싶고, 나를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넘치는 나였지만, 이상하게 꽤 오랜 시간 동안 저런 화법을 써 왔고, 어느새 습관으로 굳어져버렸다. 왜 그랬을까 이유를 생각해 보니, 한국 사회의 겸손을 권장하는 문화 탓도 물론 있었고 개인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먼저 남을 올려주기 위해서였다. 나는 나와의 대화에서 상대방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칭찬을 좋아하므로, 나는 남을 칭찬하고 높여주는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이다(하지만 맘에도 없는 소리는 절대 아니다. 나는 기본적으로 감탄을 잘하는 사람이고, 가식을 혐오한다). 그 칭찬의 효과를 배가시키고 강조하기 위해 남을 높여주는 동시에 나를 낮추었던 것이다.


  또 조금이라도 자랑하는 뉘앙스를 풍겼을 때, 질투와 미움의 대상이 될까 봐 무의식적으로 두려워했던 것도 컸던 것 같다. 감정을 알아차리는 것에 예민하고 다른 사람의 감정에 과도한 책임감을 느끼는 나의 성향 상, 의도치 않게라도 나의 잘난 면을 드러내는 이야기를 했을 때 상대방이 불편함을 느낄까 봐 두려웠다. 그 즉시 그 불편감을 해소시켜주고 싶다는 강력한 충동에 휩싸였던 나는, 나를 낮추는 말을 곧이어 던짐으로써 그 충동을 해소시키곤 했다.


  그런데 이 습관, 부작용이 엄청났다. 내 주변 사람들이 '나를 낮추는 화법을 사용하는 나'에 익숙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 대화 방식으로 대화할 때만 좋아하는 듯한 느낌 말이다. 그럴수록 나는 다른 사람의 기대에 맞추기 위해, 더 나를 낮추는 대화 방식을 선택하곤 했다. 나의 잘난 면을 조금이라도 드러내기가 더 어려워졌다. 악순환이었다. 그리고 그러면 그럴수록, 사람들과의 대화 및 만남이 끝난 뒤 찜찜한 기분과 함께 씁쓸함이 엄청났다. 그리고 더 무서운 사실은, 그런 화법을 사용하면 할수록 나 자신조차도 스스로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나도 모르게 사람들 앞에서 더 작아졌고, 정말 내가 별로인 사람인 것 같다는 무의식이 커져만 갔다.


  그러다가 점점 정말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느껴지는 지경까지 갔다. 나는 나 스스로 장점과 가능성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인정받길 원하는데 나를 낮추는 화법을 사용하는 동시에 자연스럽게 나를 알아줄 것이라고 기대한 것은 정말 큰 오산이었다. 누구도 나의 잘난 면엔 관심이 없었다. 내가 조금이라도 그런 대화 주제를 꺼내면 불편함을 느끼는 듯했다. 사람들이 미워졌다. 부모님조차도 내 좋은 면을 보기보다는, 아직 개선할 점이 많은 아이로 보고 걱정만을 하셨다. 나는 장점도 많은 사람인데 사람들은 내가 겸손을 떨며 말하는 것을 '정말 그런 줄만' 알더라. 또 그런 애인줄로만 알고, 그런 애로만 보더라. 이는 그 누구도 아닌, 내 자신이 만든 결과였다.


  오랜만에 만난 고등학교 친구가 예전에는 그러지 않더니 은근슬쩍 나를 무시하는 발언을 내 앞에서 하는 것을 듣고 와서(이전에 우울증으로 인해 내가 나 스스로를 비하하는 말을 많이 했었다) 결심했다. 이젠 절대 누구 앞에서 스스로를 낮추는 말을 하지 않기로 말이다. 정말로, 일부러 굳이 스스로를 높이진 않더라도, 적어도 낮추지는 말자고 결심했다. 친구뿐 아니라 가족에게도 말이다.


  이제 나는 나를 낮추는 말이 튀어나오려고 할 때마다 차라리 침묵하며 참는다. 그 결과는? 스스로에 대해 더 긍정적으로 인식하게 되었으며, 더 당당해졌다. 그리고 나를 향한 공격에 민감해졌다. 더는 참고 넘기지 않으며 나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람, 관계는 멀리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스스로를 지탱하는 힘이 길러졌으며 스스로를 믿는 힘도 커졌다. 언어습관이란 게 이렇게 중요하다. 자아 인식부터 자신감에까지도 영향을 미치니 말이다.


  한국 사회는 특히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많이 보고, 겸손을 강조하는 사회이다. 평균이라는 것이 존재해 그것에 맞추길 기대하고, 조금이라도 튀는 부분이 있으면 나댄다고 불편해한다. 유튜버(이자 변호사 + 기타 등등)인 임현서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기계적으로 겸손한 것은, 먹고사는 데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일단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군가 겸손을 떨면, '그냥 원래 그런 사람인가 보다'라고 받아들일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다고 한다. 왜냐? 기본적으로 사람들은 타인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자신의 잘난 부분을 표현하지 않는 이상, 찾아보지도, 물어보지도 않는다. '겸손해야 된다', '너 잘났다고 나대지 마라'는 말을 듣고 자라 겸손하게 행동했다. '그런데 알고 봤더니, 내가 잘났다는 얘기를 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나를 절대 잘났다고 생각을 해주지 않는구나'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영상에서는 이야기한다. 그렇게 되면 나에게 기회가 주어지지 않고, 이는 먹고사는 문제와 까지 연결이 된다말하면서 말이다.


https://youtu.be/OMkRa6FFDJE?si=UJQ-QyG3lmvnKZeP


  자신을 낮추고, 자기표현을 억제하고... 이제 이런 거에서 손 떼려고 한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는 연습을 할 것이다. 잘난 면이 있으면 잘난 대로 말이다. 앞으로는 이로 인해 남들에게 미움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나~ 이런 사람이야~♬

매거진의 이전글 '쥐롤라'로 보는 아마추어들의 반격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