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후암동에 있는 책방에 다녀왔다. 개인 책방의 매력 중 하나는 책방지기님의 취향이 반영된 큐레이션이다. 아동문학평론가인 책방지기님의 책 설명을 들으며 책방 탐방을 더 오롯이 즐길 수 있었다.
책방에 들어서자마자 느껴지는 책 향기와, 고요한 분위기, 그 특유의 공기까지... 나는 책이 있는 공간을 사랑한다.
그러나 책을 살 생각은 없었다. 예전의 나는 마음에 드는 책이 있으면 참지 못하고 구매하곤 했었다. 그런데 내가 개인 서재를 따로 갖고 있지 않는 이상, 그렇게 쌓이는 책들을 감당하기가 어려워졌다. 또 충동적으로 구매했다가 처치곤란이 되는 경우도 있었고, 더 괴로운 경우는 공간의 한계로 인해 아끼는 책들과 헤어져야 할 때였다.
사람과의 이별만이 고통스러운 것은 아니다. 아끼는 물건과의 이별은 참 힘들다. 내 경우에는 물건의 유용성보단, 그 물건에 서린 '추억'이 이별을 힘들게 한다. 얼마 전 본가의 이사로 인해 짐을 정리해야 했었다. 그런데 20년 동안 산 집에서 그동안 나의 역사, 그때의 감정들, 손길들이 묻어있는 것들을 버린다는 것은 나에게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수2, 기하와 벡터, 적분과 통계 등 고등학교 시절 열심히, 그리고 재밌게 풀었던 수학 교과서와 문제집들... 다른 교과서들을 큰맘 먹고 버리면서도 수학책들은 정말 버릴 수가 없었다. 내 전성기 시절, 그리고 순수하게 공부를 즐겼던(?) 시절이 나에게서 영영 떠나가는 듯해 마음이 찢어졌다. 차마 못하겠었다.
자식들이 타지에 있어 부모님끼리만 이사를 하셔야 했다. 아빠한테 전화가 왔다.
"너 고등학생 때 수학책들, 이제 이거 다 필요 없잖아. 버린다? 책이 너무 많아서 놓을 자리도 없어."
"알겠어..."
맞는 말이었다. 사실 10년 동안 들쳐본 횟수가 5번도 안 될 것이다. 쓸모로 생각하면 아빠 말이 맞다. 공간을 비워내고 정리할수록 정신이 청명해진다는 것에도 동의를 한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 마음이 쓰라린 건지...
'책은 들이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어. 최대한 실물 책은 사지 말자. 전자책으로 보는 게 여러모로 이득이야.' 책을 좋아하는 나는 그렇게 결심했었다.
오늘 책방에서도 그 생각이었다. '응 이 책 ㅇㅇ의 서재에 있어~ 그걸로 보면 되지?' 그러던 중, 한 권의 책이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박경리의 《문학을 사랑하는 젊은이들에게》라는 책이었다. 대작 『토지』의 저자인 소설가 박경리의 문학과 삶에 대한 철학이 녹아 있는 책이었다.
'이런 책은 귀하잖아?'
정말 그랬다. 초판 1쇄 펴낸 날이 20년 전(95년 4월 20일)인 책이었다. 일단 다른 책들보다 구하기 어려운 책일 것이다. 전자책이 없을 것은 당연했다. 무엇보다 나는 이런 90년대 출판된 책들의 감성이 왜 이렇게 좋은 걸까. 고등학생 시절 책『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박완서)』에 푹 빠져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지금 찾아보니 1992년 출판된 소설이다. 무려 내가 태어나기도 전!).
지금보다 편리성이 덜했던 시대. 그래서 말로는 표현하기 어렵지만 뭔가 순수함, 진정성이 더 느껴지던 시대였던 것 같다. 이 책에서도 그 특유의 감성이 느껴진다. 요즘엔 이런 책을 찾기 어렵다.
내가 90년대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또 있다. 마치 시간 여행을 하는 느낌이 들어서이다. 내가 어린아이였을 시절 출판된 책들이면서, 학생 시절 학교에서 접했던 책들이니 말이다.
결국 나는 이끌린 듯 박경리 소설가의 책을 집어들 수밖에 없었다.
"이 책도 살 수 있어요?"
"당연하죠~ 이 책은 들여오면서도 거의 안 팔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신기하게도 일주일에 꼭 1~2권은 나가더라고요? 저처럼 문학을 전공한 사람이나 읽을 법한 책인데..."
책방지기님의 말로 이 책은 더욱더 특별해졌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오랜만에 지하철에서 책을 들고 읽었다. 책 한 권으로 오랜 시간 시들어 있었던 내 문학 감수성이 깨어나는 느낌이었다. 만족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