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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극P러 Oct 05. 2024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있사옵니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다

  피아노 레슨을 받기 시작한 지 6주가 지났다. 내가 쓰고 있는 피아노 에세이의 상당 부분은 '무대공포증 극복기'가 차지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놀랍게도, 점점 나아지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있다!


  지난 목요일에 레슨을 받았다. 레슨에 가기 전, 여느 때처럼 긴장으로 손에 땀이 나는 것까지 느끼며 혼자 불안으로 고통스러워하다가 학원으로 향했다. 그래도 막상 학원에 도착하니 오히려 조금 안정이 되었다.

 


    "아까 연습하시는 거 들었어요, 소리 좋던데요?"


    "저 혼자 있을 땐 잘되는데 선생님 옆에만 가면 긴장돼요 ㅠ!!"


    "(연주)해볼까요?"

  


  그래, 그동안 연습을 하며 마인드컨트롤 한 내용들이 있었다. 그것들을 떠올려 보는 거야. 남 옆에서 연주할 때 긴장하지 않기 위해, 생각해야 할 중요한 원칙 중 하나는 바로 '연주 그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나는 집중하기 위해 미간을 약간 찌푸리고, 혼자 연습할 때처럼 때때로 피아노를 향해 몸을 기울이며 음악을 만들어 나갔다. 여전히 긴장되었지만 이전 레슨 때보단 훨씬 나았다. 신기했다. 연주도 잘 풀려나가는 듯했다. 5분가량의 연주의 마지막 부분이 다가왔다.


  비창 3악장은 악상 피아니시모(매우 여리게)의 조용한 부분이 흘러나오다가 마지막 부분에서 포르티시모(매우 세게)가 나오면서, 강한 반전으로 끝이 난다. 이 부분은 늘 긴장된다. 마지막 피날레여서, 게다가 강하고 빠르게 내려오는 스케일을 성공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엇, 그런데 그 생각을 하다 보니 마지막 음을 미스내버렸다. '도'가 아닌 '레'로 말이다. 


  '안돼..! 어떡하지?'


아쉬움, 그리고 멋쩍음, 걱정으로 선생님을 바라봤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연주를 마침과 동시에 선생님의 감탄과 함께 "와~ 너무 잘하셨어요!!"라는 반응이 돌아왔다. 어리둥절했지만 기분이 좋아 웃음이 나왔다. 실패가 아니라 성공이었다.


    "이제 그랜드피아노에서 한 번 연주해 볼까요?"



  레슨실 안에서 사용하는 피아노는 업라이트 피아노다. 그랜드피아노는 피아노학원 중앙 홀에 있다. 공개된 공간인 것이다. 곡을 어느 정도 마무리 했을 때 그랜드피아노에서 연주를 하게 되는 것 같았다. 생각지 못했던 제안에 조금 놀랐지만, 칭찬에 자신감을 얻은 나는 "네~"라고 답했다.


  마인드를 바꾼 부분이 또 있다. 무대공포증을 극복하기 위해선 '노출 경험'을 늘려야 한다. 남 앞에 내 연주를 노출하는 경험, 즉 남 앞에서 연주하는 경험 말이다. 그동안은 선생님의 '해볼까요?'라는 말이 부담스러웠었는데, 이젠 그 모든 상황을 노출 경험을 늘릴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러니 임하는 자세가 달라졌다.


  그랜드피아노에서 연주할 때 연주 도중 홀을 지나다니는 사람도 있었다. 속으로 조금 흠칫했지만 이내 연주에 집중했다. 연주는 비교적 잘 흘러갔고, 어느새 나는 조금 즐기고 있었다. '와... 이런 순간도 오는구나, 그것도 이렇게 자연스럽게!' 너무 뿌듯하고 기분이 좋았다. 선생님이 다음 시간에는 영상을 찍어보자고 말씀하셨다. 순간 다시 조금 걱정이 됐지만, 몰라, 이제 그냥 무조건 부딪치고, 내던져보는 거다. 이제 모든 면에서 그렇게 성장하기로 결심했으니까.


  조금씩 성장해 가는 스스로의 모습에 너무 기뻤다. "앞에서 연주할 긴장을 하기 위한 방법" 중요한 부분이 있다. 바로 "사람들은 전체를 기억한다"라는 것을 떠올리는 것이다! 5~6분가량의 연주를 들으면서, 사람들은 중간에 잠깐씩의 실수가 아닌, 전체적인 연주의 인상으로 그 연주를 평가한다. 따라서 중간에 실수가 나와도 당황하지 말고 전체를 완성시켜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려면 '실수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 또한 필수이다. 난 아마추어다. 연습에 시간을 프로처럼 투자할 수 없고, 아무리 열심히 연습을 했다 하더라도 실수가 무조건 1번은 나올 것이다. 그동안은 '실수하면 안 되는데'라는 생각에 너무 사로잡혀 더 긴장하고, 연주를 망치곤 했었다. 그런데 그냥 '실수는 무조건 나와~'라고 생각하니까 오히려 덜 당황하고, 얼른 수습할 수 있었다.


  전쟁사에 관심이 많은 동생이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자잘한 전투들에서 져도, 결국 굵직한 전투에서 이기면 그 전쟁은 승리로 기록된다고(표현이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무튼 그런 이야기였다) 말이다. 연주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중간중간 자잘 자잘한 실수가 나서 그 부분에선 지는 것일지라도, 결국 당황하지 말고 전체를 잘 완성하면 연주를 성공적으로, 승리로 마무리시킬 수 있는 것이다.



  앞으로도 연주에서 중간에 실수가 났을 때, 이순신장군의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있사옵니다"라는 심정으로, 즉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라는 마음가짐으로 임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런 태도로 집중하면, 연주를 마친 뒤 예상치도 못했던 박수세례를 받을 일이 생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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