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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극P러 Sep 23. 2024

편견은 반전 줄 때 효과 있지

나의 가치는 내가 정하고, 내가 만들어가는 것

  큰일 났다. 오늘 급하게 찍은 내 피아노 영상에 스스로 중독 돼서 몇 시간째 듣고 있다. 이제 그만하고 글 써야지. 어제 피아노 레슨 5회 차, 연습을 시작한 지 딱 한 달이 되었다. 한 곡만을 이렇게 오랫동안 집요하게, 집중해서 연습한 것은 20년 전 초등학생 때 이후로 처음인 것 같다. 초등학생 때는 이렇게까지 집중을 못 했던 것 같고. 거의 인생에서 처음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한 달 동안 정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한 달 전 첫 레슨 때(초등학생 때 이후로 처음 받아보는 레슨이었다. 거의 20년 만.) 나는 베토벤의 '비창 소나타 3악장'을 치고 싶다고 했다. 선생님은 별로 못 미덥다는 표정을 지으며 "20년 만에 첫 레슨이시면, 어려우실 텐데"라는 말을 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순간 조금 걱정은 되었으나, 두렵다고 물러서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곡이고,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 꼭 해내고 싶었고 절대 제대로 해보기도 전에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초견(악보를 보고 처음부터 바로 연주할 수 있는 능력)을 잘하는 편은 아니다. 솔직히 못 하는 편인 것 같다. 정말 오랜만에 피아노 앞에 앉아서, 게다가 선생님이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자리에서 연주하려니 손이 더 말을 안 들었다. 뚱땅뚱땅... 더듬거리며 가까스로 악보를 읽어 나갔고, 그렇게 첫 레슨을 마쳤다. 솔직히 첫 레슨 시간은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순전히 내 생각이지만, 선생님의 표정도 그렇게 좋아 보이진 않았다. 여전히 나를 못 미더워하는 느낌이었다.


    "악보를 끝까지 다 읽어오는 게 베스트이긴 한데~"


  레슨이 끝나고 선생님이 흘리듯 말하셨다. 난 이 말을 놓치지 않고 새겨들었다. 전공생들 기준으로는, 레슨 전 악보 읽어오는 것은 기본이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던 것 같기도 했다. '그래, 그 말이 맞지. 소중한 레슨 시간을 더듬거리면서 연주하는 데에 낭비할 순 없어. 악보는 기본으로 연주할 수 있는 실력은 갖춰가야 해. 다음 레슨 때부턴 표현법을 배워야지.'


  그 이후로 거의 매일 평균 1시간 정도를 연습했다. 그 결과, 9일 뒤 받은 다음 레슨 때까지 난 악보를 다 읽어갈 수 있었다.


    "어땠어요~?"

    "끝까지 다 읽어오긴 했는데요..."


  선생님은 그 말을 듣고 놀라는 표정을 지으셨다. 두 번째 레슨 때부터, 나를 보는 눈빛, 대하는 태도가 180도 달라지셨다. 두 번째 레슨이 끝났을 땐 "시간이 순삭 됐네요!", "이런 레슨 시간이 제일 즐거워요. 솔직히 뚱땅거리는 레슨은 시간이 잘 안 가요"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나는 첫 레슨 이후 바로 다음 레슨에서 나에 대한 평가를 완전히 바꾼 것 같아 너무 뿌듯하고 짜릿했다.


레슨 5회 받은 후, 비창 3악장 중간 부분


  세 번째 레슨 때부턴 선생님이 레슨 시작 전, 자기 얘기를 하기 시작하셨다. 나에 대해 확실히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된 게 느껴졌다. 그리고 다섯 번째 레슨 땐, 박수와 함께 "이 곡 그렇게 깔끔하게 치기 어려운 곡인데, 정말 잘 치셨어요! 연습을 많이 하셨나 봐요!", "이렇게 input이 들어간 대로 output이 나오는 경우가 잘 없는데!"라는 칭찬을 들었다. 가르칠 맛이 나는 학생이 된 것 같았다. 과제도 점점 늘어갔다. 부작용이라면 부작용인데, 최선을 다해서 해가니까 다음 시간까지 만들어가야 할 과제의 양이 점점 많아지는 느낌이다. 그러나 이것도 내가 원하는 바였으니 즐거운 고통이다.


"평판에 과도하게 매달리지 말라"
-프리드리히 니체


그렇다면 당신은 당신에 대해 모든 것을 알지도 못하면서 당신을 평가하는 타인을 완벽하게 믿고 있다는 말인가? 인간이란 항상 옳은 평가를 내리지 못한다. 동시에 옳은 평가를 받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완벽한 진리란 없다. 그런데도 당신은 타인의 평가에 지나치게 빠져들어 당신의 가치를 계속 책정할 것인가?
- 책 《니체 인생수업》


  내가 만약 선생님이 처음 나에 대해 평가한 것으로 나 스스로를 평가하고, 그로 인해 위축되고 포기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나에 대한 편견을 반전시킬 수 있었을까? 나는 내가 할 수 있을 것이란 걸 알았고,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노력했다.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것도 위험한 일이지만, 그보다 더 위험한 건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전자는 구제할 수 있지만 후자는 스스로 늪에 빠지기 때문에 구할 수 없다.
- 책 《한 번 사는 인생,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니체가 답하다)》


레슨 5회 후, 비창 3악장 끝 부분


  타인의 평가는 영원하지 않다. 언제든 바뀔 수 있다. 그리고 항상 옳지도 않다. 제일 중요한 건 내가 나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평가하느냐이다. 지코의 노래 가사처럼, 편견은 반전 줄 때 효과 있다. 타인의 평가에 얽매이지 말고 스스로 생각하는 대로, 나의 가치를 세상에 펼쳐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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